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 한인축제재단 배무한 이사장 인생스토리
▶ 가난한 부산 8남매 가정서 80달러 들고 이민, 남미 경험 바탕 성공한 의류 기업가로 ‘우뚝’…특유의 친화력·추진력 한인축제 정상화 이끌어
LA 한인축제제단 배무한 이사장이 사회 환원과 LA 한인축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박상혁 기자]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부산 광복동 근처 보수동에서 8남매의 셋째로 태어났다. 평생 직장생활을 하던 아버지는 근면하게 일하셨지만 대가족의 생활비와 올망졸망한 8남매 학비를 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부산 시장통에서 안 해본 일 없이 지냈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28살 청년 배무한은 이후 남미를 거쳐 미국으로 이민, 의류·봉제사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일궜다. 재미시인협회장을 지낸 미주 한인 문단의 원로 고 배정웅 시인의 친동생이기도 한 배무한 이사장은 LA 한인회장을 거쳐 LA 한인축제재단 이사장을 맡아 특유의 친화력과 뚝심, 그리고 추진력으로 LA 한인축제를 튼튼한 반석 위에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정계 및 지자체들과도 폭넓은 인맥을 다지고 있는 배 이사장의 인생 스토리를 알아본다.
■청년 배무한의 도전
20대 청년 배무한이 이민을 떠나기 전 당시 인디언 담요로 유명하던 신흥모직의 직장 상사가 그에게 자신의 여동생이라며 증명사진 한장을 보여 줬다. 서독 광부 출신인 오빠와 함께 볼리비아로 이민간 지금의 아내 박정희씨 사진이었다,
“1978년 단돈 80달러를 들고 일본-LA-마이애미-페루를 거쳐 3일만에 볼리비아에 도착해 처음으로 아내의 얼굴을 봤지요.”
그보다 세살 어린 정희씨와 이른바 ‘사진결혼’으로 볼리비아 샌타크루즈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양장점을 하던 아내에게 기성복을 만들게 하고, 새신랑 배무한은 남다른 근면함과 적극성으로 시장을 누비며 옷을 팔았다. 1983년 볼리비아보다는 사정이 낫다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터전을 옮겼다.
생활은 조금 더 편해졌지만 아르헨티나 역시 경제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제품을 팔면서 외상도 꽤 주었지만 받을 길이 막막했다. 1988년 환율 리스크가 없는 곳을 찾아 미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성공한 아메리칸 드림
LA에 갖고 온 6만 달러로 아파트를 구하고. 자동차를 사고, 정착비용으로 쓰고 나니 수중에 1만5,000달러가 남았다. 이 돈을 몽땅 투자해 자바시장 한 귀퉁이 건물 4층에 청바지 원단 커팅 회사를 차리고 밤낮으로 일했다. 회사 이름은 장녀와 차녀 이름의 이니셜을 따 ‘E&C 패션’으로 정했다.
원단 커팅에 자신감이 생기니 이젠 봉제업에 욕심이 생겼다. 프리미엄진 생산에 특화된 E&C 패션은 한때 종업원 수가 1,000여명에 달하는 LA에서 가장 규모가 큰 봉제공장 중 하나로 성장했다. 청바지 제조업체로서는 드물게 재단에서부터 워싱까지 모든 공정을 원스탑 시스템으로 제공해 미국과 유럽 유수의 브랜드들로부터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았다.
“대형 의류회사들을 수없이 방문해 일감을 받았죠. 덕분에 트루릴리전을 비롯해 탐포드, 허드슨 등 굴지의 업체들이 E&C의 고객이 됐습니다. 청바지의 본고장인 미국에 ‘청바지 왕국’을 건설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뉴욕의 파슨스 디지인스쿨을 졸업하고 디자이너로 활약하던 큰 딸과 코넬대 로스쿨을 나와 대형 로펌에서 M&A 전문 변호사로 일하던 둘째 딸이 E&C에 합류해 회사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또 한번의 시련이 다가왔다. 5년 전 멕시코 국경도시 티화나에 종업원 200명 규모의 봉제공장을 차렸는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발생했다. 의류업계 전체가 직격탄을 맞았다. 30년 가까이 운영하던 의류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빠져 나왔다.
“거듭된 실패를 이겨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경험은 제가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는 힘이 됐었죠. 실패해도 다시 단칸방에서 시작하면 된다는 배짱만큼은 아마 저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겁니다.”
지금은 LA 한인타운 6가와 켄모어 코너에 사두었던 건물 2채를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부티크 호텔로 재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내년 말 완공 예정으로 두 딸이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적극적 사회 환원
사업으로 입지를 다진 배무한은 LA 한인회장으로, LA 한인축제재단 이사장으로 자신이 받은 것들을 한인사회에 돌려주는 일에 주력해 왔다. 미주 한인봉제협회 회장직이 그가 맡은 첫 단체장 직함이다. 2010년 축제재단 회장으로 영입돼 한동안 침체됐던 LA 한인축제를 정상화시켰다.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에는 LA 한인회장이 됐다.
“한인회장 재임 시절 KBS 방송국 인기 프로그램인 ‘열린음악회’를 LA에 유치해, 콜로시엄 경기장에서 성대하게 치른 게 보람으로 남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2013년 KBS 제1방송이 기획한 ‘글로벌 성공시대’에서 ‘3번의 실패 끝에 이룬 청바지 왕국, 배무한의 성공스토리’가 방영됐고,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73세가 된 배무한은 축제재단 이사장직을 2년째 맡고 있다. 펜데믹으로 2년간 중단됐던 한인축제를 2022년 멋지게 부활시켰다. 올해로 50회를 맞는 한국의 날 축제를 대회 사상 최고의 행사로 치르기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내달 12~15일 진행되는 이번 축제에는 서울시 산하 서울경제진흥원이 타이틀 스폰서로 참여해 서울시 공산품을 전시 및 판매하는 전시관을 세운다.
행사를 2주 앞둔 현재 200여개 부스가 완판됐다. 왁스 등 한국 인기가수 공연과 국기원 태권도 시범단, 안동 하회탈춤, 전북 국악단 공연을 위해 무대를 넉넉하게 넓혔다. 진주 유등이 행사장인 서울국제공원 곳곳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올림픽길에는 LED 아치를 세워 행사장 주변을 환히 밝힐 예정이다.
또 10월14일 오후 한인축제의 하이라이트 행사로 올림픽가를 따라 펼쳐질 코리안 퍼레이드를 이끄는 ‘그랜드 마셜’을 맡았다. 올해 축제 참가 인원은 지난해 40만명보다 많은 50만명으로 예상하고 있다.
공사다망한 배무한 이사장에게는 늘 응원해 주는 가족들이 큰 힘이다. 딸들에게는 친구같은 아빠라고 자부한다. 어느날 아침 ‘좋은 남편의 조건’이라는 제목의 유튜브를 시청하던 그가 아내 정희씨에게 슬쩍 물었다. 나도 좋은 남편의 조건을 가지고 있냐고. “아내가 한치의 망설임 없이 ‘당신은 차고도 넘친다’고 말했다”며 활짝 웃어 보였다.
베푼 것 이상으로 돌려받았다고 생각하기에 그는 씀씀이가 큰 편이다. 배 이사장은 “벌어서 쓰는 것만이 자기 돈이다. 이번 축제를 잘 치르려다 보니 추가되는 예산이 만만치 않지만 혹시라도 적자가 나면 개인적으로 메꿀 계획”이라며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오셔서 ‘반세기’ 역사의 축제를 마음껏 즐겨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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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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