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면 위로 떠오른 ‘AI 창작 저작권’ 논란
▶ AI가 키워드 몇개로 노래 뚝딱, 국내법은 창작 데이터 학습부터 저작권 침해로 보고 권리 배제
전문가들 “AI 음악, 복제 사태 우려 상생 방안 등 새 법제도 필요” 프랑스선 AI 저작권 인정 사례도
10초부터 5분까지. 노래의 길이를 결정했다. 음악의 속도는 느리게·중간·빠르게 중 하나, 분위기는 행복·공포·슬픔 등 25가지, 장르는 힙합·라틴 등 20가지 등 많은 선택지에 취향을 입력했다. 일본에서 개발된 인공지능(AI) 작곡 프로그램‘사운드로우’를 시험 사용해 봤다.‘행복하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3분짜리 힙합 어쿠스틱 노래’라는 키워드와 선택사항을 입력하니 5초 만에 15곡이 만들어졌다. 한 곡을 재생해보니 화창한 날 드라이브에 어울릴 듯한 서정적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자연스러우면서도 키워드와 잘 어울리는 점이 놀라웠다. 작곡을 전혀 몰라도 버튼 몇 번만 누르면 순식간에 그럴듯한 음악이 완성됐다. AI 기술의 발달로 작곡의 장벽이 낮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실감 났다.
이미 수준 높아진 ‘AI표’ 음악… 업계 적용 사례 속속
AI 음악 기술은 이미 세계적인 콘텐츠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됐다. 구글은 지난 5월 음악 생성 AI 기술인 ‘뮤직LM’을 선보였다. 28만 시간이 넘는 오디오 데이터를 기반으로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 사용되는 악기, 속도, 박자까지 지정할 수 있다. 메타도 지난 6월 텍스트 명령어에 맞춰 음악을 만들 수 있는 AI 음악 생성기 ‘뮤직젠’을 공개했다. 최대 12초에 달하는 음악 제작이 가능하다.
대중음악계에서는 이미 AI 기술을 활용한 작곡이 활발하다. 2017년 미국 가수 타린 서던이 자신의 데뷔 앨범 수록곡 전부를 AI 작곡 플랫폼 ‘앰퍼 뮤직’으로 만든 게 시발이 됐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음성 합성 AI 기술을 보유한 기업 수퍼톤을 인수한 하이브가 지난 5월 선보인 첫 AI 프로젝트 미드낫이 대표적이다. 그룹 에이트의 이현이 ‘미드낫’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첫 디지털 싱글인 ‘마스커레이드’는 6개 언어로 부른 첫 버전에 AI 기술을 적용, 원어민에 준하는 형태로 발음이 보정되도록 했다.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베트남, 일본어 등 6개 언어로 발매됐다. 백 보컬로 등장하는 여성 목소리 역시 미드낫의 보컬을 기반으로 추출된 가상의 목소리다. 2016년 안창욱 크리에이티브마인드 대표가 23세 여성으로 가상해서 개발한 AI 작곡가 ‘이봄’은 이미 여러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작곡·편곡, 디제잉까지 AI는 넓게 활용되고 있다. 화성학 등 특정한 규칙이 토대에 있는 음악 분야는 다른 문화 콘텐츠 분야보다 AI가 기계학습(머신러닝)을 적용하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최근 AI 편곡 서비스 ‘지니리라’를 선보인 AI 스타트업 ‘주스’의 김준호 대표는 “곡의 분량이나 장르에 따라 일정한 규칙·구조가 있고 편곡 작업 역시 그를 기반으로 진행된다”며 “알고리즘 숙지에 능한 AI를 활용하면 작업이 더 빨라질 수도 있는 게 음악 분야”라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아직 AI의 음악 창작 능력이 인간을 넘어설 만큼 획기적 수준에 도달한 것은 아니라고 평가한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AI가 인간의 창작물 수준을 비슷하게 재현하는 실력을 갖췄다는 것까지는 증명이 됐지만, 인간의 것을 뛰어넘는 AI만의 히트곡은 아직 전 세계적으로 등장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향후 잠재력을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기술 발전 비해 제도는 아직… 저작권·표절 이슈 과제
AI가 새로운 음악 시대를 열고 있지만 현행법상 저작권자로 인정받을 수 없는 점은 논란거리다. 국내 저작권법이 저작권의 대상인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국내에선 AI가 창작을 위해 기존 데이터를 학습하는 것부터 저작권 침해로 보고 저작권자로서의 권리를 배제하는 방식을 취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한음저협)는 ‘사랑의 24시간’ 등 총 6곡의 저작권자로 등록됐던 이봄에 대해 지난해 7월부터 저작권료 지급을 중단했다.
그러나 AI 음악의 증가라는 대세의 흐름을 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AI의 권리 배제가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승수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AI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다 보면 수많은 AI 음악을 무분별하게 복제하는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며 “AI 음악 시장에 대응할 새 법 제도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AI의 권리를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프랑스 음악저작권협회(SACEM)는 룩셈부르크 스타트업 ‘에이바 테크놀로지’가 개발한 작곡 AI ‘에이바’를 저작권자로 인정했다.
새로운 제도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창작자와 AI 등 프로듀서 간 상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창작자의 영감이 절대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AI를 포함한 각종 기술을 활용해 어떻게 조합·배열해 내는지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규탁 조지메이슨대 교양학부 교수는 “저작권의 비율을 창작자뿐만 아니라 프로듀서·편곡자, 아티스트에게 적절히 배분하는 방향으로 법 제도가 고안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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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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