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님 집 옆 새 집 지어 누리는 싱글라이프
▶ “집 덕분에 새로운 취향·인생 채우는 중”
경기 용인 고기동에 자리한 주택. 갤러리 건물을 연상케 하는 통창과 오픈 구조가 인상적인 집이다. [박완순 건축사진작가 제공]
높이 3m 통창에 둘러싸인 리빙룸 겸 다이닝 공간. [박완순 건축사진작가]
벽을 없애기 위해 내부에 세운 기둥이 색다른 공간감을 연출한다. [박완순 건축사진작가]
좋은 집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다수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기준은 있다. 꼭 필요한 요소를 간결하게 정돈한 집. 필요한 것만 남긴 그 집을 채운 것이 자연이라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싱글남 이동현(42)씨가 사는 경기 용인 고기동 주택(대지면적 577.0㎡, 연면적 277.86㎡)은 딱 그런 집이다. 높은 천고, 개방형 구조에 통창을 낸 3층 주택은 투명한 쇼케이스 같다. 그래서 집을 둘러싼 자연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건축주 이씨는 취업과 동시에 독립했다. 빌라와 오피스텔을 옮겨 다니며 자취를 하다 가족 사업에 합류하면서 13년 만에 가족과 다시 동거를 시작했다. 산과 계곡을 지척에 둔 전원주택에서다.“난생처음 주택에 살면서 내가 이렇게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좋더라고요. 3년쯤 됐을 땐 나도 이런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을 재테크 수단으로 삼을 게 아니라면 도시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죠. 그때 집 옆에 비어있던 공터가 눈에 들어왔어요.”
전원생활에 매료돼 덜컥 집터부터 잡아 놓고 8년 전 부모님의 집을 설계한 이재하(이재하 건축사사무소 소장) 건축가를 찾았다. 누구보다 대지의 맥락과 가족의 취향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원래 있던 집과 조화를 이루면서 무엇보다 내 라이프 스타일에 최적화된 공간을 만들고 싶었죠. 같이하면서도 따로, 비슷하면서도 다르게요."
■같은 정원을 공유하는 두 채의 집
주택 옆에 새로운 주택을 짓는 일은 두 번 낙점받은 건축가에게도 꽤나 까다로웠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외관 디자인. 바로 옆에 자리한 부모님의 주택과 대규모로 조성된 정원이 확실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설계는 땅의 맥락을 살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원래 있던 집과의 관계 설정이 먼저였다"며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설계해 새 집의 개성을 살릴 것인지, 조화롭게 두 집을 연계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했는데 결론은 후자였다"고 설명했다.
그리하여 완성된 집은 ‘한 집 같은 두 집'이다. “겉모습은 같은 집으로 읽히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성격"이라는 건축가의 설명대로다. 일단 외관을 보자. 주택을 이루는 두 개의 수평선을 새 주택에 그대로 연결하고, 비슷한 느낌의 베이지 벽돌로 외벽을 마감해 톤을 맞췄다.
200평대 정원을 공유하며 나란히 놓인 두 건물은 쌍둥이 건물 같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부모님이 거주하는 주택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주로 나무를 사용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창을 설치해 편안하면서도 중후한 인상인 반면 콘크리트와 유리를 주재료로 마감한 아들의 집에선 독신 남성 특유의 자유분방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씨는 부모님의 집에서 누렸던 자연이 좋았던 만큼 새 집에선 벽을 없애고 창을 최대한 크게 배치한 열린 구조를 원했다. 그 결과 1층의 주방과 거실은 개방형 구조로 배치하고 방이 있는 2층에 포켓 슬라이딩 도어를 만들었다. 3층 공간도 마찬가지. 두 면을 유리창으로 채우고 계단과 연결되는 벽까지 유리로 마감해 안팎이 훤히 보이도록 했다.
“싱글 라이프라 공간 제약이 크지 않았어요. 프라이버시보다 공간감에 민감한 건축주의 성향을 반영해 모든 공간을 대담하게 개방했죠. 전면에 다른 건물이 없기 때문에 안이 들여다보이는 것도 큰 불편함으로 느껴지지 않거든요. 주택이 가진 장점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 구성도 과감해질 필요가 있어요."
■자연과 그림이 걸린 갤러리 하우스
집의 주인공은 앞 산 풍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층에 남향 창을 설치했는데 1층과 3층에 3m 높이 통창을 막힘없이 연결한 것이 포인트. 가까이는 정원 풍경을, 멀리로는 광교산 전망을 집 안 어디서나 파노라마뷰로 누리는 것이 목표였다. 침실이 있는 2층은 상대적으로 아늑한 분위기인데, 창 아래와 위에 단을 설치해 풍경을 깊이 있게 들이는 차경의 묘미를 살렸다.
“개방형 구조를 만들기 위해 기둥을 세워 벽체를 없앴어요. 구성은 단순하지만 변화무쌍한 풍경을 끌어들인 덕분에 공간이 드라마틱하게 느껴지죠. 방 구분이 없으니 층을 오가며 공간을 자유롭게 쓸 수도 있고요."
건축가의 설명에 건축주의 격한 동의가 따라왔다. “모든 공간이 좋지만 그중에서도 사방의 하늘과 산을 담아내는 3층을 가장 좋아해요. 누우면 침실인데 앉으면 라운지가 되고 테라스로 나가면 전망대예요.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복잡하던 머릿속이 차곡차곡 정리되는 느낌이에요."
인테리어는 군더더기 없이 미니멀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이씨의 의견을 반영해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단순하고 넓어 보이게 하는 데 집중했다. 천장은 흰색 페인트로 도장하고 벽면은 콘크리트와 유리, 계단은 나무로 구성해 물성을 드러냈다. 무채색 벽에는 크고 작은 그림을 걸어 색채감을 더했다. 혼자 사는 집이야말로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기 마련인데, 이 집에선 그림이 그렇다. 은은한 조명이 쏟아지는 여백에 앙리 마티스 같은 화가의 작품을 고해상으로 프린팅한 그림을 걸고, 옆으로 캡션까지 붙이니 갤러리가 따로 없다.
“가정집이 갤러리 같다고 하면 인위적이라는 인상이 있지만 저에겐 제 자신을 표현할 수 이는 기회로 다가왔어요. 집을 짓기 전에는 딱히 취향이라 말할 만한 것이 없었거든요. 타협 없이 내 마음에 쏙 드는 그림을 찾아 느낌대로 배치한 것이라 의미가 깊어요."
■인생의 다음 챕터를 상상하는 순간
주변 환경의 장점을 살리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골라 응축한 싱글 하우스. 이씨는 200% 만족하는 이 집에 입주하고부터 진지하게 인생의 다음 챕터를 생각하게 됐다. 가장 큰 변화는 새로운 가정을 꿈꾸게 된 것! 인터뷰를 하는 내내 설렘을 감추지 못한 그는 이 집이 언젠가 꾸릴 가족을 위한 좋은 캔버스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덧붙였다.
“단순하고 트인 공간이라 차갑고 휑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 빈자리를 바라보다가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 잦아졌죠. 자연도 그림도 좋지만 가장 따뜻한 풍경은 사람이니까요. 이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복작거릴 날을 고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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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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