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 무드까지는 아니지만 요즘 한중 관계에 온기가 감돌고 있다. 정부의 기대감도 커보인다. 다음 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기대가 섞여있다. 한국이 2019년 이후 중단됐던 한중일정상회의를 의장국 자격으로 되살려 올 12월18일 이후 연내에 서울에서 개최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내년 초에는 시 주석이 10년 만의 국빈 방한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도 힘을 얻고 있다. 이 모든 변화는 지난달 23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중국 항저우에서 시 주석을 만나고 돌아온 후 보다 뚜렷해졌다.
한 총리와 시 주석의 만남은 자리 배치부터 인상적이었다. 한 총리가 우리 일행과 함께 시 주석 등 중국 측 인사들과 마주앉은 모습은 확대 정상회담 장면을 연상하게 했다. 2017년 5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시 주석을 만난 이해찬 전 총리가 아랫자리에 조아리듯 앉았던 것과 확연히 달랐다. 6년 전 시 주석은 고압적인 자세로 “양국 관계를 다시 이른 시일 내 정상적인 궤도로 되돌리길 바란다”며 한국의 태도 변화를 압박했다. 반면 한 총리를 만나서는 “방한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는 말을 먼저 꺼내며 부드러운 모습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 시절 5년 내내 한국을 하대하듯 대했던 중국을 돌아보면 긍정적인 변화다. 대통령실은 “시 주석이 한 총리에게 방한 문제를 먼저 언급한 만큼 이를 토대로 외교 채널을 가동해 중국 측과 본격적인 협의를 추진할 것”이라고 반겼다.
한 총리의 방중 성과에 대통령실이 고무된 것은 당연하다. 지난 정부 시절 중국은 이 특사에 대한 홀대에 이어 문 전 대통령의 방문 때도 일정의 상당 부분을 ‘혼밥’으로 때워야 했을 만큼 노골적으로 냉대했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홀대가 한국 정부의 저자세를 낳는 악순환을 계속 키웠다는 점이다. 중국 측의 일방적인 ‘사드 3불(不)’ 발표에도 정부는 변변한 항의조차 한 번 하지 못했고 한국 기업들에 대한 가해에도 수수방관했을 뿐이었다. 우리 주권조차 지키지 못한 문 정부는 되레 중국의 냉대 원인을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에서 찾는 등 엉뚱한 논리를 펴며 중국의 횡포를 두둔했다. 중국의 고자세와 한국의 저자세 탓에 문 정부 5년 내내 한중 관계는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없었다.
문 정부의 저자세 외교를 탈피하려면 시 주석의 ‘방한’ 발언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열릴 한중일정상회의에 시 주석이 직접 참석하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한중일정상회의에는 한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 등 국가 정상이 참석하는 만큼 중국에서는 당연히 국가주석이 나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일이다.
한중일정상회의가 출범한 2008년 당시 중국은 후진타오 국가주석 대신 원자바오 총리를 참석시켜 마치 중국이 한국보다 격이 높은 듯이 보이게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그때 중국은 ‘아세안+3 정상회의’에 총리가 참석한다는 점과 집단지도체제인 중국에서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의 일원인 총리도 국가원수나 다름없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앞세웠다. 백번 양보해서 1~5차 회의에 나온 원 총리와 6~8차의 리커창 총리는 정치적 중량감을 지닌 인물이라고 치자. 하지만 중국에서 1인 지배 체제가 굳어진 지금의 리창 총리를 국가 정상급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 이제 해묵은 한중일정상회의의 그릇된 관행을 수정할 호기가 왔다. 윤석열 정부가 주도적으로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요즘 대통령실의 언행에 아쉬움이 남는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만약 (시 주석의 방한이) 성사되면 한중 관계의 중요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목표”라며 옳은 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한중일정상회의에 중국 총리가 참석해온 관례를 고려하면 시 주석이 참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자세는 지레 우리의 위상을 낮추는 것으로 문 정부 때의 대중 굴욕 외교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지속 가능한 한중 관계를 바란다면 아닌 것은 아니라고 중국에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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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진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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