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출산 해소 팔걷은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 일하는 사람 갈수록 줄어 지금 해결 못하면 일본처럼 회복 불능, 자녀 학자금·난임 치료 지원… 셋째 낳으면 ‘조건없이 특진’ 혜택
사내 복지정책 계속 보완, 미래인구연 회장 맡아 저출산 대응…국내 건설 산업에 ‘매니지먼트 기술’ 도입, 대형 프로젝트도 수주
“기업이 부실 징후를 보이면 구조 조정을 합니다. 사람도 암에 걸리면 종양을 도려내죠. 살겠다는 일념으로 특별한 수단을 쓰는 것입니다. 한국에 일하는 사람보다 부양받는 사람이 많아지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 여파는 비단 아동복, 산부인과, 유제품 산업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소비는 물론 전 산업, 국방, 외교 등 모든 면에서 악영향을 끼칩니다. 국가가 침몰하고 망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글로벌 건설사업관리(PM) 전문 기업 한미글로벌은 올해 6월 사내 복지 제도를 파격적으로 확대 개편했다. 회사는 두 자녀 이상 출산한 구성원(직원)에 대해 최대 2년의 육아휴직 기간을 근속 연수로 인정해 휴직 중 진급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며 셋째를 출산한 직원은 승진 연한이나 고과 등의 조건 없이 즉시 특진시키는 제도를 도입했다. 넷째부터는 출산 직후 1년간 비용과 상관없이 육아도우미를 지원한다.
한미글로벌이 이 같은 복지 혜택을 펼칠 수 있는 데는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되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구 한미글로벌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김 회장은 “유엔의 세계 인구 추계에 따르면 2050년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400만 명으로 감소하고 같은 기간 65세 이상 노인은 1800만 명으로 급증한다. 통계청도 2070년이면 국내 생산가능인구보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더 많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일하는 사람보다 부양받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어떻게 유지되겠나. 인구문제가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위기인 이유”라며 입을 열었다.
김 회장은 1996년 한미파슨스(현 한미글로벌)를 창립하며 국내 건설 산업에 PM 개념을 도입한 인물이다. 발주·설계·시공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건설 산업에 ‘매니지먼트 기술’을 적용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끈 사례만 국내외 2900여 개에 달한다. 회사는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와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 등 굵직한 건설 현장의 사업 관리를 맡았다. 지난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SK넥실리스 폴란드 동박공장 등 하이테크 부문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형 신도시 건설 사업인 네옴시티의 특별 총괄프로그램관리(e-PMO) 용역을 수주하며 매출 3744억 원, 영업이익 307억 원, 당기순이익 269억 원을 기록해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이 같은 성과를 토대로 회사는 지난해 미국의 세계적인 건설 전문지 ENR(Engineering News Record)이 발표한 ‘2022년 글로벌 CM·PM 부문’ 세계 8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프로젝트 성공의 필수 요소로 ‘프리콘(시공 전 사전 시뮬레이션)’을 꼽아온 김 회장은 최근 인구문제 해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수의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이 골든타임이 5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관측을 내놓으면서다. 김 회장은 “인구문제의 세계적인 석학들은 대한민국이 인구 위기를 극복할 골든타임이 앞으로 5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이미 지방에서는 농업·요식업·건설업 등 다양한 산업군이 외국인 없이는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 인구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일본처럼 회복 불능 상태로 진입하는 것은 물론 그 속도도 더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민간 차원에서 헤쳐나가고자 발족한 민간 싱크탱크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의 발기인 대표를 맡기도 했다.
김 회장이 인구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회사 창립 이전부터다. 1980년대 건설 회사 재직 시 일본 출장을 다녀온 그는 당시 일본의 노동력 부족 문제가 한국에서도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한미파슨스를 창립하면서부터 구성원들에게 기혼, 비혼, 입양 여부, 자녀 수와 관계없이 자녀에게 학자금을 지원해주는 복지 제도를 도입했다. 이후에도 자녀 출산 수에 따라 출산지원금을 100만~1000만 원까지 지원하고 1회당 100만 원 한도로 난임 치료·시술 실비를 횟수 제한 없이 제공해왔다.
