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창단, 예술의 전당에서 지휘도 하고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가’의 저자 이우근 법조인은 문학을 그의 “첫사랑”이라 했다. 내게 음악은 “불멸의 연인”이다. 만나면 가슴이 뛰고 황홀하며 슬픔과 기쁨이 교차되는… 그러나 음악이 주는 그 슬픔은 이별의 고통을 비껴 지나가면서 승화되어 아름답고 감미롭게 그 여운을 남긴다.
중 2때였다. 한 시간 반을 걸어서 남자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을 찾아가 성악 레슨을 받은 적이 있다. 교재는 ‘Concone 50’ 이었다. 미성의 그 테너 선생님은 “콩코네는 가사만 붙이면 모두가 다 노래가 된다” 며 ‘아, 아’ 로 발성연습을 하는 대신 즉흥적으로 가사를 넣어 “바다, 저 바다, 파도치는 저 바다….” 로 Concone Op. 1번을 선창하셨다.
폭설이 내리면 눈에 덮인 내 신발은 보이지도 않았고 비바람이 칠 땐 몇 번이고 우산이 뒤집혀져도 나는 그 먼 길을 혼자서 묵묵히 오고 갔다. 여름이면 그 길가에 피고 지던 이름 없는 들꽃들을 바라보는 기쁨이 커서 나는 외롭지 않았다. 후일 내가 자라서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던, 음악에서 멀어지지 말자고 그 때 그 눈길을 오가며 다짐했었다.
이제 나는 어느덧 흰 머리 성성한 시니어가 되어 상록대학 합창반 교실에 앉아 아득히 멀고 먼 그 옛날, 내가 중2 때 선생님을 따라 콩코네 제 1번 “바다, 저 바다….”를 불렀던 그 때를 꿈속에서 보는듯 아름답게 회상하며 어린 날 내가 다짐했던, 음악에서 멀어지지 않고 살게 된 지금의 이 마음의 여유로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대 있는 곳까지(Eres Tu)’를 배울 때다. 젊은 날, 누구나 한 번 쯤은 Broken Heart 로 헤어지는 아픔을 경험했을 것이다. 나는 이 노래의 가사를 처음 접했을 때 몹시 슬픈 생각이 들어 남몰래 눈물을 글썽거렸었다.
그런데 음율만은 슬픔을 스쳐 지나가면서 내가 마치 산들바람과 손잡고 ‘내 님이 계신 곳’으로 달려가는 듯한 착각에 빠져 슬픔을 극복하고 기쁜 마음으로 노래연습을 할 수 있었다. 내용은 다르지만 오페라 ‘Tosca’ 중에서 Mario Lanza가 부른 ‘별은 빛나건만’이나 Montserrat Caballe 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는 가슴이 찢기는 듯, 그 얼마나 비장한가?
이에 비해 약간은 경쾌하기까지 한, 한 때 우리를 슬프게 했던 잊지 못할 노래 ‘Eres Tu’를 만나게 해 주신 지휘자님께 고마움을 표한다.
“잠 못 이루는 밤, 백팔 번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이유없이 마음이 심란스러울 때, 악보를 펴고 노래해 보세요!” 이게 지휘자님이 학생들에게 노래 연습을 유도하는 그 분만의 탁월한 방식이다.
내게 감동적이었던 것은 Main Repertory 6곡 전부를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별로 피아노 반주와 함께 직접 노래를 불러 녹음을 해서 합창 반원에게 보내 주어 집에서 혼자서도 시간 제한 없이 편안하게 연습할 수 있게 시도한, 아무나 할 수 없는 그 정성이다.
짧은 연습기간으로 초연의 상록대학 시니어 합창 공연이 큰 실수 없이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음은 이성미 반주자님과 단원들의 열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낭우 지휘자님의 간절한 기도, 합창반을 이끄는 뛰어난 리더십과 친화력, 거기에다 코미디언 못지 않은 유머 감각을 겸비, 예술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수 년 전이다. B한인교회 시니어 프로그램에 Ballet Class가 있었다. 그 선생님은 수업을 진행하기 전에 매번 단호하게 자문자답하셨다. “여러분은 몇 살이지요? 열 여섯 살이에요. 잊지 마세요!” 60, 70, 80의 시니어들을 앉혀놓고 이렇게 정신 무장을 시켰다.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그의 ‘5월’이란 글에서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5월에 있다”고 청춘을 상징하는 5월을 예찬했다. 우리도 ‘우리의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노래 부를 때 우리는 16세 소년, 소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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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애 실버스프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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