▶ 40년 된 주택 고친 30대 부부의 도전
▶ 애견가족 라이프스타일 맞춘 꿈의 집
서울 동대문구(건축주의 요청으로 구체적인 지명은 생략함)의 단독주택‘죠죠하우스’. 심플한 디자인과 베이지톤 마감재, 조경이 어우러져 담백하고 포근한 인상을 풍긴다. [홍기웅 건축사진작가 제공]
현관과 거실에서 마주하는 중정은 집의 하이라이트. 이끼 정원을 조성해 호젓한 풍경을 즐길 수 있다. [홍기웅 건축사진작가 제공]
주택 전면에 배치한 욕실. 도심 속이지만 여행 온 듯한 기분전환이 가능하다. [홍기웅 건축사진작가 제공]
결혼하고 반려견 ‘죠죠’를 키운 지 7년을 바라보던 해, 김정민(39)·최지미(36) 부부는 집 짓기를 결심했다. 두 사람이 거쳐 간 아파트와 연립주택은 세 식구가 살기엔 편리했지만 뭔가 부족했다.‘반려견과 함께 오래 살기’를 염두에 두고 맞벌이 부부의 생활 패턴과 반려견의 일과에 딱 맞는 집을 짓고 싶었다.“매일 산책해야 하는 시바견의 특성 때문에 안팎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집이 필요했어요. 가족만의 조용한 공간에 대한 욕구도 커졌고요.” 그렇게 찾은 것이 서울 동대문구의 2층 주택이었다. 예산에 맞춰 1년 이상 서울 강북의 택지를 찾아다닌 끝에 연고가 없는 동네에서 작고 오래된 집을 마주했다.
40년 된 주택이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집 짓기를 결심하면서 당연히 신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집을 본 순간 레노베이션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면적은 크지 않았지만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있었거든요. 넓은 2층 테라스도 마음에 들었고요."
레노베이션 경험이 있는 전문가를 찾던 부부는 평소 작업을 눈여겨보던 이유림·정진욱(아틀리에 이치 설계사무소 소장) 건축가를 찾아갔다. 이 소장 부부 역시 도심의 주택을 개조해 살면서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든든하게 다가왔다.“오래된 주택에 대한 불안 요소들이 있잖아요. 40년 된 집을 새집으로 바꾸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평생 살 집이다 보니 요구사항이 많았어요. 이미 오래된 주택을 고쳐 살고 있는 두 소장님이 적임자라고 생각했죠."
가족 구성도, 취향도 비슷한 건축주 부부와 건축가 부부가 합을 맞춰 고친 주택은 과거 모습을 완전히 지우고 환골탈태했다. 애견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춤한 구조, 간결한 형태와 마감, 반려견이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테라스까지, 미처 상상하지 못한 도심 주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집, ‘죠죠하우스'(대지면적 68㎡, 연면적 112.65㎡).
■부엌을 중심으로 둔 열린 구조
김정민·최지미 부부는 디자이너다. 간결한 취향을 즐기는 둘은 설렘 속에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부부의 꿈은 ‘단순하고 열린 집'이었다. 이전 집의 거실에도 TV와 소파를 두지 않았던 부부는 처음부터 집의 중심을 다이닝 공간으로 생각했다.
20평대의 규모에 비해 좁게 구획된 거실과 부엌의 구조 정리가 시급했다. 이유림·정진욱 소장은 거실과 다이닝 공간의 구분을 없애고 부엌을 집 입구에 배치하자고 제안했다. 이 소장은 “바쁜 맞벌이 부부에게 적합한 동선을 고민하다 과감하게 부엌을 전면에 뒀다"며 “싱크대 뒷면을 뚫어 집에 들어서자마자 부엌을 관통해 집 안을 볼 수 있게 하고 중앙에는 식탁과 수납을 겸하는 조리대를 설치해 활용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답답함을 덜어낸 열린 구조로 바꾼 것과 더불어 개방감을 더한 요소가 중정이다. 현관과 거실이 만나는 모퉁이에 이끼 정원을 마련한 것. 한 평(3.3㎡)이 안 되는 작은 공간이지만 실내에서도 자연 풍경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원래 집의 실내에 설치된 정화조를 가리기 위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는데 결과적으로 집의 하이라이트가 됐죠. 좁은 주택의 단점이 될 수 있는 채광과 답답함을 해결하고, 장식적인 효과까지 챙기는 공간이에요."
