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서가는 일본·싱가포르-고효율의 이민자 나라
▶ 건설현장서 가사·고령자 돌봄까지…필리핀 등 주변국 값싼 노동력 활용
최저임금 미적용·영주권도 없지만 자국 임금보다는 많아 ‘윈윈 관계’…임신땐 추방 등 인권침해 논란도
새하얀 페인트로 치장한 깔끔한 외관의 주택과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는 정갈한 도로. 도심 곳곳에 배치된 쓰레기통은 흡연자들의 담배꽁초 하나 놓치지 않을 기세다. 이 도시를 찾은 관광객들은 잘 관리된 가로수나 퇴적물 하나 보이지 않는 배수로를 보고 탄성을 지르고는 한다. 물론 이러한 철저한 관리에 편법이 있을 수 없다. 모두가 사람 손으로 자주 돌봐줘야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높은 인건비. 지난해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8만 달러를 넘어섰다. 한국과 일본, 중동 산유국들을 진작에 뛰어넘고 스위스나 미국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같은 선진국이 쓰레기를 치우는 데 자국민의 노동력을 허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싱가포르는 1980년대 초부터 단순 노동력이 필요한 일에는 인근 저개발 국가에서 수입한 외국인 노동자를 쓰고 있다. 토목과 건설 현장은 물론이고 가사 노동과 고령자 돌봄까지 모두 이들 몫이다.
외국인 노동자 임금은 출신국에 따라 각양각색인데 보험비까지 합쳐 대개 월 100만 원을 넘지 않았다. 저렴한 임금 계약이 가능한 것은 싱가포르 정부가 이들에게 내국인과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은 도시 외곽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여성 가사도우미는 집주인과 숙식을 함께하며 주 6일 일한다. 싱가포르에는 필리핀·인도·미얀마·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국가 출신의 가사도우미가 활동 중이며 이들의 최저임금은 각 출신 국가에서 정한다. 최저임금은 대략 월 400~600싱가포르달러(38만~57만 원) 선에서 형성되고 경력이 풍부하면 800싱가포르달러(약 76만 원)까지도 받는다. 싱가포르는 싼값에 주변국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어 좋고 제3국 노동자는 평균 30만 원에 불과한 자국 임금보다 3배 가까이 받을 수 있으니 서로 ‘윈윈 관계’라고 보고 있다.
효율적인 외국인 노동자 관리를 통해 싱가포르의 경제성장이 탄력을 받았다는 점은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 자국 인재를 키우는 데 집중하지만 부족하면 사다 쓰고 꼭 필요한 인재는 비싼 값을 치르고서라도 모셔온다는 게 싱가포르의 ‘인재 제일’ 전략이다. 일명 ‘천재 비자’로 불리는 월 소득 3000만 원 이상을 대상으로 한 전문가 비자 제도는 싱가포르의 고급 인재 유치 정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싱가포르는 업종과 학력, 구인 난이도별로 차등을 둬 인력 관리에 나설 수 있다. 예를 들어 미용 분야는 월 수입 500만 원도 무관하지만 금융권에서 일하려면 최소 월 1000만 원 정도는 벌어야 체류 비자 연장(2년씩)이 가능하다.
하지만 외국자본과 인재들이 비좁은 싱가포르로 빠르게 몰려들다 보니 부작용도 뒤따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집값을 포함한 물가가 가파르게 치솟았고 일자리를 둘러싼 내국인과 외국인 간 경쟁도 치열해졌다. 특히 높은 스펙을 지닌 외국인들이 몰려들면서 싱가포르의 평범한 국민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높은 임금과 경쟁이 치열한 고효율 사회라는 찬사에도 그늘은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현재 싱가포르에서 가장 갈등이 첨예한 분야는 바로 외국인 가사도우미, 즉 저학력 여성 외국인 노동자다. 싱가포르의 출산율 견인과 여성의 사회 진출을 위해 30만 명이 넘는 제3세계 출신의 가사도우미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계약 기간 도중 임신을 할 수 없다. 만일 임신할 경우 선처 없이 영구 추방된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영주권 획득은 절대 불가능하다.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해 종종 외교 문제로도 격화되기도 했다.
싱가포르가 이처럼 철저한 외국인 노동자 관리가 가능할 수 있었던 데는 비좁은 국토의 영향이 컸다. 아무리 가난한 나라에서 온 노동자라도 더 많은 월급을 원하게 마련이다. 만일 한국이라면 더 많은 월급을 주는 일터를 찾아 불법체류자 신세도 마다하지 않았겠지만 싱가포르는 당국의 눈을 피해 도망치기에는 지나치게 비좁을뿐더러 처벌이 두려워 신분이 불확실한 외국인을 고용할 업주도 없다.
다시 거리로 눈을 돌리니 한눈에도 외국인 노동자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청소차에서 내려 재빠르게 쓰레기통을 비우고 다음 장소로 달려간다. 흥미로운 것은 휴대폰 카메라로 청소한 쓰레기통을 일일이 촬영하면서 이동한다는 점이다. 촬영한 사진들은 업무 시간에 자신이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증거 자료로 쓰인다. 아파트에서는 주민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섞어버린다. 그러면 아파트 한쪽에서는 외국인 청소부들이 손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일일이 걸러낸다. ‘인재 제일’을 추구하는 고효율의 이민자 나라도 그늘은 짙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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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호 기자, 정호재 고려대 아세안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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