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과천의 주택지에 위치한 ‘윤담재’의 정면. 심플하고 균형 잡힌 디자인만 보면 안을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외관이다. [김용성 건축사진작가 제공]
주택의 중심 격인 중정이 ‘ㄷ’ 자 사이에 배치되고, 마당에는 녹음만 보이는 나무 문을 조성해 프라이버시를 확보했다. [김용성 건축사진작가 제공]
지하 공간에 조성된 시네마 공간. 풍부한 음향 시스템을 갖춘 영화관은 그 자체로 존재감을 뽐낸다. [김용성 건축사진작가 제공]
석민철(45) 조윤영(42) 부부는 여덟 번 이사 끝에 이 집을 만났다. 신혼집을 원룸에서 시작해 15년간 공동주택에 살다 마련한 첫 주택이라 더욱 반갑고 의미 있는 집.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서로에게 주는 선물로, 부부는 경기 과천시 한적한 주택단지에 ‘윤담재’(贇談齋·대지면적 232㎡, 연면적 279.45㎡)를 지었다. 이름대로 가족의 추억이 켜켜이 쌓여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집이다. 수년을 계획해도 쉽지 않은 집 짓기 프로젝트는 부부에겐 어느 날 예상치 못하게 이끌린 운명이었다. 우연히 지인을 따라나선 길에 지금의 집 터를 만나고 고즈넉한 분위기에 반해 홀린 듯 계약했다.
서적과 인터넷을 뒤지며 이름난 건축가들을 수소문한 끝에 김창균(유타건축사사무소 소장) 건축가와 인연이 닿았다. 평소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과 성향에 맞는 집을 강조해 온 김 소장과 편히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이분이다'라고 확신했다고. 설계 8개월에 1년 3개월의 공사를 더해, 무려 3년이란 시간을 거쳐 완성된 2층 주택은 중정과 다락, 지하엔 영화관까지 알뜰하게 갖췄다.
■이어지고 통하는 ‘마당’
어떤 집이든 공간의 중심이 되는 요소가 있다. 윤담재의 중심은 단연 ‘마당'이다. 집을 설계하면서 땅의 형태를 가장 깊이 고민했다는 김 소장은 “주택지 끝자락에 위치한 땅은 다각형 형태였는데 옆집과 도로, 다른 쪽으로 자연을 면했다"며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라도 안쪽 마당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건물 형태를 ‘ㄷ' 자 형태로 구성해 안마당을 배치한 덕분에 바깥에서는 건물 한 채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양측의 공간이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대칭 구조가 됐다.
덕분에 계단을 포함해 1, 2층의 모든 공간에서 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외부와 내부가 마당을 매개로 하나로 이어지는 덕분에 내부 공간이 더 풍성해 보이고 넓어 보인다"는 건축가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집의 현관에서부터 마당이 보이게 한 것도 의도했던 노림수.
“대부분의 집들은 현관에서 벽이 보이거나 정돈되지 않은 거실의 소파와 주방이 보이죠. 야외 공간을 보며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집의 인상이 180도 달라져요. 주택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죠."
내부 동선은 오른쪽에 마당을 끼고 거실과 다이닝 공간, 부엌으로 이어진다. 특이한 점은 아담한 거실에 미닫이문을 설치해 필요시 방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고, 다이닝 공간의 바닥을 두 단 높여 공간을 분리했다는 것. 김 소장은 “빈도만 생각하면 집에서 거실이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며 중심에 있을 이유가 없다"며 “아파트에서 가장 옹졸하게 자리하는 식탁을 뷰가 가장 좋은 공간에 두고 독립성을 부여하는 것이 만족도가 훨씬 높다"고 강조했다. 그 말을 듣고 돌아본, 이 집의 식탁 공간은 과연 근사했다. 옆으로는 마당이 보이고 정면으로는 3m 길이 긴 창으로 녹음이 보이는 부엌을 마주하는, 집의 얼굴이 되는 공간이다.
