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시대 가장 쿨한 파인다이닝… 파인애플 앤 펄스(Pineapple and Pearls)
▶ 특별한 날을 위한 ‘인생식당’
당신이 평생 기억하게 될 뉴이어 이브 파티가 있다. 80년대 맨해튼 멋쟁이들의 아지트였던 ‘스튜디오54’를 모티브로 한 유쾌한 분위기, 아찔한 미각이 거기 있다. 완전히 새롭고, 창의적인 파인 다이닝으로 갈채를 받아온 파인애플 앤 펄스. 자, 천재 셰프 애런과 함께 즐길 준비가 되었는가?
미슐랭 2스타, 제임스비어드 베스트셰프 등의 설명이 필요할까? 이미 DC지역 푸디들에게 파인애플 앤 펄스(Pineapple and Pearls, 이하 PNP)는 꼭 방문해야 할 성지(聖地)다. 파인애플은 외식업을, 펄스는 진주의 우아함을 뜻한다.
2017년 5월 9일 PNP에서 첫 식사를 했다. 예약은 정말 힘들었다. 매주 단 하루, 오전 10시 정각 예약사이트가 열리면 빛의 속도로 마우스를 클릭했다. 그러나 웹 사이트는 늘 접속자 과잉으로 마비된 후 허탈하게도 예약종료 화면으로 돌변했다. 약 10초면 상황종료다.
그런지 6개월 만에 드디어, 미친 듯이 마우스를 클릭하던 내 컴퓨터 화면이 ‘예약진행 중’으로 바뀌었고 눈을 의심하며 두 자리를 쟁취했다. ‘좀 먹는다 하는’ 지인과 PNP에 방문했던 그날의 놀라운 경험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름답고 정성스런 플라워 수프는 처음이자 유일하게 그곳에서만 먹어본 음식으로 평생 뇌리에 새겨졌다. 요리들은 저마다 정교했으며, 페어링도 다채로웠다. 애피타이저의 안정적인 미각은 메인디시를 거치며 전체적인 맛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 단순한 음식전달이 아닌, 프레젠테이션에 따라 퍼포먼스를 선사하는 서빙도 감각적이었다.
무슨 그런 비싼 밥이냐며 얼떨결에 동행한 지인은 식사가 끝난 후 말했다. 나 여기 또 오고 싶다고.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명제는 참이었다.
이제 2023년 겨울, 컨셉이 새로워진 PNP로 향하는 내 마음은 설렜다. 왜 그토록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다시금 확인할 기회다.
식당 앞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간판은 없다. 그저 무심한 듯 창가에 걸린 네온사인 두 개가 번갈아 반짝인다. ‘Nothing’과 ‘Fancy’다.
현관문을 들어서도 시선은 대기상태. 마치 무대를 가린 커튼처럼 파티션월이 식당 내부를 완전히 가리고 섰다. 그곳에서 기다리는 직원에 코트를 건네며 인사를 나눈다. 파티는 이곳 대기실에서부터 시작된다.
벨벳재킷의 서버가 경쾌하게 등장해 웰컴드링크를 만든다. “헤밍웨이에게서 영감을 얻은 이 칵테일의 이름은 ‘오후의 죽음’. 헤밍웨이가 스페인에서 투우사들과 즐겨 마신 칵테일을 재현했습니다.”
‘오후의 죽음’은 아니스 향이 강한 압생트와 샴페인의 조화가 향미롭다. “이 칵테일은 오늘의 첫 번째 음식과 어울리도록 페어링됐습니다. 그럼 잔을 들고 식사할 곳으로 입장하실까요?”
손님의 동선, 대기시간까지 고려해 디테일하게 메뉴를 제공한다. 헤밍웨이의 잔향을 머금고 식당 안으로 걷는 도중, 방문객을 향한 폴라로이드에 잠시들 포즈를 취한다.
컨셉은 뉴이어이브 파티. 80년대 맨해튼 멋쟁이들의 아지트 ‘스튜디오 54’를 모티브로 했다. 즐거운 파티에 아찔하게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설정. 디스코 음악을 배경으로 자리에 앉자 귀여운 봉투가 보인다. ‘다시 방문한 걸 환영합니다.’ 나를 위한 카드다.
“손을 쓰지 말고 입으로 드세요.” 지령과 함께 첫 음식이 놓인다. 긴 유리 전시대에 얹힌 빨갛고 노란 주머니, 캐비어와 금장식이 호사스런 이 애피타이저를 입으로 앙 물어먹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최초의 선정성(?) 식당으로 명명된 70년대 뉴욕 더 퀼티드 지래프의 시그니처 메뉴를 재현했다고. 비트, 샤프란으로 색을 낸 크레이프 주머니 속 레몬향 크렘 프레슈가 고소하다.
