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태평양 패권 회복 꿈꾸다
▶ 외교 전략에 ‘해상 안보’ 개념 동원, 중동~대만 잇는 해상수송로 중요…다양한 국가와 협력 질서유지 강조, 미의 후방군사기지 자처 역할 확대
군사력 강화 위한 ‘장기플랜’ 구축, ‘유식자회’ 자문회의서 방향성 결정…중과 역내 리더십을 두고 신경전 속 관계 발전시키며 자국 가치 극대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신(新) 대동아공영권’이다. 제국주의 일본이 동남아시아에서 오세아니아까지 패권을 쥐려던 야망을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다만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밀어붙이며 정복과 영토 확장에 나선 과거와 달리, 현재의 인태 전략은 다양한 국가와의 협력를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를 유지해나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본은 자유롭고 열린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 수호자”…외교 전략에 방위를 넣다
일본은 ‘자유롭고 열린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를 내세운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과 인도태평양 권역 국가들 공통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강조한다. 발단은 아베 신조 전 총리다. 2007년 8월 인도 의회에서 ‘두 바다의 교차점’이라는 연설을 한 게 시작이었다. 1655년 무굴제국 왕자가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당시 아베 총리는 “태평양과 인도양은 자유와 번영의 바다”라며 “경계를 허물고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시아태평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 범위를 넓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2017년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개념을 발표하면서 ‘인도태평양’ 문구를 아베로부터 “빌려왔다”고 인정했을 정도다.
일본의 인태 구상에서 주목할 부분은 ‘해상 안보’ 개념을 적극 동원한다는 점이다. 특히 말라카해협부터 남·동중국해에 이르는 해상교통로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코타니 테츠오 일본국제문제연구소 주임연구원은 “일본은 해양국가로서 중동에서부터 대만까지 이어지는 해상수송로가 국가 번영에 매우 중요한 안보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미국의 주도하에 기존의 국제법이 마련됐지만, 이는 약한 국가도 해양질서의 이익을 볼 수 있는 체계였다”면서 “이러한 체계의 위협은 곧 일본 안보위협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일본은 헌법상 군대를 보유할 수 없다. 어떻게 해군력을 강화하면서 군사력을 외교전략에 거리낌 없이 담을 수 있었던 것일까.
2010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토 분쟁이 결정적 계기였다. 중국의 거센 도전에 일본은 더 이상 아시아의 리더나 맏형이 아니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추월한 중국이 희토류 금수조치까지 동원하자 일본은 속수무책이었다.
해법은 해군력과 해양경찰 기능 강화였다. 안으로는 금융위기, 밖으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시달리던 미국은 일본과의 ‘집단적 자위권’을 통해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다. 2015년 미일방위협력 지침 개정은 일본에 보증수표나 마찬가지였다. 미일동맹이 지역동맹에서 글로벌동맹으로 확대돼 미국의 후방군사기지를 자처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이 부각됐다.
대만 유사시를 대비한 ‘미일 시나리오 점검(공동계획)’ 작업이 시작된 것도 이때다. 익명을 요구한 일본 방위대 출신의 한 인사는 “대만 위기를 가정한 논의는 급작스럽게 시작된 게 아니라 오랜 준비작업을 거쳤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의 국방 역할 분담은 이후 더욱 속도가 붙었다. 급기야 일본은 지난해 ‘안보 3문서’(국가안전보장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를 개정해 적의 공격에 반격할 능력까지 갖출 기반을 확보했다. 중국 또한 일본의 성장을 바라보며 군비 증강에 자원을 쏟아부었다.
일본이 이처럼 정책 방향을 전환한 배경에는 ‘유식자회’라 불리는 자문회의가 있다. 일본은 외교안보 정책을 짤 때 장기적 ‘전략’을 중시했다. 이 때문에 총리실 산하 자문회의의 영향력이 컸다. 현재 일본의 국가정체성을 ‘해양’에 맞춘 것은 여기에서 활동한 기타오카 신이치 도쿄대 교수와 호소야 유이치 게이오대 교수 등의 영향이 컸다.
총리실의 전략 방향을 전달받은 ‘종합외교정책국’ 출신 인사들이 전략을 구체화했다. 일본 외무성은 북미국을 핵심 부서로 여기는 우리 외교부와 달리 종합외교정책국의 중요성이 크다. 아베 내각의 외교안보 사령탑을 맡았던 야치 쇼타로 전 국가안전보장국(NSS) 국장과 가네하라 노부카쓰 전 NSS 차장 모두 이곳 출신이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일본의 인태 전략은 미국의 동아시아 관여를 지속하게 하는 수단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정교한 접근을 통해 중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자국의 전략적 가치는 극대화했다”고 평가했다. 일본 외교안보 전략에 정통한 현지 소식통은 “중국과 일본은 역내 리더십을 두고 보이지 않는 싸움을 벌이는 관계”라면서 “관계개선을 원하지만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하길 원하기 때문에 일본 외무성은 중국을 ‘전략적 협력관계’로 지칭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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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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