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뜸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의 삶은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눈을 떠 거울을 통하여 자신을 보고, 가족과 이웃을 보고, 하늘과 땅을 보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본다.
봄(seeing)은 우리 하루의 첫 시작이자 하루의 거개다. 무엇을 봄에서 감정이 일어나고 판단이 나오고 행동이 따른다. 봄은 우리의 마음과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우리가 ‘봄’에 소홀할 수 없는 이유다. 어떻게 보느냐, 무엇을 보느냐, 봄의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봄은 육체의 눈만의 일이 아니다. 눈으로 볼 수 없어도 본다. 시각장애의 헬렌 켈러는 육체의 눈이 아닌 촉감 마음 스스로의 개념화를 통해서도 세상을 볼 수 있음을 훌륭하게 알려주었다. 법원 관련 인쇄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오른손에는 칼을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의 여신상은 두 눈을 눈가리개로 가리고 있다. 눈을 감고도 공평무사하게 보고 판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개 눈으로 보지만(견見) 눈 이상으로 본다. 마음을 기울여 보기도(시視) 하고, 마음을 집중하여 보기도(간看) 하고, 마음과 개념으로 보기도(관觀) 하고, 살피듯이 자세히 보기도(감監)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 하니, ‘앎’도 봄이다. 봄은 몸과 마음, 앎과 생각, 심지어 눈감음으로도 보는 것이다.
봄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요한 관심사이기도 하다. 신약성경에는 눈뜸의 기적이 많이 나온다. 눈뜸의 기적은 단지 육체의 눈뜸을 넘어 진리의 눈뜸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 가운데 하나가 욕심, 편견, 집착에 사로 잡혀 못 보는 사람들을 제대로 ‘보게’(요한9:39) 하시려는 것이었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라는(마태6:22) 예수님의 말씀은, 봄의 중요성을 말씀한다. 봄은 인생의 창이다. 봄을 새롭게 해야 한다.
어떤 물체나 예술 작품, 어떤 일들을 바라보는 바가 사람마다 많이 다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화가들의 다양한 그림이 그러하다. 물이 반쯤 담긴 잔을 보고 누구는 “물이 반이나 남았다”하고, 어떤 사람은 “물이 반밖에 안 남았다” 말한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전쟁 뉴스를 같은 자리에서 함께 보고도 누구는 가자의 팔레스타인이 불쌍하다 하고, 누구는 이스라엘이 참 안됐다 한다. 사람마다 봄이 같지 않다.
물론 서로 다르게 보는 것이 틀리거나 나쁜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한다면 이는 제대로 봄, 눈뜸이 아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거나, 육체의 눈만 의지하여 보거나, 자신의 편견이나 집착으로 보면 문제의 실상이나 본질을 놓치게 된다. 보아도 잘못 보는 것이요, 보고도 못 보는 것이다.
18세기 조선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눈과 귀를 통해 지각된 외물이나 자신의 견문과 지식 혹은 명예와 출세에 현혹되면 동심, 곧 천진하고 순수하며 진실한 본심을 잃어버려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한다.
영화 ‘관상’(2013년)에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나는 얼굴만 보았지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했소. 파도를 일으키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주인공은 눈에 보이는 파도를 넘어 그 이면에 있는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지 못했음을 한탄한다.
어떻게 보아야 사물의 실상을, 어렵고 힘든 주변 사람들의 아픈 속사정을, 얽히고설킨 정치현상을, 이 시대의 시대정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 한 시인은 누구를 혹은 무엇을 자세히 보고 또 오래 보자고 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날마다 봄을 새롭게 하자. 봄을 맑고 밝게 하자. 앎을 깊고 넓게 하자. 마음을 기울여 바로 듣자, 집착과 욕심을 내려놓자. 무사심(無私心)을 기르자. 모든 일을 나의 일이요 내 형제자매의 일로 여겨 자세히 보자, 오래 들여다보자. 따뜻한 마음으로 보자. 가짜뉴스 같은 남의 눈 빌려보지 말고 내 눈으로 보자.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 기도, 명상, 정좌의 자리에서 보자. 바른 봄은 나를 세상과 이어주는 인생의 창이요 행동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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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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