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맛집 투어와 호캉스, 목적 없는 유랑체험
▶ 한국인들의 남다른 골프사랑
밤 비행기로 인천공항 상공을 지날 때 2,700개의 조명등으로 불야성을 이룬 SKY 72 골프코스가 보였다. 한국인들의 골프 사랑은 남다르다. 이번 한국여행에서 놀라웠던 점은 야밤 골프를 친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라스베이거스에서만 가능한 진풍경이다.
두 번째 놀라웠던 것은 연습장과 골프장이 엄청 많다는 점, 그리고 수많은 여성과 젊은 골퍼들에 놀랐다. 골프는 나이든 분들의 여가운동이라는 인식에서 급속히 전환되는 분위기다. 그 가장 큰 이유가 신분상승을 추구하는 문화와 YOLO(You Only Live Once)로 불리는 한국 특유의 소비패턴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직장인들이 골프에 집착하는 이유가 안 끼면 뒤쳐진다는 강박관념과 예전 악착같이 저금하고 집 마련에 알뜰살뜰 아끼는 모습은 사라졌다. 송도와 지방 각지에서 접했던 젊은 골퍼들의 이러한 인생철학을 대변하는 또 다른 용어가 호캉스다.
질문: 한밤중 비행기로 한국 상공을 지날 때 무엇이 한국임을 알려주나?
답: 칠흑 같은 밤에도 수많은 골프코스들이 조명을 밝히고 있으면 한국이다
12만원짜리 빙수와 25만원짜리 오마카세의 허세
우리는 이번에 한국에서 최고라 불리는 호텔들을 여럿 답사해보았다. 그리고 비싸고 좋다는 호텔은 가는데마다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한국에서는 유명하고 고가일수록 성시다. 잠실 시그니엘에서 해운대 시그니엘 그리고 한때 호텔의 양대 산맥이었던 신라와 조선호텔에서도 젊은이들로 식당과 라운지가 붐볐다. 서울 신라 호텔라운지 빙수가격이 12만원이었다. 그런데도 겨울에 젊은 남녀가 빙수를 즐기고 있었다.
반면에 나이든 사람들은 뒷골목 소줏집으로 밀려나 있었다. 노년층은 정겹고 편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반면 젊은이들은 인스타그램에 어떻게 비쳐지느냐가 최대 관심사다. 소셜 미디어 속에 성장한 젊은이들은 남에게 보여주는 삶이 그들의 삶이고 인스타그램 속의 모습이 자신의 본 모습인 양 스스로 걸어놓은 최면에 빠져 허상과 본질을 구분 못하는 모습이었다.
서초구에서 마을버스에 탑승하여 도시 경치를 즐기다 무작정 내려 보니 처음 와본 서래마을이었다. 출출한 점심시간, 골목에 일식식당 ‘만’이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섰더니 젊은 호스트가 예약을 물어서 없다고 하자 상당히 고자세로 나왔다. 뒷벽은 훈장 마냥 4년 연속 받은 빨강 미슐랭 상패들이 벽을 장식했다. 누구에게서 인정받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소비자 나름 판단하고 결정할 권리까지 소멸시킬 수는 없다. 허나 그 종업원의 태도는 사뭇 그렇지 않았다. 30분 기다린 후 딱 10명이 2명의 스시 맨 앞에 앉아 25점 스시를 즐겼다. 스시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은 나지만 인생 최고의 스시였다. 우리를 제외한 손님 8명 모두 2030세대, 바로 옆에 혼밥 하던 청바지 차림의 젊은 여인은 냉 사케 한 병 곁들이며 이런 곳을 자주 찾는다는 것이었다. 나오면서 계산하는데 일인 25만원, 둘이서 점심으로 50만원 쓰고 나왔다. 가격을 미리 알았다 해도 아마 시도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거품과 허세 또한 경험했다. 내가 GS25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젊은 직장인들은 삼각김밥이나 컵라면이 그들의 한끼였다. 이러한 사회적 격차와 부조리, 병폐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전청조 혼인 빙자 사기사건이다.
‘심야의 태양은 지구 반대편에서도 변함없이 타고 있다’
휴식을 취해야할 밤 시간, 서울에서 1시간 반 거리에 소재한 TGV C.C.에서 목격한 골퍼들은 별빛 쫓아 헤매는 몽유병 환자처럼 골프공을 쫓고 있었다. 그들의 집착과 집중력에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한민족의 우수성도 보았다. 목적론자와 달리 경험론자들은 ‘왜’보다 ‘어떻게’를 중시했다.
몸에서 심장이 뛴다. 왜 뛰는가? 여기서 ‘신의 뜻’이라고 한다면 그 상태에서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경험론자가 ‘어떻게’ 뛰는지 탐구함으로써 과학과 인류는 더 발전할 수 있었다. 과학의 발전은 생기론과 목적론을 기계론과 경험론이 극복하는 긴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비록 후발 주자였던 대한민국은 ‘어떻게’에 포커스를 맞추어 노력한 결과 지난 반세기 엄청난 발전을 이룩해냈다.
골프에 집착하는 이유도 “왜” 보다 “어떻게”를 중시하는 적극성과 행동철학이 한인들 성격에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든 [ ]해보자”는 한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다. ‘해보자’ 앞에 어떤 단어를 넣어도 좋다: 성공, 입학, 입사, 승진, 승리, 이글, 버디, 파 등등. 물론 시행착오로 ‘어떻게’가 때로는 ‘어떡해’를 유발한 사례 또한 부지기수로 많다.
“로마는 하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주 이용되는 크리셰(cliche)지만 또한 그만큼 성공에는 부단한 노력이 따른다는 명언인데 한국골프에도 적용된다. 한인골퍼들은 극성으로 노력한다. 한국은 미국, 일본 다음 세계에서 세번째 큰 골프 마켓이며 18홀 정규 코스만 117개이다.
2022년에 한국에서만 5천백만의 라운딩이 있었다. 믿지 힘든 수치지만 골퍼 당 지출액 역시 세계최고다.
스크린 골프를 어디서나 목격했다. 강남 J.W. Marriott 지하 스크린 골프에서 접한 골퍼들은 실내연습장임에도 불구하고 골프모자에 골프화까지 완벽한 옷차림뿐만 아니라 그 진지함이 마치 열심히 일하는 모습과도 같았다. 또한 시원한 실내 스크린 골프에서 연습했음에도 마치 한여름 야외 골프를 친 사람들처럼 모두 사우나 하고 2차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모습이었다.
반면 한국에 있는 미군기지 골프코스들은 완전 미국이다. 주소마저 영수증에 캘리포니아라 적혀 있다. 가격, 분위기, 관리, 그린속도, 음식과 서비스 모두 편안하고 푸짐하고 느릿한 미국이다. 한국코스 캐디와 달리 그곳 여성 캐디들은 모두 6070세대들이고 그들은 절대 은퇴 안 한다며 웃었다. 참고로 미군 골프코스는 가격대비와 재미 면에서 육군, 공군, 해군 순위다.
심리학자 마스로는 유명한 저서 ‘동기부여 이론’에서 인간을 움직이는 동기를 7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1단계가 생존욕구, 2단계 안전욕구, 3단계로는 소속감을 들었다. 한인들이 특히 이 소속감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나는 한인들의 골프 열기 역시 그 동기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한 개인적 성취욕과 소속감에 대한 열정이 한인골퍼들의 특징이다. 미국인들과 달리 대다수 한인들은 홀로 라우팅하지 않는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면서도 공동체의식이 남다른 한국에서의 제프의 기행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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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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