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은 세계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든 한 해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이 주도한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 시스템’은 지구촌의 3개 지역에서 위협을 받고 있다.
첫 번째 위험지역은 유럽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무력으로 국경을 변경해선 안 된다는 오랜 국제 규범을 산산조각 냈다.
두 번째 지역은 중동이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조직들이 미국이 지원하는 우호세력과 레바논, 예멘,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서 대치 중인 상황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중동 전체를 위험스런 급진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급부상으로 이 지역의 세력균형이 심하게 흔들리는 상태다.
이들 세 개 지역의 난제는 제각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를 풀기 위해선 ‘억제’와 ‘외교’의 절묘한 배합을 필요로 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사태수습을 위해 바이든 행정부는 아젠다를 정하고, 우방을 결속하는 한편 적대적인 상대와 대화를 시도하고 나섰다. 제대로만 집행된다면 바이든의 수습책은 성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종 성공여부는 대응전략이 아니라 국내 정치에 의해 좌우된다.
워싱턴은 러시아의 유럽 침략을 좌시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비해 아홉 배가 넘는 경제 규모와 네 배나 많은 인구를 갖고 있다. 한마디로 체급이 다르다. 우크라이나의 현격한 열세는 서방의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서만 극복이 가능하다. 막대한 군사지원에 덧붙여 미국과 유럽은 키이우가 효율적인 군사전략을 개발하고, 진정한 서방의 일원이 되는데 필요한 정치와 경제 개혁을 완수하도록 압박을 가해야 한다.
중동 문제는 억제보다는 외교의 영역에 속한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비해 압도적인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군사적 측면에서 이스라엘은 의심의 여지없이 하마스를 제압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걸프연안의 아랍국들과 의미 있고 새로운 연합을 구축해 지역 내 입지를 강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 현실의 저변에 깔린 팔레스타인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은 정치적 권리와 독자적 국가 없이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500만 명의 미래가 걸린 문제를 적절히 처리하도록 이스라엘을 설득해야 한다.
현재 미국이 직면한 최대의 도전은 중국이다. 장기적으로 중국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지금의 열린 국제 시스템이 핵무기, 우주 개발과 인공지능 분야에서 양국이 무한경쟁을 벌이는 제 2의 냉전 제체로 바뀔 것인지 여부가 결정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베이징과의 협력관계 구축을 시도하는 것과 동시에 경쟁과 억제에 중점을 두는 복잡 미묘한 전략을 채택했다. 지난 수개월 동안 그같은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면서 중국의 태도는 다소 누그러졌다. 베이징의 태도변화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경제와 시진핑의 ‘늑대 전사’ 외교가 아시아 전역에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는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대화와 외교에 병행해 강력한 조치를 밀어붙인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에도 일부 공로를 돌려야 한다.
이처럼 세 개 지역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적절한 정책을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는 국내 정치에 발목이 잡혀 옴짝달싹 하지 못할 현실적 위험에 처했다. 만약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흔들리면 유럽의 결의도 약화되고 결국 서방의 결속이 와해될 것이라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예측이 적중하게 된다. 아직도 유럽과 미국 내 기류는 대체로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하며 신 고립주의를 표방하는 우파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게다가 공화당은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할 태세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반감과 푸틴에 대한 애정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중동 문제와 관련해 바이든은 미국의 조언을 무시하면서도 워싱턴의 지지를 얻어내는데 능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맞대면을 해야 한다. 네타냐후는 1990년대에 체결된 오슬로 협정을 지지하는 척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무력화하는 꼼수를 찾아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네타냐후는 오슬로 협정을 준수하라는 워싱턴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자 오바마 대통령을 우회해 의회와 직거래를 시도했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지지를 끌어냈다. 이같은 사실을 의식한 듯 바이든 행정부는 직접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축으로 한 아랍국들을 동원해 이스라엘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억제와 외교를 혼합한 바이든 행정부의 대 중국 정책은 국내 정치가 이를 거꾸로 뒤집어놓지 않아야만 효과를 낼 수 있다. 중국 정책은 여전히 매파적인 성격이 강하다. 미국 정치권은 중국 때리기에 부정적인 인식을 보이지 않는다. 연방하원 중국 공산당 특별위원회는 관세를 확대하는 등 베이징에 더욱 강경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한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추산에 따르면 관세 확대 정책이 시행될 경우 미국 경제는 향후 5년간 1조 9,000억 달러의 추가 지출을 부담해야 하고 세계경제는 광범위한 파열을 일으키게 된다. 필자가 최근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을 통해 밝혔듯 “룰에 기반한 국제질서에 대한 최대 위협은 중국이나 러시아 혹은 이란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온다.”
미국이 뒷걸음질을 치면 유럽과 중동, 중국 등 3대 위험지역에서 적대 행위와 무질서가 걷잡을 수 없이 판을 치게 된다. 2024년은 추하고 양극화된 의회 정치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의 모습을 결정짓는 해가 될 것이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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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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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의원들아 제발 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딴지 걸지 말아라. 싫던 좋던 미국은 서방국들과 더불어 이미 수천조 달러를 우크라이나 전에 쏟아부었다. 헌데 지금와서 지원을 하지 않으면 그 쏟아부은 돈은 낭비가 되는거고 전략적/경제적/자원적으로 기대가 큰 우크라이나를 영원히 러시아에 뺏기는꼴이 된다. 이스라엘은 핵무기 국가다. 도와주지 않아도 너끈히 하마스 이긴다. 우크라이나를 도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