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럴당 120달러 찍었던 WTI, 70달러선 하락 후 최근 80달러 돌파
▶ 각국, 여파 주시하며 촉각…중국·인도 하반기 수요가 관건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섰다가 한동안 진정됐던 국제유가가 최근 다시 꿈틀대고 있다.
올해 여러 차례 배럴당 70달러 아래로 떨어졌던 유가는 현재 81달러(서부텍사스산원유 가격 기준)를 넘어섰다.
일부 전문가들은 거래가 가장 활발한 브렌트유의 경우 유가가 향후 1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유가 급등은 소비자 장바구니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기업 채산성 악화 등 산업계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최근 유가 동향에 각국의 민관이 두루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다만, 이번 유가 급등 폭이 작년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이와 관련해서는 중국의 경기 회복 속도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 한동안 진정됐던 유가, 감산·수요 확대 전망으로 재급등
국제 유가는 경제 활동 둔화로 수요 감소세가 강했던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시기에 크게 하락했다가 작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가파르게 올랐다.
전쟁 발발 후 유가는 여러 달 동안 급등세를 이어갔고 서부텍사스산원유(WTI) 7월물 종가의 경우 3월 8일, 6월 8일 등 여러 차례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등 각국 중앙은행이 잇따라 금리를 올렸고, 경기 둔화와 원유 수요 감소 전망이 나오면서 유가는 진정되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 속에 값싼 원유를 시장에 내다 판 것도 유가 하락의 한 요인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다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OPEC+(플러스) 등의 감산 지속으로 공급이 부족해지리라는 전망이 이어지면서 유가는 지난 6월 하순부터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OPEC+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다른 주요 산유국이 국제유가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목적으로 결성한 협의체다.
여기에 미국의 긴축 기조가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과 수요 확대, 중국 정부의 추가 경기 부양책에 대한 기대감까지 더해지면서 상승 기조가 계속되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최근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난달부터 이어온 하루 100만 배럴 규모의 자발적 감산을 최소 다음 달까지 연장한다고 밝혔고, 러시아도 9월 한 달간 원유 공급량을 하루 30만배럴씩 감축한다고 밝히자 유가는 더욱 급등했다.
지난 3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9월 인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2.59%(2.06달러) 상승한 배럴당 81.55달러에 거래를 마치기도 했다.
◇ 유가 배럴당 100달러 전망도…작년 고점보다는 낮을 듯
주요 투자은행 대부분은 발동 걸린 유가가 당분간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본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브렌트유 가격이 올해 말까지 배럴당 86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기록적으로 높은 수요와 사우디의 공급 축소로 원유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USB는 최근 향후 몇 달 내 브렌트유가 85∼90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4일 이미 85달러를 넘어선 상태다.
소시에테제네랄의 애널리스트들은 브렌트유가 내년에 배럴당 100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으며, 스탠다드차타드는 98달러로 전망했다.
조지프 맥모니글 국제에너지포럼(IEF) 사무총장은 지난달 하순 CN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석유 수요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회복됐지만 공급은 이를 따라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급등세는 작년 고점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JP모건은 브렌트유의 가격이 3분기 말 배럴당 86달러까지 상승한 후 4분기에 재고가 다시 증가하면서 안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연합뉴스에 OPEC의 감산이 어느 정도 유가 하락을 막는 상황이라며 "중국 등 세계경기가 회복될 경우 유가가 다시 상승세로 전환될 것으로 판단되지만 그 폭은 지난해보다는 낮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정책 당국·산업계 촉각…"유가 상승은 한국에 특히 악재"
각국 정책 당국과 산업계는 최근 유가 급등 조짐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유가가 갑자기 오르면 소비자의 실질구매력이 감소하고 국내 경제 회복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계는 원가와 물류비 부담이 커지는 등 채산성 악화에 시달리게 된다.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 급등이 TV, 냉장고, 자동차 등 소비자 제품 가격으로 전이될 경우 가계의 부담도 커진다.
코로나19 팬데믹 경기 부양으로 인해 급등한 물가를 잡기 위해 총력을 펼치고 있는 각국 중앙은행의 고민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10% 상승하면 기업의 생산원가는 평균 0.43% 상승하게 된다.
유가 상승 관련 수혜 업종으로 꼽히는 정유업계도 단기적으로는 재고 이익이 늘어날 수 있지만, 고유가 장기화는 오히려 수요 위축을 낳는 악재로 작용한다.
특히 수출과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유가 상승은 피하고 싶은 악재로 여겨진다.
장 실장은 "한국의 무역은 작년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15개월 연속 적자를 보이다가 지난 6월부터 흑자로 돌아섰다"며 "유가가 다시 상승할 경우 그동안의 무역흑자 전환 노력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중국·인도가 변수…"하반기 수요 증가 요인"
유가 변동에는 일반적으로 OPEC+ 감산, 미국의 경제 지표와 원유 재고 상황, 금리 인상 등이 영향을 미치지만 이번에는 '인구 대국' 중국과 인도의 수요 증가 추이도 결정적 변수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맥모니글 IEF 사무총장도 석유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중국과 인도의 수요 증가를 꼽기도 했다.
그는 두 나라가 올해 하반기에 하루 200만배럴의 새로운 수요 증가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전 세계 석유 수요는 하루 기준 약 9천900만배럴 수준이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중국 경제는 코로나19 방역 봉쇄 해제 후에도 예상보다 느리게 회복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2분기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상하이 봉쇄 등에 따른 기저효과에도 불구하고 시장 전망치(7%대 초반)보다 낮은 6.3%를 기록했고, 상반기 경제성장률은 5.5%에 그쳤다.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도 전년 동기 대비 0%에 그치며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6월 원유 수입량은 하루 1천270만배럴로 전년 동기보다 45%나 늘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일 경제 분석가를 인용, 중국의 경우 수입된 원유가 어느 정도 소비되는지 수요 급증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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