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다 뭐하고 있는 겁니까?” - 필라델피아의 한 경찰이 분통을 터트렸다.
지난 4월 초 필라델피아 도심에서는 수백명의 청소년들이 한밤중에 거리로 몰려나와 행패를 부렸다. 경찰차 위로 올라가 껑충껑충 뛰고, 가로등 기둥에 기어오르고, 쇼윈도에 돌멩이를 던지고 … . 고삐 풀린 못된 망아지들의 난동이었다. 경관 한명이 부상하고 4명이 체포된 후에야 거리는 조용해졌다.
다음날 기자회견 중 경찰 관계자는 말했다. “이건 부모들의 이슈입니다. 경찰 이슈도, 시의 이슈도 아닙니다. 자기 아이들이 뭘 하고 있는지 부모들이 지켜봐야 합니다.”
소셜 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전에는 없던 진기한 일들이 생겨났다. 그중 하나가 플래시 맙(flash mob)이다. 생면부지의 수십 수백명이 모여들어 한 순간에 하나가 되는 일이 가능해졌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매개가 되어 불특정 다수를 연결해주는 덕분이다. 샤핑몰 한가운데서 갑자기 오케스트라 연주가 펼쳐지고, 유럽의 어느 광장에 뜬금없이 한국 사람들이 모여 공연을 하는 등 재미있는 일들은 소셜 미디어 시대이니 가능하다.
즉석공연이나 정치시위에 활용되던 플래시 맙의 악의적 변형이 탄생한 것은 2010년대 초반이었다. 플래시 맙 강도들의 등장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 모여 ‘한탕’하고 흩어지는 데 이보다 편리한 도구는 없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아차렸다.
초기에는 주로 빈곤층 흑인 청소년들이 플래시 맙 강도질에 합류했다. 특정 매장이나 백화점에 몰려가 닥치는 대로 물건들을 쓸어안고 순식간에 달아나곤 했다. 이후 10여년, 플래시 맙 강도행각은 날로 대범해지고 점점 조직적이 되었다. 특히 팬데믹 중 마스크 착용 의무화로 모두 얼굴을 가리게 되자 떼강도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길고 긴 폭염의 날들, 허리케인/열대성 폭풍, 거기에 지진까지 더해졌던 남가주의 8월은 연이은 떼강도 사건으로 어지러운 달이기도 했다. LA 카운티의 경우, 8월 1일 센추리시티 몰의 구치 매장에 강도들이 몰려든 것을 시작으로 8일 글렌데일 아메리카나 샤핑몰의 입 생 로랑 아웃렛, 12일 카노가팍 토팽가 몰의 노스트롬 백화점, 14일 이스트 LA의 나이키 매장, 15일 고급 청바지 브랜드인 수비의 라브레아 매장 등이 털렸고, 오렌지카운티에서도 크고 작은 떼강도 사건들이 이어졌다. 매장 문 닫을 즈음의 한산하고 어둑어둑한 때를 노렸던 강도들은 이제 시간에 개의치 않는다. 대범해진 것이다. 샤핑객들로 한창 붐비는 대낮에 몰려든다. 오후 4시 쯤 40여명이 들이닥친 노스트롬에서는 6만~10만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고, 5시 30분쯤 30여명이 습격한 입 생 로랑은 30만 달러의 피해를 입었다.
피해액 규모가 가장 크기는 어바인의 한 보석상. 지난달 31일 오후 12시 30분, 3명의 강도가 들이닥쳤다. 이들이 망치로 진열대를 부수고 보석을 싹쓸이해가는 데 걸린 시간은 단 60초, 피해액은 거의 100만 달러에 달한다. 플래시 맙 못지않게 기승을 부리는 스매쉬 앤 그랩(smash-and-grab) 강도들이다.
“사람들 많은 이 시간에 강도가 오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너무나 대범하다”고 보석상 주인은 허탈해했다. “(강도들이) 잡히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잡혀도 상관없다는 멘탈리티”라고 수사를 맡은 어바인 경찰은 말했다.
유사 이래 강도사건은 늘 있어왔지만 지금 창궐하는 플래시 맙이나 스매쉬 앤 그랩 강도들은 좀 다르다. 너무나도 뻔뻔하다. 나쁜 짓을 한다는 죄책감, 잡히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은 전혀 없어 보인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2014년 통과된 프로포지션 47의 부작용이라는 분석이 있다. 훔친 물건이 950달러 미만일 경우 중범이 아니라 경범으로 다뤄지면서 좀도둑이 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지금의 사태가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인 이들 강도는 왜 이렇게 뻔뻔할까. 헤어날 길 없는 가난, 그로 인한 분노와 좌절, 경제적 양극화와 인종적 불평등 등이 뒤섞인 절망감이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물건을 탈취하는 강도짓이 정당화 되지는 않는다. 가치와 덕목에 대한 교육, 즉 인성과 도덕교육이 실종된 결과라고 본다.
사회를 받쳐온 전통적 골격들이 무너졌다. 가정과 교회(신앙공동체)와 커뮤니티이다. 필라델피아의 경찰관은 아이들의 난동을 부모들 책임으로 돌렸지만, 많은 가정에서 ‘부모’는 실종되었다. 이혼으로 혹은 교도소 수감으로 많은 아이들이 부와 모 중 한명만 있는 가정에서 자라고 있다. 저녁이면 온 식구가 둘러앉아 밥을 먹고, 일요일이면 함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며, 교회를 중심으로 온 마을이 한 공동체가 되었던 시절,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도덕과 가치를 배우며 자랐다. 지금은 달라졌다. 가정은 깨어지고, 교회는 멀어졌다. 18~29세 미국 성인 중 40%는 ‘종교가 없다’고 말한다. 가정과 교회가 흔들리면서 지역공동체도 와해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런 마을이 이제는 없다.
10대들이 일말의 가책도 없이 떼강도가 되는 것은 사회의 근본이 흔들린 결과이다. 무너진 가정들에서 못된 망아지들이 양산된다. 치안당국이 강력 대처해 일벌백계 하는 것은 필수이다. 아울러 가정을 바로 세울 대책들을 이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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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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