다음은 ‘참치회 & 수박’. 폰즈 소스에 시즈닝을 가미한 참치와 수박의 조합이 기발하다. 이어진 요리명은 ‘양고기를 좋아하지 않더라도(Even if you don’t like lamb)’. 누린내 없이 완벽한 양고기 스테이크에 공예품에 가까운 블랙포레스트 메밀 케잌이 곁들여진다.
세 가지 치즈 라비올리는 하모니가 일품이다. 파스타에는 ‘델리체 드 부르고뉴’, 소스에는 ‘브리야 사바린’, 크래커에는 ‘티클러’를 사용해 다양한 치즈향이 입안에 폭발한다. 여지껏 먹어본 뇨끼 중 최고는 오늘이다. 90% 감자에 계란을 넣지 않는 심플한 반죽 레시피가 살도록 소스는 버터, 파마산, 후추만으로 맛을 냈다. 정확한 온도에서 반죽을 숙성시켜 완성하는데 매일 6시간이 걸린다고. 맛으로만 평가한다면 으뜸은 바로 커피리조또다. 콜드브루 커피와 파마산의 독특한 조합에 톡톡 씹히는 리조또의 식감이 합주와 독주를 번갈아 펼친 후 가니쉬 트러플이 고급 향수처럼 잔향을 더해준다.
오늘의 메인 월드클래스 와규를 맛볼 차례다. 최고급 와규에 미국인이 즐겨먹는 콜라드 잎을 튀겨 올렸다. 콘브레드로 다코야끼를 만들고, 이태리 관찰레 파슬리소스를 곁들인다. 사이드로 브라질 팜을 이용해 본매로우를 재해석했으니 ‘월드클래스’라 할 만하다. 해산물이 빠질쏘냐. 크랩, 랍스터, 관자, 킹크랩 크로켓, 올드베이 시즈닝 감자칩 그리고 꽃잎 위치까지…. 인스타그램 화보처럼 완벽한 그 창작물 띠 중앙에 멈보 소스가 호수처럼 고여든다.
이제는 달콤한 디저트들이 밀려온다. 에푸아스 아이스크림과 뜨거운 그레이슨 치즈 퐁듀를 함께 먹는 펑키한 조합에 돔페리뇽을 끼얹으니 불현듯 상큼해진다. 스파클링와인 젤리도 하나 집어보고, 도넛과 크램브릴레, 마닐라풍 셔벗으로 휴양지 기분도 만끽해본다.
마지막으로 차가운 버터팝콘 아이스크림에 따듯한 블랙트러플 버건디를 부어 아포카토처럼 음미하려니, 녹아가는 아이스크림처럼 오늘의 파티도 끝나가는 걸 느낀다.
아쉬운 마음을 아는지 집으로 향할 때 멋진 선물상자가 주어진다. 거기엔 오늘의 내가 담긴 폴라로이드 사진, 추억으로 간직될 메뉴, 더없이 위트 있는 문구가 적힌 성냥과 엽서도 들었다. 내일 점심에 PNP를 추억하며 다시 한 번 호사를 누릴 럭셔리 ‘와규 치즈버거’까지.
6년 만에 다시 방문한 PNP는 여전히 빛났다. 정교한 취향, 높은 감도, 그 안에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갖춘 이 ‘선명한 브랜드’에 사람들이 매료된 걸 나는 느꼈다. 삶을 폭넓게 누리고 싶은 당신이라면 인생에 한번, 꼭 한번 PNP를 방문해보길 바란다. 특별한 날 추억이 될 훌륭한 식사, 찬란한 경험치가 거기 있다. 더불어 어느 성실한 천재 셰프의 열정과 선량한 에너지가 당신 일상에 아름다운 파장으로 깃들 것이기에!
문의·예약 (202)595-7375
pineappleandpearls.com
주소 715 Eighth St. SE. Washington DC 20003
영업시간 수~토, 오후 6시 또는 9시
▶ 재스민 박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식당을 방문해 그 매력을 탐구하길 좋아한다. 대한민국 대표 월간지 <행복이 가득한 집> 공채기자로 시작해 월간 <까사리빙>, 웅진출판, 동아일보 출판팀에서 요리책을 만드는 등 10여년간 리빙 전문 기자로 활동했다. 13년간 가업을 이어 한정식 기업의 오너 셰프로 일하며 아름다운 한식문화를 공부했으며, 두 브랜드 모두 미슐랭에 노미네이트 됐다. 도미 후 특급 호텔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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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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