중정을 바라보는 거실 공간은 일부러 비워 뒀다. 평소 움직임이 많은 반려견을 위한 배려다. 오른쪽으로는 중정을, 정면으로는 마당을 바라노는 공간에 좌식 쿠션과 조명을 놓고 나니 온 가족을 위한 놀이 공간이 완성됐다. “오며 가며 가장 편하게 이용하는 공간이에요. 때로는 통로로, 때로는 라운지로 그때그때 쓰임에 맞게 활용하죠. 공간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고 할까요."
■일상을 여행하듯…숙소 같은 안방
2층은 부티크 호텔을 연상케 하는 단정한 공간이다. 주택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탁 트인 침실과 녹음이 보이는 테라스가 조용한 교외 숙소에 온 듯 여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단출한 식구가 사는 집이라 딱히 독립 공간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공간을 널찍하게 만들어 빛과 풍경이 집 안 구석구석 스며들었으면 했죠. 아주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가능한 선에서 창을 많이 낸 것도 그래서예요."
평소에도 스파 숙소를 찾아 여행을 다녔던 부부는 욕실에도 프라이버시 침해가 염려될 수 있는 큰 창을 냈다. 주택가 한복판에서 계절감을 느끼며 목욕을 즐길 수 있다니! 여행지에서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생활을 집에서 구현하니 만족감이 더 커졌다. “욕실이 부부가 각자의 일을 마치고 돌아와 가장 편안하게 쉬는 공간이자 조용히 영감을 충전하는 곳이 되길 바랐어요. 가장 좋은 전망에 가장 사적인 공간을 두고 그 시간을 충만하게 누릴 수 있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이 소장의 설명이다.
테라스도 빼놓을 수 없다. 통상 주택의 테라스라고 하면 나무 덱(deck)이나 석재 바닥으로 마감한 공간이 떠오르지만 이 집은 정원처럼 흙을 깔아 나무를 심고 일부 구역엔 잔디를 심었다. 집 밖에서만 배변을 하는 시바견 죠죠에게 더할 나위 없이 요긴한 공간이다. 테라스를 수시로 오가며 배변을 하고 바깥 세상을 관찰할 수 있어 심심해할 틈이 없단다. ‘죠죠가 행복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는 의미를 담은 가훈 ‘죠죠만사성'에 걸맞은, 반려견의 행복에 맞춤한 공간이다. “이 집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예요. 테라스가 있으니 죠죠의 외부 활동이 자유로워요. 덕분에 육아가 한결 쉬워졌죠(웃음)."
■ “내가 좋아하는 것이 정답”
세 식구의 존재만으로 그득해지는 집의 비결은 작은 디테일에 있다. 수평과 수직을 틈 없이 맞춘 마감, 벽에 쏙 들어가는 슬라이딩 도어와 꽁꽁 숨은 스위치, 5㎜ 두께의 금속판 한 장을 이음새 없이 만든 싱크대 상판, 손잡이 없이 눌러서 여는 수납가구 등 세심하게 계획된 작은 요소들을 공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건축주 부부의 취향과 작은 미감을 확실하게 챙기며 희열을 느끼는 건축가 부부의 열정이 빚어낸 시너지였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집이 정답"이라는 신념으로 찬찬히 고치고 더한 집은 얼핏 비어있는 듯하지만 들여다볼수록 충만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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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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