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시절부터 무더운 여름밤이면 버릇처럼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 그 애달픈 사연을 추상하며 잠을 청하곤 했었다.
‘로미오와 쥴리엣’ 스토리를 너무 슬프게 설정한 것이 아쉬웠던지 작가 셰익스피어는 ‘피라머스와 시스비’의 비련을 다소 코믹하게, 그러나 사회적 모순을 풍자한 줄거리는 잠 못 이루던 여름밤을 소화하기에 충분했었다. 종종 푸치니(Puccini)의 오페라 투란도트(Turamdot)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m Dorma)’를 뇌리에 음미하다가 잠으로 빠져드는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웬일인가. 급변하는 지구의 환경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온 계절 풍미를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고 있는 것 같다. 시도 때도 없이 폭우, 홍수가 세상을 휩쓸고 열대지방에 우박이 쏟아지고, 추운 남극지방에는 온도가 급상승 무더위가 판을 치고 있다. 지금까지 이어온 계절의 참맛, 그 삶의 의미와 생동감이 허무하게 날아가 버리는 느낌이다.
어느 나라 또는 특정지역만의 이상 기후 변화가 아니고 지구 전체가 온통 예측불허, 이변속출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절감된다. 신생대, 고생대… 창세기 이래 최고의 기온상승 기록이라니 공포감마저 밀려든다. 온열병으로 지구 곳곳에서 인간들이 죽어나가고 강이 하늘에 올라 자리를 잡은 듯 사정없이 폭우가 내려 마구 떠내려 가고 있지 않은가.
나뿐만 아니라 누군들 이런 처절한 기후 환경 변화에 한가하게 그윽한 ‘한 여름밤의 꿈’에 도취할 겨를이 있을 건가. 확실히 천지조화, 체계적 질서의 광란은 피지배적 위치에 존재하는 모든 생태계에 변화마저 휘젓고 있다. 우리 인류도 예외일 수가 없을 것이다.
전체 우주에서 조물주로부터 최고의 환경을 물려 받은 이 지구를 향유하면서 우리 인류는 무슨 내용을 엮어 내려왔나. 이 천혜의 환경을 정성 들여 보존해 왔는가. 성전 같은 하늘과 땅에서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왔나. 누구도 자신 있게 그렇게 이 세상을 지녀왔노라고 확답할 수 없을 것이다
청정한 강과 바다, 산과 들을 품 안에 안고 살아오면서도 배반의 궤도, 탐욕, 쾌락을 위해 서로 죽이고 빼앗으며 더러운 피로 지구를 얼룩지게 만들지 않았는가. 또 그것을 위해 온갖 독가스를 마구 내뿜고 탁류 오물을 천방지축 살포하지 않았는가. 결국 인류는 분노한 조물주 앞에 무릎 꿇고 순순히 오류를 시인, 고백하며 용서를 빌어야 마땅한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
종교적 관념에서 반성해 볼 때 우리 인류는 불가침의 영역을 너무 많이 침범해 왔다. 자자손손 영원히 살아야 할 이 대자연 위에 수많은 금기품목들로 난타해 왔고 무자비하게 살생을 범해 오고 있다. 아직도 인류는 더 많은 오류를 향해 무한 돌진을 계속 하고 있다. 화생방, 핵무기 그 위에 수소탄, 코발탄 등 자멸의 길로 질주하고 있다.
오늘의 천재지변, 감당해 낼 수 없는 환경격변, 이 모든 것들이 우리 모두가 자초한 일이다. 인류 스스로가 뼈저리게 반성, 회개하고 지구가 영생할 수 있는 새로운 정신문화의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국민도 천재지변을 자초하는데 한몫을 차지해 왔다. 온갖 산업공해 배출의 공범이다. 천재지변의 근원은 공학적 분야뿐만이 아니라 더 깊이 거슬러 보면 영혼의 타락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올바른 지구 운영은 인류의 양심, 건전한 영혼으로 공존을 위한 금기사항을 준수하는 것이 모든 공해, 환경 변화를 예방하는 첩경이다.
우리 한국사회에도 갖가지 금기사항들로 뒤덮여 있다. 상호 증오와 편견, 모략이 벌창하고 있다. 마약, 쾌락, 사치, 탐욕의 늪에 점점 더 빠져들고 있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정신적 공해 천재지변의 원천들이다.
지긋지긋한 정치판의 이전투구로 민심 즉 백성들의 영혼이 원망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세상을 보는 청소년층은 희망의 미래를 설계할 길을 찾지 못해 절망 앞에 갈팡질팡하고 있다.
‘묻지마 흉기 난동’ 풍조가 성행한다던데 푸른 꿈 도약의 출구를 잃은 청소년들의 몸부림이다. 자멸 직전에는 서로 죽이고 살리는 집단자해 징조가 나타나곤 했다.
삶과 현실의 부조리를 질타했던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이방인’에는 살인동기를 “태양이 뜨거워서”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뫼르소’의 항변이 나온다. 내면에 분열의 아픔과 어둠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견딜 수 없는 태양열 상황에 놓여있는 것은 아닌지…
올 여름 따라 한 여름밤의 꿈은 도무지 뒤숭숭하고 어수선한 상념들이 여운을 남길 뿐이다. 뭔가를 그렇게도 열망하고 그리워했고 그려내던 한 여름밤의 꿈들이 종적을 감추고 어느 틈엔가 안타깝고 맥 풀리는 시시한 꿈들이 밤의 정서를 훼방 놓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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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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