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역사상 중요하면서 가장 덜 알려진 전투 중 첫손에 꼽힐만한 것이 진포 해전이다. 1380년 8월 지금 충남 서천 앞바다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고려 수군은 100여 척의 배를 이끌고 500여척의 왜선을 대파했다. 이곳은 700여년전 일본이 백제를 돕기 위해 800여척에 4만 원병을 보냈다가 백강 전투에서 나당 연합군에 참패한 곳이기도 하다.
진포 대첩으로 퇴로가 끊긴 왜구들은 육지로 상륙해 노략질을 벌이다 이성계가 이끄는 고려 육군에 의해 황산에서 궤멸당한다. 이 전투로 이성계는 일약 고려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다.
진포 대첩의 주인공은 고려 해군 부원수 최무선이다. 그는 송나라 극비인 화약 제조법을 친분을 쌓아둔 상인들로부터 전수받아 화약을 만든 것은 물론 대포와 이를 장착한 함선까지 제조했다. 왜구가 땅에 상륙할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왜선을 격침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라는데 착안한 것이다.
고려 수군의 이런 전통은 최무선의 아들 손자를 통해 조선까지 이어지며 강력한 조선 수군의 밑바탕이 된다. 조선 전함은 크고 밑바닥이 평평한 판옥선이 주력이었는데 이렇게 해야 함포를 쏴도 배가 크게 흔들리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비해 일본 배는 날렵하고 빠르지만 가벼운 세키부네가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일본 왜구는 빨리 상륙했다 도주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크고 무거운 배보다는 날씬하면서 속력이 나는 배가 필요했다. 근본적으로 조선 배는 함포를 실은 토벌선이고 일본 배는 왜구를 나르는 수송선이었던 셈이다.
이런 양국 함선의 차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느냐를 분명히 보여준 것이 임진왜란에서의 해전이다. 명량에서 이순신은 13척의 배로 일본배 130척(일설에는 300척)을 무찌르면서도 단 한 척의 손실도 입지 않았다. 이렇게 기적적인 결과가 가능한 것은 조선 배는 멀리서 함포를 쏴대는데 일본 배는 조총 외에는 대응할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파괴력과 사정거리에서 비교가 안 되는 함포와 조총이 싸우면 누가 이길 지는 뻔하다.
최근 개봉한 ‘노량-죽음의 바다’를 자세히 보면 조선 수군은 함포를 마구 쏴대는데 일본군은 조선군에서 빼앗아 온 것이라며 겨우 대포 몇 대를 가져다 놓고 쏘는 흉내를 내는데 그친다. 일본 군 2만2,000여명 중 절반이 전사하고 일본배 350척 중 200척이 침몰하고 100척이 나포된 반면 조선 수군이나 전함 손실은 거의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이순신의 적수 시마즈 요시히로는 겨우 목숨만 건져 돌아가지만 시마즈는 훗날 일본 역사를 바꾼 중요한 인물이다.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조선에서 도공 심당길을 자신의 고향인 사쓰마(지금의 가고시마)로 데려 갔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에서 천민이던 도공들을 사무라이급으로 극진히 우대했으며 그 후손들은 대대로 도자기를 만들다 12대 심수관에 와서는 187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까지 출품,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된다. 한동안 그가 만든 ‘사쓰마 야키’는 일본 도자기의 대명사로 통하며 사쓰마는 엄청난 물량을 수출해 억만금을 챙긴다.
일본 규슈 최남단에 위치한 사쓰마는 일찍 서양 문물에 눈을 떠 제철과 화약, 함선 제조 기법을 받아들이며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조슈(지금의 야마구치)와 동맹을 맺고 메이지 유신의 핵심 세력이 돼 일본 근대화를 성사시킨다. ‘유신 3걸’로 불리는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 중 사이고와 오쿠보가 사쓰마 출신인 것만 봐도 사쓰마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기도는 조슈 사람이며 한국인의 공적 이토 히로부미도 이곳 출신이다.
일본이 근대화에 매진하는 동안 쇄국 정책으로 문을 꼭꼭 닫고 있던 조선은 기술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뒤쳐지게 된다. 그 결과가 1894년의 우금치 전투다. 여기서 죽창으로 무장한 1만명의 동학군은 개틀링 기관총을 쏴대는 200명의 일본군에 의해 전멸당하고 만다. 300여년 전 임진왜란 해전의 정반대 결과가 일어난 것이다. 결과는 반대지만 원인은 똑같다. 압도적인 기술력 우위를 가지고 있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이 싸웠을 때 결과는 보나마나다.
최근 개봉돼 인기를 끌고 있는 ‘노량’은 ‘명량’ ‘한산-용의 출현’에 이은 임진왜란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으로 비교적 역사적 사실에 가깝게 하려고 한 흔적은 보이나 스토리 전개가 지루하고 전투 장면도 먼저 나온 작품들과 별 차이가 없어 식상한 느낌을 준다. 관람객들은 단지 영화를 감상하는데 그치지 말고 조선 수군이 왜 번번히 압도적으로 이겼으며 구사일생으로 도주한 시마즈는 그 후 어떻게 일본과 한국 역사를 바꾸게 됐는지에도 관심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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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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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이네요. 조선 함대가 대포력이 왜군 함대보다 월등했다는것은 몰랐읍니다. 이렇게 뭐든지 머리가 깨있고 발전하고 변화하려하지 않고 나라 문 꽁꽁 잠그고 우리만 잘살테니 너네는 들어오지 마 하는 정책은 미련한거라는것도 보여주고요.
영화는 영화다. 사실과 거리가 먼 영화가 판을 친다. 어릴 때 수십번 총을 맞은 주인공이 안죽고 살아난 것을 보고 영웅은 결코 죽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곧 다 허구란 것을 알아차렸다 허접한 영화한편 보고 애먼 원전을 불순한 의도로 부순 문가. 지금도 온갖 상상력으로 동원된 서울의 봄을 진짜라고 선동하며 정치적으로 써먹는 정치세력. 영화는 영화다. 사실과 혼동하지 말자.
친일파 세철이가 이 영화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