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지금 이민인가 - 멈춰선 대한민국
▶ 생산가능 인구 2067년 ‘반토막’, 공장 외국인 일손 없으면 올스톱…‘신입생 0명’ 초교도 145곳 달해
“이민정책 컨트롤타워 서둘러야”
“10년 전만 해도 외국인 근로자는 10%에 불과했는데 이제 90%가 넘습니다.” 전남 영암의 조선소 관계자는 17일 “외국인이 아니면 현장직 채용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도 시화공단의 알루미늄 압출 업체는 캄보디아 근로자가 많다 보니 크메르어로 일상 대화를 한다. 이들 없이는 폐업을 각오해야 한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농촌 지역은 더 심각했다. 한 시골 읍내에서 택시를 모는 기사는 “외국인이 아니면 손님이 없어 택시조차 움직이지 않는 ‘폐쇄 도시’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0.78명까지 내려앉은 합계출산율이 말해주듯 저출산은 이미 고질병이 됐다. 올해 신입생을 한 명도 받지 못한 초등학교는 전국적으로 145곳에 달한다. 일손이 없는 공장, 소멸 중인 학교와 지역을 채우는 것은 외국인이다. 인구 위기를 맞은 한국 사회에 이민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이다.
서울경제신문이 8월 한 달 동안 주요 농어촌과 공단의 외국인 실태를 확인해본 결과 인구 위기는 곳곳에서 나타났다. 인구 감소가 계속될 경우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67년 1784만 명(통계청 추계)으로 2017년(3757만 명)의 반 토막이 된다. 잠재성장률은 2030년에 0%대에 진입한다.
특히 소멸 지역은 이민 사회를 방불케 했다. 행정안전부의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주민 현황’을 활용한 전국 3481개 읍면동의 외국인 비율을 보면 39개 지역(1.1%)의 주민 25% 이상은 외국인이었다. 이처럼 이민은 ‘이미 온 미래’인데 법무부가 공언한 이민청은 아직 윤곽조차 않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외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는커녕 국내 인재를 다른 나라에 빼앗기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됐다. 이대로는 현상 유지는커녕 미래 첨단산업으로의 재편도 물 건너 갈 판이다. 김용찬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부족한 노동력을 대체하고, 뛰어난 인재도 영입해야 한다”며 “외국인의 유입·관리·통합 등을 맡고 이민정책을 총괄하는 전담 기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본지는 ‘리부팅 코리아, 이민이 핵심 키’ 시리즈를 통해 독일·네덜란드·일본 등 해외 선진국을 둘러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이민정책의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이달 17일 찾은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은 말 그대로 ‘다국적 마을’이었다. 비전문취업비자(E-9) 등을 통해 이주 노동자가 대거 유입된 결과였다. 실제 삼호읍 사원아파트는 조선 업체에서 일하는 해외 노동자들로 다 채우다시피 하고 있다. 아파트 주위도 네팔·우즈베키스탄·캄보디아·베트남 등 각국 음식을 파는 아시아 음식점이 많았다.
인근에 자리한 ‘유일’ 조선소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 김 모 씨는 “공장에는 600명 정도가 일하는데 아직도 전체 인원의 20%가 모자란다”며 “인원으로 따지면 100명 정도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주 노동자들을 더 불러올 수 있다면 당연히 더 쓸 생각”이라며 “고된 노동과 위험한 업무 환경 탓에 이주 노동자가 아니면 신규 현장직 채용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영암군에 따르면 삼호읍에 사는 외국인은 올해 7월 31일 기준 6862명으로 전체 읍민 2만 1931명의 31.2%에 달한다. 등록되지 않은 외국인까지 포함하면 전체 인구 중 절반 이상이 외국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조선소 등이 위치한 산업 현장의 모습은 다국적으로 바뀐 지 오래다. 유일 조선소의 경우 삼호읍 조선소 가운데서도 이주 노동자를 특히 많이 고용하는 곳이다. 용접, 도장, 파이프 조립, 족장, 의장 등 현장 작업을 하는 근로자 대부분이 이주 노동자다. 일부의 경우 숙련도가 떨어져 작업에 문제가 생기면 다시 해야 해 잔업이 늘어나는 애로 사항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주 노동자 없이는 조선소가 굴러가지 못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선박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던 외국인 여성 근로자 C 씨는 “10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며 “처음 일할 당시만 해도 9만 원이던 일당이 이제는 16만 원 정도로 올라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기술력이나 경력은 거의 관리직에 준할 정도’라는 등 한마디씩 얹는 직원들의 칭찬에서도 C 씨가 얼마나 국내 산업 현장에 잘 녹아들었는지 보여준다.
같은 날 오후에 찾은 경기도 시흥시의 한 알루미늄 압출 업체 A사 공장도 알루미늄 교정·절단 작업을 하고 있는 5명 중 4명이 동남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이 회사의 이영선(가명) 전무는 “현장 근로자가 22명인데 이 중 외국인이 12명”이라고 소개했다. 중국인 2명을 제외하면 모두 캄보디아·미얀마 등 동남아 국가에서 왔다고 한다.
