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노베이션 2023’ 가보니
▶ 겔싱어 ‘파이선’ 티셔츠 입고 등장, 3나노·2나노 소개때마다 환호성…인텔, 4년만에 5단계 공정 도약
EUV도입으로 속도 더 빨라질듯…내년 파운드리 시장 2위 정조준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19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 ‘인텔 이노베이션 2023’ 기조연설 도중 1.8나노(18A) 웨이퍼를 들어 보이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 1·2위인 TSMC와 삼성보다 먼저 1나노대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사진 제공=인텔]
19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인텔 이노베이션 2023’. 키노트에 선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개발자 행사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프로그래밍 언어‘파이선’ 코드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486 중앙처리장치(CPU)를 설계한 전설적인 엔지니어라는 근엄한 인상과 어울리지 않게 무대 위에서 푸시업을 하며 인공지능(AI) 스포츠 분석 시스템‘ai.io’를 소개하기도 했다.
여느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테크쇼처럼 가벼운 분위기로 진행되던 키노트의 공기는 행사 중반 겔싱어 CEO가 파운드리 사업 진행 상황을 언급하며 급속히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2010년대 들어 부침을 겪으며 ‘몰락한 공룡’ 소리를 듣던 인텔의 미래가 달린 진지한 사업 이야기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겔싱어 CEO가 준비된 4나노(㎚), 3나노, 2나노 웨이퍼(Wafer·반도체 원재료)를 들어 올릴 때마다 박수가 연달아 터져 나왔으나 예상치 못한 1.8나노(18A) 웨이퍼의 등장 순간에는 그 충격에 일순 정적이 흘렀다.
인텔은 행사에 앞서 취재진에게 2나노 웨이퍼 공개 계획을 알렸지만 1.8나노의 등장은 전혀 예상 밖의 ‘깜짝쇼’였던 탓이다. 현장에서는 뒤늦은 환호성이 터져나왔고 나스닥 시장에서 하락 중이던 인텔의 주가는 상승 전환했다. 행사 막바지 1000억 달러(약 133조 원)에 이르는 거액을 오리건·애리조나·뉴멕시코·오하이도에 투자 중이라는 도표는 미국의 반도체 리쇼어링 전략이 안착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선언과도 같이 들렸다.
겔싱어 CEO는 “반도체 업계에는 거대한 회사, 작은 회사, 빚덩어리 회사밖에 없다는 투자자 격언이 있다”며 “인텔은 작은 회사의 포지션을 취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해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거대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대규모의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날 인텔의 1.8나노 공개는 단순히 무리한 첨단 공정 자랑이 아니다. 인텔은 TSMC와 삼성전자(005930)가 초미세공정 파운드리 경쟁을 펼칠 때 10나노 이하로 진입하지 못하며 낙오됐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2021년 파운드리 복귀를 천명한 후 미국의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격차를 따라잡고 있다.
미중 경제 패권 격화 속에 반도체 리쇼어링이 추진되며 미국 대표 반도체 기업인 인텔이 파운드리 ‘전략자산’으로 지목된 것이다. 이에 천문학적인 투자로 10나노급에 머물던 공정을 빠른 속도로 미세화하고 있다.
인텔이 이날 공개한 4나노 CPU ‘인텔 코어 울트라(코드명 메테오레이크)’는 이미 양산에 돌입해 12월 14일 출시한다. 연말에는 3나노, 내년에는 2나노 생산이 준비된다. 늦어도 내년 초에는 현재 3나노 양산을 시작한 TSMC와 삼성전자 공정을 따라잡게 된다.
대망의 1.8나노 반도체는 내년 1분기 공장에 첫 투입된다. 겔싱어 CEO는 “ARM과 에릭슨 등이 1.8나노 공정을 활용할 것”이라며 이미 고객사를 확보할 만큼 공정이 진행되고 있음을 전하기도 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인텔이 4나노에서야 삼성전자·TSMC가 사용 중인 극자외선(EUV) 장비를 적극 도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EUV는 기존 불화아르곤(ArF)보다 파장이 14분의 1에 불과해 초미세공정 필수 장비로 꼽힌다. 인텔은 그간 EUV 없이도 공정 격차를 좁혀왔다는 뜻으로 앞으로 공정 혁신은 더욱 빨라질 수도 있다. 겔싱어 CEO는 “연말 차세대 EUV 장비를 오리건 팹에 처음으로 도입한다”며 공정 개선에 가속도가 붙을 것을 예고하기도 했다.
예상보다 빠른 인텔의 초미세공정 돌입에 삼성전자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인텔은 내년 삼성전자를 제치고 파운드리 2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다. 데이비드 진스너 인텔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내년 제조 그룹 연 매출이 업계 2위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TSMC는 750억 달러,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208억 달러의 연 매출을 올렸다. 외부 수주를 감안하면 인텔 파운드리가 삼성전자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다.
이날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크리스토프 셸 인텔 최고사업책임자(COO)는 “인텔은 설계와 제조, 패키징까지 모두 제공할 수 있으며 북미·아시아·유럽 각지에서 생산의 시작부터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는 공급망을 지니고 있는 데다 소프트웨어(SW) 플랫폼 경쟁력까지 갖췄다”며 “파운드리 경쟁사가 가지지 못한 장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의 제재에도 7나노 양산 소식을 알린 중국 SMIC 또한 김이 새긴 마찬가지다. 넓게는 대만과 TSMC를 압박 중인 중국 대외 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설령 대만이 점령당하더라도 미국이 자체적으로 최선단 공정 제조가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라며 “기술 패권 경쟁에서 미중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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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윤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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