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바우 식당 백금인 사장
▶ 이북 출신 부모님 손맛 이어 보쌈·빈대떡 팔아
맛 고집에 김치공장 직접 운영…분점도 안내, 40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모두 손님들 덕분
개업 40주년을 맞은 고바우 식당 앞에서 백금인 사장(왼쪽 세번째)과 백사장의 사위 크리스 김(왼쪽 두 번째)씨가 직원들과 함께 화이팅을 외치며 더 좋은 맛과 서비스 제공을 다짐하고 있다. [박상혁 기자]
“오랫동안 사랑받은 비결이요?… 제 무능함으로 다른 것 안보고 한 길만 고집해서 여기까지 이어올 수 있었죠” LA 거주 한인이라면 LA 한인타운에 위치한 한식당 고바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고바우가 40년의 역사를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를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1983년 식당 문을 연 이례 40년 동안 한결같은 맛으로 한인들에게 고국의 향수를 채워주고 있는 고바우의 백금인 사장을 만나 그의 인생과 함께 걸어온 고바우의 시작과 현재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백금인 사장은 한국에서 무역회사에 다니다 우연한 기회에 미국으로 출장 와 미국 생활을 꿈꾸기 시작했다. 1970년대는 한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기대가 클 때였다. 한국생활을 정리한 백 사장 가족은 1976년 미국으로 건너와 본격적인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샐러리맨 출신 백사장이 미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이민초기 모아둔 돈으로 햄버거 가게를 차려 몇 년 동안 장사를 하다 본격적으로 양식당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미국에 자리 잡고 금방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가득했다. 그러나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며 사기를 당했고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백사장은 “힘들었다”고 함축적으로 설명했다.
힘들었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부모님까지 초청해 3대가 이민 와 가장의 책임을 지고 있는 백사장이었다. 어떻게라도 부딪혀야겠다고 생각한 백사장은 가장 잘 아는 음식인 한식으로 다시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바우 탄생의 계기가 된 것이다.
시작은 지금의 자리가 아니었다. 베벌리와 놀만디에 위치한 일본 철판요리 집이었는데 인수 후 돈이 없어 리모델링도 못하고 시작했다. 매장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철판을 이용할 생각에 빈대떡을 집어넣어 메뉴를 짰다. 평안도 출신 부모님이 자주 드시던 대로 이북식 빈대떡을 지져서 팔았다. 평안도 사람들이 즐겨먹는 메뉴인 보쌈도 추가했다. 빈대떡 파전과 함께 어려서부터 자주 먹던 보쌈이 자연스럽게 주력메뉴로 자리 잡았다.
아내와 둘이 시작한 장사 초기, 아이들이 어려 부모 손이 필요했지만 장사가 자리 잡히지 않아 사람 쓸 생각도 못하고 고군분투 했다. 고생한 만큼 2~3년이 지나자 자리는 잡혀갔고 10년 정도 그 자리에서 운영했다. 그러다 건물주와 갈등이 생겨 현재의 버몬트와 7가에 위치한 자리로 이전했다. 가게 이전할 때를 빼고는 쉬는 날도 없었다. 성실하게, 꾸준하게 일했다.
고바우는 창업이후 지금까지 식당에서 나가는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드는 것을 고집하고 있다. 음식을 만들 수 있는 허가를 받은 장소를 마련해 재료를 공수 받아 직접 반찬, 김치 소스 등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재료도 비싼 걸로 사용한다. 내 식구 입에 들어가는 재료 찾듯이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서 사용한다. 고춧가루나 김치 등 질 낮은 중국산 재료가 넘쳐났지만 가장 좋은 배추와 태양초 고춧가루로 김치를 만들었다.
주 재료인 돼지고기 선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캐나다산이나 미국 로컬 산 돼지 등 이거저거 다 사용해 봤지만 유럽산 돼지고기가 지방이 별로 없고 또 사육환경이 좋아 마음에 들었다. 가격은 미국 산에 비해 비싸지만 네덜란드 산 돼지고기를 고집하는 이유다.
백사장은 “장사 크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게 하나 차려놓고 김치공장까지 돌리는 나를 이해 못하겠지만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고 전하며 “내 음식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을 못 참겠더라. 그래서 분점도 안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백사장은 “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할 것이다. 다음 세대들이 얼마나 따라줄지 몰라 교육을 철두철미하게 시키는 중”이라고 전하며 “고바우뿐 아니라 LA 한인타운이 2세~3 세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고생한 1세분들의 노고로 바탕으로 2~3세들이 활약해 점점 발전하는 LA 한인타운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백사장은 끝으로 “몇 년 만에 타주에서 음식 드시러 오시는 분들을 볼 때 정말 감사하다. 고바우가 40년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손님들 덕분이다. 항상 고바우를 찾아주셔서 감사하고 변치 않는 음식으로 대접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언젠가부터 오래된 식당이나 가게를 일컬어 노포라 부르고 있지만 정확한 사전적 의미로 보면 ‘대를 이어 경영되는 가게’인 것을 알 수 있다. 고바우는 얼마 전부터 창업주의 2세인 딸과 사위가 가업을 잇기 위해 경영에 뛰어들며 진정한 ‘노포’로 가는 길에 접어들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한결같은 맛과 멋으로 늘 우리 곁에서 자리 지켜준 고바우. LA 한인타운을 대표하는 노포로써 앞으로의 40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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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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