“집에 오는 손님들이 가장 오래 머물면서 탄성을 내뱉는 공간이에요. 평면적인 구조의 아파트에 살 때는 가족이 같이 있어도 서로 등을 돌리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집 구조가 입체적으로 바뀌니 일상도 덩달아 여유가 흘러요. 요리하는 것도 즐거워지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도 덜 하게 됐달까요."
2층 공간도 1층과 마찬가지로 마당을 뷰 포인트로 삼아 열리고 닫힌다. 부부 침실과 두 자녀의 방이 마당과 복도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배치됐다. “마당을 중심축으로 해서 집을 둘러싼 자연과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맺고 있어요. 근경의 마당과 주변의 키 큰 나무들, 원경의 산세와 뒤편으로 흐르는 소하천을 연결해 자연 한가운데 있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죠."
■은밀하게 ‘행복’을 품은 집
부부에 따르면, 그러나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다. 바로 작은 영화관을 갖춘 지하 놀이공간이다. 영화관 서라운드 시스템 사업을 운영하는 남편이 야심 차게 꾸민 공간이다. 20평대 공간엔 4, 5명이 편안하게 눕거나 앉아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여느 영화관 못지않은 풍부한 음향을 즐길 수 있다. 옆으로는 간단한 취식이 가능한 다이닝 공간을 두고, 공간의 벽체는 작가들의 숙련된 작업으로 완성하는 스페셜 페인팅으로 마감해 아늑한 분위기를 살렸다. 지금은 가족과 지인들이 여가를 즐기는 공간으로 쓰고 있지만 조만간 ‘임대 공간'이라는 본래 목적에 맞춰 외부 방문객에게 개방할 생각이다. “아파트와 달리 주택은 워낙 개성 있는 공간이다 보니 활용법도 다양한 것 같아요. 가족만 즐기는 생활도 좋지만 집을 매개로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어 단조로운 일상이 풍요로워졌으면 했어요."
부부의 ‘좀 더 특별한 공간 경험'이라는 요구사항에 건축가도 지하에 ‘성큰(sunken)' 공간을 마련해 특별함을 더했다. 김 소장은 “지상층과 연결된 성큰 정원을 조성해 지하인데도 바람과 햇빛이 스며들도록 했다"며 “지하지만 얼마든지 지상보다 환하고 쾌적한 상태로 유지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다락과 연결된 자녀들의 방도 이 집만의 숨은 재미다. 초등학교 6학년인 누나(12)와 초등학교 3학년 남동생(9)의 방은 가족실을 사이에 두고 배치했는데 각자 방 위에 다락을 배치하고 서로 연결했다. 방에는 간단한 가구와 책상을, 다락에는 매트리스를 놓고 침실로 활용한다. “주택의 핵심은 공간을 어떻게 닫고 여느냐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을 위해 다락을 활용한 순환형 공간을 만들었죠."
■나의 속도를 찾아가는 생활
20대에 사내 커플로 만나 부부로 살아온 지 15년 차. 합심해 지은 첫 집의 식탁에 앉아 신혼 시절 오래된 아파트에서 바닥에 신문을 깔고 페인트칠을 하던 추억을 소환하던 부부의 얼굴엔 미소와 눈물이 수시로 배어나왔다. 그렇게 다양한 집을 배경으로, 일과 육아를 가장 좋아하는 취미이자 삶으로 삼아 함께 구축해 온 부부의 시간은 이 집에서 새로운 분기점을 맞은 듯했다. 남편은 지하 공간을 시네마 사업을 확장하는 전진 기지로 삼을 생각이고, 아내는 인테리어 소품과 가구를 하나하나 신중하게 채우며 집을 매만진다.
최근에는 집 이름을 딴 인스타그램 계정(@윤담재)을 만들어 새로운 인연을 맞을 준비도 시작했다. “유년기 아이들이 주택에서 살아봤으면 싶은 바람이 시작이었지만 집을 지으면서 오히려 나에게 필요한 일이었구나를 느꼈어요. 지금까지 정신없이 달려왔다면 우리만의 속도로, 더 재미있는 거리를 만들며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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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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