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일 금요일이었다.
오후 3시 반 쯤 노아 할아버지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노아의 첫 게임이 그 날 저녁에 열린다는 소식을 전한다고 했다. 그것은 나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이메일에는 내가 초조하게 기다리던 또 다른 내용이 담겨 있었다. 노아가 주전 선수로 출전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환호했다.
노아, 아니 김노아는 내가 사는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웨스트필드 고등학교를 3년 전에 졸업하고 미시간 주립대학 (Michigan State University)에 스카우트 되어간 한인계 풋볼 선수이다. 고등학교 10학년 때 이미 주전 쿼터백으로 학교 팀을 버지니아 주 챔피언으로 이끈 스타 선수였다. 고교 농구팀에서 포워드로도 활약할 정도로 큰 키에 잘 생긴 멋진 청년이다. 대학에 진출 후 첫 해는 출전 선수 명단에 일부러 올리지 않아 현재 나이로는 4학년이지만 풋볼 선수로는 올해를 포함해 앞으로 2년을 뛸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
작년까지는 후보 선수였다. 그런데 이번 시즌에 주전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경쟁자는 2년 후배였다. 그 후배 선수도 고등학교 시절부터 뛰어난 선수로 알려졌고 노아에 비해 오히려 더 좋은 체격 조건을 지니고 있어 노아의 주전 자리 획득에 보장이 없었다. 올 봄부터 시작한 경쟁 기간 내내 코치는 누구를 낙점할 것인지에 대해 언급이 없었다. 코치가 내심 결정을 내렸더라도 외부에 발설을 안 하니 경쟁 당사자들이나 그 가족들은 상당히 긴장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노아의 고등학교 시절 나는 노아의 게임에 자주 갔었다.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 못지 않게 내가 노아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은 노아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에 대한 감동도 큰 이유이다. 노아 할아버지는 내가 현직 교육위원인지 여부에 상관 않고 노아에 대한 정보를 나에게 전달해 주었다. 이번에 주전 쿼터백 경쟁 과정 중에도 수시로 언론 보도 내용과 비디오들을 내게 보내 주었다. 많은 분량이라 모두 다 챙겨 볼 수는 없었지만 할아버지의 정성은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나도 첫 게임 시작할 때가 되어서야 주전 쿼터백 선정 소식을 공개하겠다는 코치의 언명에 내심 불안해하며 혹시 어디에서 힌트가 될 만한 것은 없을지 종종 인터넷 검색을 하곤 했다. 그러니 내가 노아 할아버지로부터 게임 시작 불과 몇 시간 전에 전해 받았던 주전 쿼터백 결정 소식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오래 전에 노아 할아버지가 나에게 말해 준 당신의 꿈이 생각났다. 복권 당첨만큼 허황되다고 여길지 몰라도 할아버지이기에 가질 수 있는 아름답고 따듯한 꿈이었다.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지는 현장에 나를 초대하겠다고 했다. 어떻게든지 좋은 자리로 표를 구해 보내주겠다고도 했다. 그 꿈은 수퍼볼에서 노아가 우승팀의 쿼터백으로 최우수 선수상을 받는 것이었다. 이러한 꿈은 풋볼 선수라면 모두 한 번 쯤은 가져 볼 수 있고, 그런 꿈의 실현 가능성이야 하늘에서 별따기 만큼 힘들겠지만 나는 그 꿈 얘기를 듣는 순간 같은 꿈을 꾸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수퍼스타였던 노아가 대학에 진출해 첫 3년을 두각을 내지 못하고 있을 때 내 마음도 우울했다. 그런데 주전 자리 진출 기회가 주어졌을 때 감사했고 실제로 주전선수가 되어 치룬 첫 경기를 정말 온 정신을 집중해 보았다. 게임 초반 공격이 잘 안 풀릴 때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31-7이라는 여유 있는 점수 차로 게임을 마쳤을 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게임 다음 날 노아 할아버지를 만나 3시간 반 가량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나는 내내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었다. 팔십대 후반의 자랑스러운 할아버지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건강하게 오래 오래 노아에 가지고 계신 꿈을 가지고 사셨으면 좋겠다. 나는 노아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마치고 이번 시즌 중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치러질 노아 팀 게임 표를 구입했다. 그러면서 마음 속으로 외쳤다. 노아야, 나도 네 할아버지가 구해 주실 표를 가지고 수퍼볼 게임에서 너를 보고 싶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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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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