중소기업들이 외국인 근로자를 뽑는 이유는 젊은 한국인 인력이 이런 현장을 외면하고 있는 탓이다. 내국인 지원자라고 해봐야 50~60대가 대부분이라 이런 고령자를 고용해서는 회사의 존립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서 힘든 점은 이제 외국인을 고용해 인건비를 낮춘다는 얘기도 옛말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엔진 부품 제조 업체 B사의 최영주(가명) 대표는 “숙식비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외국인 직원 1인당 들이는 돈이 내국인보다 연 1000만 원은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매년 1월 근로계약서를 신고해야 하는데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고 숙식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계약서상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B사의 경우 가장 오래 일한 외국인 직원은 근속 연수가 15년이나 된다고 했다. 최 대표는 “외국인 직원 대부분 국내 전문대 등에서 1~2년간 기술 교육을 받아 한국어도 어느 정도 익숙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국인을 채용하기 어려워서 외국인을 고용하는 것”이라며 “이전에 특성화고 출신 한국인 인력을 써봤는데 부모가 ‘우리 애들이 험한 일을 한다’고 연락이 오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B사는 지난해 말부터 자동화 설비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내국인은 채용하기 어렵고 외국인의 인건비 역시 오르고 있어서다. 실제 B사 공장 한쪽 부지에서는 1653㎡(약 500평) 규모의 증축 작업이 한창이었다. 공장 증축비와 설비 도입 비용을 모두 합한 투자비는 85억 원으로 지난해 매출액(약 100억 원)의 80%가 넘는다. 인력난과 비용 부담이 국내 중소기업에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경고가 현실화하고 있다. 머스크는 세계은행(2020년 기준) 국가별 출산율 순위를 트위터에 게시해 “출산율이 변하지 않는다면 한국 인구는 3세대 안에 현재의 6%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시 한국 출산율은 0.84명으로 세계 최하위(200위)였다. 2년 만에 해당 수치는 0.78명으로 더 떨어졌다.
‘저출산·고령화→인구 감소→노동력 부족→성장률 하락’은 이미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지 오래다. 2017년 3757만 명(통계청 기준)에 달하던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27년 3508만 명, 2047년 2562만 명, 2067년 1784만 명으로 급속도로 줄어 국내총생산(GDP) 타격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패널 자료를 사용해 실증 분석한 결과 생산가능인구가 1% 감소하면 GDP는 약 0.59% 줄어들고 피부양인구가 1% 증가하면 GDP가 약 0.17%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수치를 인구구조 변화에 단순 대입할 경우 2050년 GDP는 2만 3021달러로 추락하게 된다.
노동이라는 톱니바퀴가 덜컹거리자 전체 잠재성장률에도 비상등이 켜진 셈이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추락은 무서울 정도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외환위기 이전(1991~1997년)만 해도 연평균 7.3%에 달했지만 금융위기 이후(2009~2019년)에는 3.0%, 코로나 위기 이후(2020~2028년)에는 2.2%, 이르면 2030년에는 제로 성장으로 뚝 떨어진다. OECD도 이 대로면 2044년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0.62%로 평균 1.1%의 절반 남짓에 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동 투입량이 급속하게 줄면서 대한민국 성장 엔진이 전방위로 식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이미 한국 사회는 노동력 부족으로 도약은커녕 현상 유지도 버거운 상황이다. 그 결과가 바로 기업의 99%를 차지하면서 우리 경제의 밑을 떠받치는 중소기업의 고질적 인력난, 더 나아가 주력 산업의 부침과 변화 속에서 새 먹거리로 꼽히는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 핵심 인재 태부족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노동력 부족 해결,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이민정책의 꼼꼼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저출산 문제를 해소해 당장의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인 만큼 가장 현실적 대안은 외국인 노동력 활용일 수밖에 없다는 조언이다. 김용찬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선진국 대부분이 예외 없이 저출산·고령화의 문제에 직면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이민 유치 정책을 펴 왔다”며 “이를 참고해 우리만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정책 개선에 나서고 있다. 고용허가제, 외국인 계절 근로자 프로그램, 방문 취업 등 한시적 외국인 유입 정책을 통한 단순한 노동력 보충 방식에서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인재 영입(제3차 외국인 정책 기본계획 2018~2022년)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가령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을 떠나는 외국인들이 2018년 45.6%(한국직업능력연구원 기준)에서 2019년 50.4%, 2020년 54%, 2021년 62% 등 매년 늘어나고 있는 데서 이는 잘 드러난다. 최근 정부가 2027년까지 외국 유학생 30만 명을 유치해 취업과 정주 지원까지 아끼지 않겠다고 밝힌 것도 걸음마 단계의 이민정책을 보여준다는 쓴소리도 있다. 김동욱 서울대 교수는 “경제성장을 위한 목표에 부합하는 외국인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이민 심사 점수제를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는 유럽 정책 등에서 시사점을 얻어야 한다”며 “한국의 기존 생산가능인구 대비 10% 규모로 우수 인재를 이민으로 수혈할 수만 있다면 잠재성장률은 2040년 1%포인트, 2060년 1.3%포인트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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