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년 전 한국 미군부대에 맡겨진 뒤 11살때 타코마로
이 준(오른쪽) 중령과 부인 이효진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서 혼혈로 태어나 고아원ㆍ위탁가정을 전전하다 11살때 미국행을 한 뒤 미군 장교가 돼 25년간 복무를 했던 ‘파란만장한 인생’의 주인공 이 준(50) 중령이 시애틀로 돌아왔다.
이 중령의 가슴 아픈 스토리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50년 전인 1973년 7월 24일부터 시작된다.
6ㆍ25한국전쟁 때 흑인 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스물 두살 혼혈 한인 여성이 대구 미군부대 캠프 헨리 앞에 바구니에 담은 어린 남자 아이와 두살 터울의 누나를 데려와 아이들 아빠 이름만 알려주고 재빨리 사라져버렸다. 그 어린 남자 아이가 이 중령이었다.
엄마는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갈 경우 한국에서 받고 있는 혼혈이라는 차별과 편견, 멸시를 벗어날 것으로 생각해 미군과의 사이에 두 아이를 낳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미군은 정식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뒤늦게 한국 대구로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여성이 혼혈의 고통과 아픔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 아버지에게 아이들을 맡기기 위해 미군부대 앞에 두고 사라졌던 것이다.
아이 아버지인 미군 병사는 갑작스레 아이들을 넘겨받고 당황해 남매를 고아원에 보냈다.
이 중령을 구한 은인은 당시 아버지의 중대장이었다. “아이들을 책임지지 않으면 불명예 전역시키겠다”는 불호령을 내렸다. 중대장은 선임부사관과 함께 직접 이 중령 남매를 고아원에서 데려오기까지 했다.
군인 신분으로 가정을 꾸리기 어려웠던 아버지는 이 중령을 위탁 가정에 맡기고 경제적으로 지원했다. 위탁 가정에서의 삶도 녹록지 않아 이 중령은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이 준’이라는 이름도 두 살 무렵 파출소에 맡겨진 적이 있고 당시 경찰관들이 서류작업을 위해 지어준 것이었다.
피부색에 대한 편견에다 넉넉지 못한 형편으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미군 물품이 거래되는 암시장에서 심부름 하고 수고비를 받으면서 살았던 이 중령은 아버지가 전역하던 1984년 2월 25일 열 한살의 나이에 타코마로 건너왔다.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아 한국어도 영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던 그는 아버지 ‘레이먼드 워맥’이란 이름을 물려받아 뒤늦게 학업을 시작했다. 헌신적인 교사의 도움으로 뒤처진 학업을 따라잡았다. 타코마 링컨고교 시절엔 풋볼에 두각을 나타내며 유망주로 떠올랐고 워싱턴주립대(WSU)에서 러닝백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미국 프로풋볼 프로 선수를 꿈꾸던 그의 진로가 군인으로 급선회한 계기는 “친엄마를 찾았다”는 아버지의 전화였다. 아버지는 흥신소를 고용해 아이들의 친모를 수소문했다. 놀랍게도 자신들을 미군 부대에 맡겼던 어머니는 다른 미군과 결혼한 뒤 같은 도시인 타코마로 건너와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이 중령 남매는 어머니를 재회한 뒤 현재까지도 잘 지내고 있다. 아버지는 코로나팬데믹 당시 하늘나라로 떠났고 한국관광공사에 근무하기도 했던 누나도 현재 타코마에 정착해 잘 살고 있다.
이 중령은 자신을 있게 해준 그 ‘수호천사’ 중대장을 롤모델로 삼아 ROTC(학군사관)에 지원했고 1998년 소위로 임관했다. 군인 복무를 위해 서류에 공식 이름을 적을 때 그는 ‘레이먼드 워맥 주니어’ 대신 모든 서류에 있었던 이름 ‘이 준’을 적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이 중령은 25년간 미군 정보장교로 근무하면서 한국서 두 차례 근무를 했고 한국 근무 당시 ‘사랑의 교회’를 다니다 부인 이효진(최효진)씨를 만나 결혼해 현재 8살인 아들 주원군을 두고 있다.
이 중령은 자신이 군부대에 맡겨졌던 ‘7월24일’에 맞춰 지난 7월24일 대구에 있는 미군부대 워커에서 전역식을 가졌다. 한국 언론에도 보도됐을 정도로 특별한 전역식을 가진 이 중령은 자신이 자랐던 시애틀로 돌아왔다.
WSU 학부에 이어 군복무 시절 교육학 석사까지 받았던 이 중령은 일단 워싱턴주에서 공무원으로 다시 도전을 할 생각이다. 공무원으로 일을 시작한 뒤 자신이 평생 꿈꿔왔던 풀뿌리 로컬 정치인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볼 생각이다.
이 중령 부부는 최근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일단 공무원 일자리를 찾아 정착을 한 뒤 정치인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면서 한인회를 비롯한 한인사회에도 봉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미국 간호사(RN) 자격증을 갖고 있는 부인 이효진씨도 남편이 공무원 직장을 잡는대로 집을 정한 뒤 근처에서 일자리를 찾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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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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