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 ‘에버랜드CB’부터 국정농단까지 언급하며 ‘지배력 강화 과정’ 부각
▶ 이복현 금감원장이 당시 수사 주도…불기소 권고, 기소강행 등 우여곡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한국시간)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5일(한국시간) 선고가 이뤄지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 사건은 삼성 경영권 승계에 대한 검찰의 약 20년 수사를 집대성한 '종합판'이라 할 만하다.
법원의 직접적 판결 대상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에서 각종 불법 행위가 있었는지다.
하지만 검찰 공소장은 이 합병 과정 자체가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의 '마지막 단추'였다는 점을 전제로 그 과정을 추적한다.
사실상 이 회장이 1994년 종잣돈 60억원으로 출발해 그룹 지배력을 확보하고 2022년 회장 직함을 달기까지 28년간 진행된 승계 작업 전반을 법정에 세운 셈이라 이날 법원 판단에 재계 안팎의 시선이 쏠려있다.
◇ 특검 부른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매입' 의혹서 시작하는 공소장
검찰 공소장의 도입부는 이 회장의 1994년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매입으로 시작된다.
검찰은 "피고인 이재용은 1994년경 이건희로부터 최소한의 개인 자금을 들여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핵심으로 하는 그룹 경영권을 승계받는 작업에 착수하여…"라고 적었다.
당시 이 회장은 이건희 전 회장으로부터 종잣돈 61억4천만원을 증여받았다. 이후 계열사 주식을 거래해 차익을 벌어들여 자금을 불렸다.
이 회장은 이 돈으로 1996년 에버랜드 CB를 사들였다. CB는 쉽게 말해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이다.
당시 에버랜드가 싸게 발행한 CB를 삼성 계열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인수하지 않았고, 남은 CB는 에버랜드 이사회 결의로 이 회장 남매에게 배정했다.
결과적으로 이 회장은 48억3천90만원으로 에버랜드 주식 31.37%를 보유한 최대 주주가 됐다.
에버랜드는 이때부터 삼성 승계 작업의 핵심으로 지목돼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집중적인 감시와 의혹 제기의 대상이 됐다.
법학교수 43명이 2000년 6월 이건희 전 회장 등을 고발했고, 검찰은 2003년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 등을 재판에 넘겼다.
이 사건은 특검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2007년 출범한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이 회장을 피의자로 소환 조사했으나 무혐의 처분했다. 이건희 전 회장은 기소됐으나 에버랜드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09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 '에버랜드 발판삼은 지배력 강화 마지막 단계서 불법행위' 공소제기
검찰의 공소장은 이런 '배경 사실'을 지나 에버랜드 최대 주주가 된 이 회장이 어떻게 그룹 전체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데 나아가는지를 추적한다.
검찰은 삼성 경영권의 핵심이 그룹 내 상장 계열사 시가총액 약 3분의 2에 달하는 삼성전자 지배력에 있다고 봤다.
이 회장이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분 구조로 승계의 기반을 닦았지만, 순환출자 등에 의존하는 간접적 지배로 규제 등에 노출돼 있어 보완이 필요했다는 것이 검찰 시각이다.
이에 삼성전자 주식 4.06%를 보유한 2대 주주이던 삼성물산을 에버랜드에 합병시킴으로써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직접 지배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승계 계획안 '프로젝트G(거버넌스)'가 2012년 삼성 미래전략실에서 마련됐다고 검찰은 공소장에 적었다.
프로젝트G의 실행을 위해 에버랜드의 제일모직 패션부문 인수, 바이오산업 참여 등 '몸집 키우기'가 이어졌고, 이후 에버랜드가 제일모직이라는 이름으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뒤 삼성물산과의 합병에까지 나아갔다는 것이 검찰이 파악한 흐름이다.
이런 흐름의 마지막 단계로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신 삼성물산'으로 합병하는 과정에서 이 회장의 높은 지분 비율을 유지하고, 엘리엇의 반대 등에 따른 합병 무산 위험을 피하기 위해 각종 불법 행위들이 자행됐다는 것이 검찰의 공소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두 회사는 제일모직 1주가 삼성물산 약 3주와 동일한 가치라는 의미의 '1:0.35' 비율로 2015년 9월 1일 합병했다.
합병 이후 신 삼성물산은 과거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 구조를 통한 지배력(삼성전자 지분 7.21%)과 옛 삼성물산이 가졌던 지배력(삼성전자 지분 4.06%)을 모두 갖춘 사실상 그룹의 지주회사(지배회사)가 됐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이 회장은 전혀 지분이 없던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 주식 4.06%를 직접 지배하게 됐다"며 "제일모직의 삼성생명 지배관계에 있어 위험 요인이던 금융지주회사 전환 문제도 종국적으로 해소됐다"고 결론 내렸다.
◇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승계 수사…윤석열·한동훈·이복현 전면에
이 회장의 승계과정에 대한 수사가 촉발된 계기는 2016∼2017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이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삼성이 이 회장의 안정적 승계에 도움을 받고자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에게 말을 뇌물로 건넸다고 파악했다.
엘리엇 등 삼성물산 주주들이 제일모직과 합병을 반대하자, 삼성물산 지분 11.9%를 가진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청와대가 힘써주기를 청탁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2017년 2월 검찰에 구속됐고 재판 끝에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됐다.
특검에 이어 2018년 12월부터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한 서울중앙지검은 승계의 '본체'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을 정조준했다.
시작은 김경율 현 국민의힘 비대위원이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이던 2015년 12월 제기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이었다.
삼성이 합병 비율을 정당화할 명분으로 에버랜드 계열사인 삼성바이오, 그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미래 가치를 꺼내 들었고, 그 가치를 높게 유지하려 회계를 부정하게 처리했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였다.
금융당국의 고발까지 접수한 서울중앙지검은 2년 가까운 수사 끝에 삼성 그룹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성사하기 위한 '밑 작업'으로 허위 사실을 공표하고 시세를 조종하는 등 각종 불법 행위를 했다고 보고 2020년 9월 이 회장을 비롯한 11명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수사 과정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검찰은 이 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 회장의 신청으로 열린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는 2020년 6월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다. 수사팀은 그러나 죄책을 물을 필요가 있다며 3개월 뒤 이 회장을 기소했다.
이 회장에 대한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였던 이복현 현 금융감독원장이 이끌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3차장검사로,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수사를 지휘했다. 국정농단 특검에서부터 손발을 맞췄던 검사들이다.
재판이 3년 2개월간 이어지는 동안 11명의 피고인이 106회의 재판을 받았고 80여명의 증인이 법정에 출석했다. 검사와 변호인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느라 언성이 높아지는 일도 잦았다. 이 회장은 거의 매주 법원에 출석해 온종일 재판받아야 했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사건이 병합된 뒤에는 3주마다 주 2회씩 출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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