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방문해 지원의지 강조…가자병원참사 ‘테러그룹 소행’ 언급
▶ 바이든, 민간인 피해방지 주문하고 “분노에 잠식되지 말라” 조언
이스라엘 도착후 네타냐후 총리 포옹하는 바이든 대통령(우)[로이터=사진제공]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미묘한 국면에서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분쟁 조정의 균형자'보다는 중동의 맹방인 이스라엘의 '확고한 후원자'가 되길 택한 모양새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텔아비브 공항에 도착한 뒤 활주로에 영접 나온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포옹하며 연대 의지를 보여줬고, 회담 개시 전 언론에 공개된 모두발언에서 가자지구 병원 폭발 참사와 관련, "(이스라엘군이 아닌) 다른 쪽 소행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회담 후 현지에서 행한 연설에서는 이번 참사의 원인에 대해 가자지구 테러그룹의 로켓 오발에 따른 것이라고 더 분명히 밝혔다.
하마스 측은 이스라엘 소행으로, 이스라엘 측은 팔레스타인의 또 다른 무장 단체 '이슬라믹 지하드'의 오발 사고로 각각 규정하며 팽팽히 맞서는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준 모양새였다.
이번 전쟁에 대해 국제 여론의 중요한 변수로 등장한 가자 병원 참사에 대해 이스라엘과는 무관하며, 반이스라엘 진영이 저지른 일이라고 선언한 것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 근거로 "미국 국방부 데이터"를 거론했다. 이런 점에서 보듯, 이스라엘 소행이 아니라는 확신이 섰기에 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네타냐후와 회담하는 바이든[로이터=사진제공]
그럼에도 사태 초기에 양측이 팽팽히 맞서며 진실 공방을 벌이는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이 한쪽의 손을 들어준 것에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수반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하마스에 대해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단체인) 이슬람국가(IS)마저 다소 이성적으로 보이게 하는 악행과 만행을 저질렀다"며 "이스라엘의 방어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출 수 있도록 미국이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진 연설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구상하는 측에 하고 싶은 말이라며 "하지 말라(Don't), 하지 말라, 하지 말라"고 반복해서 경고했다. 중동 최대 반이스라엘 및 반미 국가인 이란과,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레바논을 무대로 활동하는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겨냥한 메시지로 해석됐다.
특히 연설에서 과거 골다 메이어 당시 이스라엘 총리와 나눈 대화를 인용하며, '유대인 국가' 유지에 대한 이스라엘인들의 집념을 격정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초 이스라엘에 대한 일방적 지지를 위한 여정으로 보이지 않도록 이번 방문 일정을 짰다. 그러나 출국 직전 가자지구 병원 폭발 참사가 발생하면서 큰 변수로 작용했다.
애초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 방문에 이어 요르단을 찾아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압델 파타 알시시 이집트 대통령,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과 4자 회담을 할 계획이었으나 가자지구 병원 폭발 참사로 요르단 일정은 취소해야 했던 것이다.
출장 일정의 후반부에 배치한 대중동 외교 계획이 무산된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정전'이나 '대화'를 거론하지 않은 채 대하마스 반격을 이끌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의 등을 확실히 밀어주는 쪽을 택했다.
가자지구 병원 참사로 중동 여론이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이처럼 분명한 친이스라엘 행보는 중동 국가들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미국 중재 하에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모색해온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수니파 이슬람 국가들과의 공조를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바이든 대통령이 선명한 태도를 취한 것은 우선 미국 정치권 내부의 초당적인 대이스라엘 지지 분위기 속에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내정치적으로 '안전한 포석'을 둔 것으로 읽힌다.
로이터통신 등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대한 긴급 지원과 대우크라이나, 대대만 지원을 포괄하는 1천억달러(약 136조원) 규모의 안보 패키지 예산을 의회에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미국 내 대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지지 여론이 식어가는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두 개의 전선(우크라이나와 중동)'에 대응할 '실탄'을 확보하기 위해선 미국 여야가 공히 지지하는 이스라엘 문제에서 분명한 입장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가자지구의 인도적 재난으로 연결될 수 있는 이스라엘의 '과잉 보복'을 자제하라는 메시지도 완곡하게 전했다.
그는 연설에서 "나는 당신들이 분노를 느낄 때 그것에 잠식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며 "미국에서 (테러단체 알카에다에 의한) 9·11 이후 미국인들은 분노했고, 우리가 정의를 추구하고 그것을 얻는 동안 실수도 했다"며 미국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조언했다.
하마스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의 과도한 보복 공격에 대한 자제를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와의 회담에서도 민간인들 피해 방지를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와의 공개되지 않은 대화에서 이번 사태의 악화 방지를 위해 일종의 '껄끄러운 이야기'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엑스'(X) 계정에 네타냐후 총리와 대화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나는 이스라엘의 친구로서 까다로운 질문들(tough questions)을 했다"고 밝혔다.
이는 가자지구에 지상군 투입을 준비중인 것으로 보이는 이스라엘에 민간인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지상전 이후 가자지구에 대한 구상 등 '다음 수순'에 대해 이성적인 대안이 있는지를 물었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는 평화를 추구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존엄과 평화 속에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길을 추구해야 한다"며 "내게 그것은 '2국가 해법(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5일 방영된 CBS방송 인터뷰에서 하마스가 통치중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이스라엘이 다시 점령하는 것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당장 하마스에 대한 군사적 대응은 불가피하나 그 이후 중장기적으로는 팔레스타인과 별개 국가로서 평화적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읽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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