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바이오 산업 현황과 과제
▶ 코로나19 극복 게임체인저 ‘mRNA 백신’ 개발 뒤처져…디지털·AI·빅데이터 등 활용… 바이오헬스와 접목 확산
합성생물학·재생의료·디지털치료기기·의료용 로봇 등 의사과학자 양성·규제혁파·혁신 R&D생태계 구축 필요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의 길을 닦은 과학 이단아’로 불리는 커털린 커리코(68) 헝가리 세게드대 교수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헝가리 출신인 커리코 교수는 과거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mRNA 연구를 포기하라’는 종용을 받은 것도 모자라 ‘교수 수준이 안된다’는 판정까지 받았지만 끝까지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1995년 펜실베이니아대 의대에서 교수 선임 절차를 밟다가 mRNA 연구 열기가 얼어붙는 바람에 연구비를 구하지 못했다. 그는 대학에서 ‘mRNA 연구를 계속하려면 교수를 포기하고 하위 연구직으로 가라’는 통지를 받았고 이후 암 수술까지 받았다. 커리코 교수는 인터뷰에서 “학교 측은 2013년 ‘내가 교수 수준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며 “(mRNA 백신을 개발하던 독일 바이오엔테크로) 떠난다고 하자 ‘바이오엔테크는 웹사이트도 없는 곳’이라며 비웃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우여곡절을 딛고 코로나19 팬데믹의 게임체인저로 꼽히는 mRNA 백신이 1년도 안된 2020년 말 시판될 수 있는 토대를 닦아 수백만~수천만 명의 인류를 구했다.
mRNA 백신은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담은 mRNA를 인체에 삽입해 면역력을 키운다. 효과와 안전성이 상대적으로 뛰어나고 기존 질병의 변이를 다루거나 새로운 감염병을 다루기에 적합하다. 코로나19 mRNA 백신이 조기에 개발될 수 있었던 것은 백신 설계와 합성 과정에서 디지털과 합성생물학 기술이 융합됐기 때문이다. 커리코 교수의 원천 연구에다가 데릭 로시 하버드대 의대 교수와 창업 전문가인 밥 랭어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투자자인 누바르 아페얀 플래그십파이어니어링 회장의 응용 개발 연구, 독일 바이오엔테크의 약물 등 효과적인 전달 물질인 리피드나노파티클(LNP) 기술이 접목해 시너지를 냈다.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효과적인 환자 추적·알림 시스템, 진단키트 등으로 해외에 깊은 인상을 남겼으나 끝내 효과적인 백신을 내놓지 못했다.
합성생물학도 디지털 바이오 기술이 있기에 가능하다. 합성생물학은 유전자 편집을 통해 세포를 잘라내거나 합성해 유전자 시스템을 자유롭게 설계한다. DNA 부품을 기반으로 논리회로를 설계하고 합성해 자연에 존재하지 않았던 생물학적 기능을 구현하거나 기존 시스템을 재설계한다. 항암제와 난치병 치료제 같은 신약 개발에서도 유용하다. 사람의 신장을 돼지 몸에서 키우기 등 이종(異種) 장기이식 기술을 예로 들 수 있다. 미생물의 유전 시스템을 바꿔 개량한다는 점에서 1990년대부터 연구가 진행되는 ‘대사공학’이나 ‘효소공학’과 비슷하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기술과의 융합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상엽 KAIST 연구부총장은 “합성생물학은 보건의료·식품 산업을 혁신하는 것은 물론이고 화석연료에 의존해온 화학과 에너지 산업을 친환경 바이오 기반으로 재편하게 될 것”이라며 “합성생물학과 대사공학 강국이 돼야 글로벌 바이오 경제의 주도권을 거머쥘 수 있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바이오 중에서는 디지털 치료 기기와 혁신 영상 진단 기술의 약진이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게임을 통해 불면증 개선을 시도하는 디지털 치료 기기가 올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첫 허가를 받았다. 에임메드가 개발한 이 디지털 치료 기기는 모바일 앱을 통해 불면증 인지 행동 치료를 하는 것으로 6~9주간 수면 습관 교육, 실시간 피드백, 행동 교정을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 정보 보호를 위해 사이버 보안장치도 마련됐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환자의 스마트폰에 앱을 다운로드해 사용하는 형식이다. 이달 중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아 첫 진료와 처방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연내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와 섭식장애 치료를 위한 디지털 치료 기기 임상 허가 가이드라인도 내놓을 방침이다. 올 2월 기준으로 이미 미국·독일·영국 등 해외에서는 디지털 치료 기기 허가 사례가 14건에 달했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2027년까지 지능발달장애 등 약 10종의 맞춤형 디지털 치료 기기 임상 허가 관련 가이드라인을 추가로 개발할 것”이라며 “국내 규제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바꾸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차트 판독 과정에서 AI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루닛의 경우 흉부 X레이 영상을 AI로 분석해 의사의 판독을 돕는다. 폐 결절, 쭈그러든 현상, 석회화, 기흉 등 10가지 비정상 소견을 97~99%의 정확도로 잡아낸다. 유방 석회화와 종괴 등 유방암 분석도 보조한다.
