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재유출 생태계 전반 확산
▶ 중, 미 압박에 반도체 내재화 시급…고연봉 앞세워 한 인재영입 속도, 한은 기술유출 88%가 무죄·집유 …느슨한 대응에 산업 경쟁력 저하
“면접 합격 시 연봉은 이슈(문제)가 안 된다.”
최근 중국의 한 반도체 소재 업체는 국내 채용 공고 사이트에 이 같은 내용의 채용 정보를 올렸다. 구체적인 액수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지금 받는 것보다 무조건 더 많은 연봉을 보장한다고 암시하는 것이다. 실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국내 인재 채용 과정에서 최소 2~3배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판교 등 반도체밸리에 들어선 상당수 중국 기업들이 한국 엔지니어들에게 높은 급여 수당을 제시하며 데려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중국 반도체 회사들이 한국 인력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것은 현지 정부의 ‘반도체 굴기’ 기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중국 당국은 2015년 ‘중국 제조 2025’ 정책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 인력 양성이다. 중국반도체산업협회는 올해까지 현지 반도체 인력을 76만 명까지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2020년 당시의 54만 명보다 무려 40.7%나 증가한 수치다.
이를 위해 반드시 수반돼야 하는 것이 한국의 반도체 엘리트 영입이다.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주축으로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제조 기술을 보유했다. 이 회사들에서 일하며 첨단 기술을 익힌 인력들이 한반도 곳곳에 포진해 있다. 중국은 자국 반도체 연구개발(R&D) 생태계에 ‘촉매’ 역할을 할 한국 엔지니어를 끌어들여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데 더욱 속도를 내는 전략을 펴고 있다.
사실 이런 한국 인력 끌어들이기가 최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현지 메모리 업체에는 이미 상당수 한국인들이 기술 개발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중국의 반도체 인재 사냥이 칩 제조를 넘어 소재·부품·장비 등 반도체 공급망 전방위로 퍼져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실제 중국은 미중 갈등으로 인한 압박에 따라 반도체 생태계 내재화를 서둘러야 하는 내부적 숙제를 안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과학법 등을 통해 1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 이하 시스템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자국 장비의 중국 수출까지 제한한 바 있다.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은 소재·부품·장비 현지화와 우수 기술을 보유한 한국인 기술자 영입에 속도를 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의 인재 흡수에 우리 정부가 상대적으로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1위 기업인 TSMC를 보유한 대만의 인력 보호 정책과 비교하면 인재 유출의 허들이 낮아도 너무 낮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대만 노동부는 2021년 중국 반도체 업체가 현지 채용 정보 사이트를 통해 고용을 시도하는 것을 차단하는 법을 강화했다. 중국 업체의 구인 광고가 발각될 경우 10만~50만 대만달러(약 416만~2081만 원)가 벌금으로 부과되고 구인 중개 행위를 하면 최대 500만 대만달러(약 2억 원)를 물린다. 또한 지난해에는 핵심 기술 보호를 위해 경제간첩죄를 신설했다. 반도체 핵심 기술 영업 비밀 사용이나 누설 시 이를 간첩 행위로 보고 5~12년 이하의 유기징역 또는 약 42억 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한다.
한국은 국가핵심기술 유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산업 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적용해 3년 이상 징역과 15년 이하 벌금을 병과할 수 있다. 하지만 강력한 처벌은커녕 ‘솜방망이’ 판결을 내리기 일쑤다. 지난해 발간된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1심 형사 공판 사건 33건 중 87.8%가 무죄 또는 집행유예로 판결됐다. 재산형이나 실형을 받은 경우는 33건 중 4건에 불과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러한 정부의 관심 부족과 느슨한 대응이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 확보를 저해하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력 부족 현상이 글로벌 반도체 업계 전체에 퍼진 만큼 국내 인력들이 중국은 물론 미국·유럽에까지 유출되면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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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령·노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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