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물건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된 것은 문명 사회가 시작된 이후로 추정된다. 수렵과 채취로 생계를 꾸려가던 원시 사회에서는 대부분 생산 활동이 공동으로 이뤄졌고 가질 수 있는 물건의 종류도 적어 개인 소유권 문제가 발생할 일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게 되면서부터 이 땅이 누구 것이냐부터 거기서 생산된 물건을 누가 가질 것이냐 등등 복잡한 문제가 생겨났다. 가장 오래된 함무라비 법전을 비롯 모든 고대 문명은 절도를 금지하는 법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개인의 소유권이 널리 인정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소유권은 일부 철학자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인간의 탐욕과 질투를 조장해 분쟁의 씨앗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주장을 체계적으로 제일 먼저 편 사람은 서양 최대 철학자의 한 명인 플라톤이었다. 그는 ‘국가론’에서 재산과 도덕은 저울의 두 추와 같아서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한쪽은 내려간다’며 공화국 지도자들 사이에는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아내와 자식까지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나눠갖는다’는 생각은 플라톤을 이어받은 것임은 물론이다.
마르크스보다 200년도 전에 이 주장을 실천에 옮겨보려 한 사람들이 있다. 영국 국교에서 떨어져 나와 신천지에서 이상향을 건설해보려던 필그림이 그들이다. 1620년 11월 9일 지금 뉴잉글랜드 지역에 도착한 그들은 인디언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100여명 중 절반이 수개월내 사망하며 1623년 봄까지 굶주림에 시달린다. 그 원인은 낯선 환경과 악천후 등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농지 공유제였다.
종교적 신념으로 똘똘 뭉친 필그림이 다수였던 이들 이주민이야말로 같이 일해 얻은 수확을 골고루 나눠 먹자는 공산주의 이념을 실천하기에 적임자로 보였다. 그러나 이들마저 땀흘려 일한 사람이나 빈둥빈둥 논 사람이나 똑같이 먹을 것을 나눠준다고 하자 아무도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재난이었다.
이에 윌리엄 브래드포드 식민지 총독은 결단을 내려 농지를 인구 수대로 나누고 앞으로 자기 땅에서 나온 농산물은 농사지은 사람 소유로 하기로 방침을 바꾼다. 그 후 일어난 변화는 극적이었다. 그전에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일을 피하던 사람들도 아침부터 밤까지 김을 매는가 하면 아이들을 돌봐야 되기 때문에 집에 있어야 한다던 주부들은 아이들까지 데리고 나와 밭일을 하기 시작했다. 1623년 농사는 풍작이었고 정착민들은 그 해 가을 처음으로 풍요로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브래드포드는 자기 회고록에서 독실한 신자들이 이 때 얻은 경험은 사유 재산을 없애고 공산주의를 실천하면 행복과 번영이 올 것이라는 플라톤의 허풍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줬다고 적었다. 공산 체제에서 태만과 혼란과 불만으로 가득 찼던 사람들이 개인 소유권을 인정하자 근면하고 성실해졌으며 그 결과 커뮤니티는 풍요로워졌다는 것이다.
그는 1657년 사망할 때까지 거의 매년 총독으로 선출됐으며 장 보댕의 ‘공동체에 관한 6권의 책’을 즐겨 읽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책은 플라톤의 국가론과 공산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보댕은 여기서 모든 것을 공유하는 공동체는 반드시 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보다 일찍 1607년 버지니아에 세워진 첫 식민지 제임스타운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들도 처음에는 공동으로 수확해 똑같이 나누는 방식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 또한 같은 이유로 수확은 엉망이었고 1609년 500명이던 주민 수는 6개월 새 60명으로 줄어들었다.
제임스타운이 망하기 일보 직전인 1611년 토마스 데일이라는 새 총독이 부임하면서 사태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기록에 따르면 사람들이 사방에서 굶어죽고 있는 상황에서도 남은 인간들은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보울링 놀이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차피 열심히 노력해도 자기 것이 되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놀다 죽겠다는 것이다.
1612년 데일은 땅을 주민 수대로 나누고 자기가 경작한 작물은 자기가 갖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령을 발표했다. 변화는 극적이었다. 게으르던 인간들은 갑자기 부지런해지고 새로운 작물 기법과 기구들이 마련됐다. 수확량이 급증하면서 전에는 정착민들이 주변 인디언들에게 음식을 구걸하러 다녔지만 이제는 인디언들이 모피를 들고와 식량으로 교환하거나 땅을 담보로 먹을 것을 빌려갔다.
미국은 ‘사회주의의 무덤’으로 불린다. 전 세계에서 미국만큼 사회주의와 공산당이 힘을 쓰지 못하는 나라도 드물다. 그 원인은 400년 전 공산 사회를 시도했다 비참한 실패로 끝난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400년 전 플리머스에서의 풍요로운 추수가 미국 번영의 밑거름이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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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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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4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신 인간 농장이 돼버린 미쿡...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장악한것 같다.... 이덜은 꽁산주의정도가 아니라 봉건시대와 노예시대로ㅠ돌아가고 있고 군을 동원해 자기 궁민을 공격하는 잔인함을 가지고ㅠ있다...굶어 죽는데 볼링하는 정도가ㅜ아니라 식인정책을 하고 있다..살찐 주민을 공격하여 그 재산과 인육을 나눠먹는것이다...
이건 그때는 사실일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길마다 홈리스가 판치고 정치인덜은 세금 훔치기 바쁘다... 그런데 아무도 말하거나 시위를 하지 않고 만일 하면 공권력으로ㅠ웅징한다..불법체류자덜이 쏟아져 오고 개인 소유권을 제한하고 최저 임금만 올려 개인 사업체덜을 파산으로 내몬다.. 그것도 모자라 세금만 늘리고 엉뚱한 홈리스 구제에 세금을 천문학적으로ㅠ쏟아붇는다.. 나라는 돈을 너무ㅠ찍어내 이자만 전체 세금의 오분지 일이라고ㅠ한다..그래도 돌아간다..아무도 말 않한다..이제 미쿡에는 브래드포드나 데일이ㅡ아니고 히틀러나
개인 소유권은 민 위원님 말씀처럼 중요하다. 하지만 재산을 상속하는 법은 반대한다. 이 재산을 대대로 후손에게 물려줄수 있는 법 때문에 부자들은 평생 부자고 가난뱅이 서민들은 평생 paycheck to paycheck 삶이다. 상속제를 없애고 한 사람이 벌어들인 모든 재산은 그 사람이 죽을때까지 맘대로 쓸수 있지만 일단 그 사람이 죽으면 모든 재산은 정부 소유로 소환되게 만들어야한다. 부동산/땅 도 마찬가지. 이래랴 돈이 돌고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경쟁할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