김 회장은 “학자금 지원 제도를 도입할 당시만 하더라도 회사 규모가 작아 재정적으로 부담이 됐다”면서도 “구성원들이 학자금 지원을 받기까지 회사가 성장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나아가 기업이 할 수 있는 출산 장려책의 ‘베스트 프랙티스(모범 사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6월 확대 개편한 복지 제도도 그간의 제도가 계속 진화해온 결과”라며 “앞으로도 계속 보완, 진화해나갈 예정으로 또 하나의 모범 사례를 만들어가려 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김 회장은 출산 장려를 위한 ‘근무지 배려’ 제도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해외 근무가 많은 회사 특성상 젊은 구성원들이 연애할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김 회장은 “입사할 때는 다들 자녀를 많이 낳겠다고 했는데 챙겨보니 출산율이 지극히 낮더라”며 “일 잘한다고 해외만 돌리는 경우가 있던데 그럼 데이트할 시간도 없다. 비혼 출산이나 입양도 좋으니 회사 차원에서 사람별로 더 챙겨나가려 한다”고 설명했다. 한미글로벌에 따르면 현재 사내 기혼자 출산율은 1.57명, 전체 직원 출산율(미혼자 포함)은 1.21명이다. 회사는 2035년까지 사내 출산율을 2.0명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다만 김 회장은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도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출산 예산으로 16년간 280조 원을 쏟아부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봤을 때 저출산 예산 비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며 “‘선택과 집중’을 거쳐 인구문제 예산을 조금 더 과감하게 쓸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인구 위기 대응을 위한 저출산 정책 및 재정 사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가족 지원 예산(아동수당·육아휴직 혜택 및 보육 지원에 해당하는 지출을 포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65%로 OECD 평균(2.29%)에 비해 낮다. 프랑스(3.34%)와 독일(3.24%)은 3%대로 한국보다 한참 위였고 일본(1.95%)도 한국보다 높았다.
이를 위해 김 회장은 ‘어떤 형태든 낳기만 하면 국가에서 책임져주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불필요한 사업은 모두 없애고 난자 보관, 난임 치료 등 출산에 필요한 지원과 주택 등 자녀 양육에 필요한 복지를 뒷받침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으로는 대통령 직속 혹은 기획재정부 장관이 겸임하는 인구문제 전담 부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의 인구문제는 비혼·미혼 출산에 대한 반감, 임신중절, 입양 기피 문화, 과도한 교육열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고 진단하며 “사회·문화적으로는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아이를 입양하는 것도 굉장히 좋은 시그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사 창립 당시 김 회장이 기틀로 삼은 정신은 △구성원이 행복한 기업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 △건설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이었다고 한다. 김 회장은 ‘건설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을 목표로 삼게 된 배경으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꼽았다. 그는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발생하며 이래서는 안 된다 싶어 미국 회사하고 한미파슨스를 합작해 만들게 됐다”며 “27년간 건설 산업의 혁신과 반성을 이야기했지만 ‘광주 아파트 건설 현장 붕괴 사고’를 보면 삼풍백화점 사고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김 회장은 “정부 등 발주자가 리더십을 갖추고 상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관리 체계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며 “발주·설계·시공 등 다양한 업계 이해관계자들이 같이 ‘베스트 프랙티스 프로젝트’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글로벌 진출 전략은한미글로벌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래형 신도시 프로젝트 ‘네옴시티’ 건설 근로자를 위한 주거 시설 단지 조성 프로젝트 모니터링 용역 계약을 체결하는 등 해외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사우디 국영 부동산 개발 업체 로슌이 발주한 155억 원 규모 주거 복합 단지 ‘리야드 로슌 세드라’ 커뮤니티 조성 건설사업관리(PM) 용역과 디리야 게이트 개발청이 발주한 440억 원 규모의 ‘디리야 사우스 앤드 가든’ 주거 복합 단지 PM 사업을 수주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네옴뿐만 아니라 사우디에서 이뤄지는 기가프로젝트 5개 중 3개에 우리가 PM사로 관여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제2 중동 바람’ 등 건설 업계 전체가 지나친 낙관을 가지는 것은 무리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접근해야 한다. 하기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관리 역할을 하는 PM사와 실제 시공을 맡게 될 건설사는 타당성·사업성 등 충분한 검증을 거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김 회장은 인도네시아 신수도 사업이나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 사업 등 한국 컨소시엄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분야에 ‘원팀코리아’ 진출이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가격경쟁보다 외교력의 영향이 큰 분야에 금융·설계·엔지니어링·PM·시공·정부 등이 함께해서 원팀코리아로 가는 게 필요하다”며 “민간이 주도하면 정부(외교)와 금융이 지원해주는 방식이 적합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He is…▲1949년 경남 거창 ▲서울사대부고 ▲서울대 건축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 ▲서울대 건축학 박사 ▲1973년 한샘건축연구소 ▲1984년 삼성물산 ▲1996년 한미파슨스 대표이사 사장 ▲2009년 한미글로벌 대표이사 회장 ▲2017년 한미글로벌 회장 ▲2022년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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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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