3차원(3D) 바이오 프린팅 재생의료와 의료 로봇 분야는 우리가 앞서갈 수 있는 유망 디지털 바이오 분야로 꼽힌다. 재생의료 분야의 경우 당뇨병으로 발이 썩는 당뇨발이나 손상된 무릎 연골, 요즘은 만성 신부전증 치료까지 환자의 지방 등을 추출해 재생을 시도하는 기술이 선보여지고 있다. 면역 거부반응을 없애기 위해 환자의 체성분으로 바이오 잉크를 만든 뒤 3D 바이오 프린터로 손상된 장기에 대한 맞춤형 복원을 시도하는 것이다. 베리필드마켓리서치는 고령화 현상 등으로 인공장기 시장이 커지면서 세계 3D 바이오 프린팅 시장이 2021년 1조 원에서 2030년 5조 7000억 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재생의료에서 퍼스트무버 시장을 개척하는 로킷헬스케어의 유석환 회장은 “당뇨발과 무릎 연골 치료 등 피부 재생 치료 플랫폼을 구축해 해외 수십 개국에서 임상을 진행했고 한국·미국·유럽에서 인증도 받았다”며 “하버드대 의대 교수들도 디지털 바이오의 좋은 사례라며 투자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전통 제약·바이오 시장의 후발 주자였던 우리나라가 디지털·융복합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바이오 시장에서 퍼스트무버로 도약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내시경에 로봇팔을 부착해 수술하는 의료 로봇도 우리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다. 소화기관과 관련된 위암·대장암·식도암·직장암과 암 이전 선종 단계를 진단하고 복부 절개 없이 병변만을 안전하게 떼어내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홍대희 고려대 기계공학과 교수와 제자인 김병곤 박사가 공동 창업한 엔도로보틱스의 경우 내시경 로봇팔에 유연한 케이블을 부착, 환자의 목을 통해 삽입한 뒤 의사가 2m 밖의 모터를 통해 물리적으로 조종할 수 있도록 했다. 김 박사는 “서양에서는 복강경 수술이 많은데 한국과 일본은 내시경 수술을 하지만 숙련된 의사의 수작업에 의존하는 형국”이라며 “앞으로는 수술 정확도를 훨씬 높이면서도 흉터와 부작용도 없애고 비용과 입원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환자가 화상이나 전화를 통해 상담하고 약을 처방하는 비대면 진료(원격의료)도 디지털 바이오의 핵심 중 하나로 꼽히지만 규제로 인해 별다른 진척이 없다. 현재 시행 중인 비대면 진료 시범 사업은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의원급 의료기관 등을 중심으로 하되 의료기관이 없는 섬·벽지 거주자, 장기 요양 등급 판정을 받은 65세 이상 노인, 장애인, 감염병 확진 환자 등은 예외적으로 초진도 가능하다.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감염병예방법을 근거로 한시적으로 이뤄지다가 3개월의 계도 기간을 거쳐 지난달부터 보건의료법에 따라 시범 사업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재진 환자 허용과 의약품의 재택 배송 금지 등으로 인해 닥터나우·나만의닥터 등이 국내에서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축소하거나 중단했다. 실제 서울의 뇌졸중 환자인 A 씨도 최근 퇴원한 뒤 식사 현황, 복약 여부, 문진 결과, 사물인터넷(IoT) 기기를 통한 신체 데이터를 병원과 공유하지만 약을 배송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고려대의료원, ㈜이센이 ‘뇌질환자 비대면 진료 보조 시스템’의 실증특례에 따른 것이다. 임환 홍릉강소특구사업단장은 “혁신 기업이 실증특례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홍릉강소특구가 보유한 병원·대학·연구소 등의 인프라를 적극 제공하겠다”며 규제 혁파를 강조했다.
해외에서는 디지털 바이오 등 첨단 바이오에 대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9월 ‘바이오 자국화 생산 정책’을 발표한 뒤 바이오 연구개발(R&D)뿐 아니라 제조까지 역점을 두고 있다. 중국은 높은 AI 경쟁력에다가 광범위한 빅데이터를 접목해 공격적으로 ‘바이오 굴기’에 나서고 있다. 바이오의 전통 강자인 유럽은 첨단 바이오에 대한 능동적인 규제 환경 구축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바이오를 키우기 위해 규제 혁파와 함께 의사과학자 양성과 학문·산업 간 융합, 국민 건강 정보 활용 확대, 산학연병(産學硏病) 간 유기적 협력, 혁신 의료 기기에 대한 탄력적 임상·수가 시스템, 혁신 R&D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가 R&D 예산을 올해 30조 700억 원에서 내년 25조 9000억 원으로 감축했음에도 국제 R&D 예산을 3배 가까이 늘리기로 한 상황에서 디지털 바이오의 국제 협력을 위한 틀을 잘 짜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부가 미국 보스턴의 선도 연구기관 등과 공동 연구 등 바이오 분야 국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으나 진정한 퍼스트무버가 되려면 벤치마킹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의사과학자 양성과 관련, “바이오의 시장 규모는 반도체·자동차·조선을 합친 것보다 커서 연 2600조 원이나 된다”며 “아직 의학을 공부해 산업을 일군 성공 사례가 많지 않아 KAIST 등 공대 기반 의대(의학전문대학원)를 세우는 것에 대한 저항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2025학년도에 1000명 가까이 늘려 4000명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인데 공대 기반 의대가 어느 정도 신설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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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본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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