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 연방 대법원은 인종의 다양화를 위한 어퍼머티브 액션 정책(affirmative action policy, AAP), 즉 긍정적 대처 정책은 미 대학 입학 전형에서 배제 되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인종다양화를 위한 이 정책은 무엇이며 역사적으로 왜 이 법을 시행하게 되었는가는 다소 생소한 얘기다.
그러나 이 법령은 우리 소수민족들의 모든 생활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특히 대학입시전형 과정이다. 또한 지금까지 비교적 묵언 속에 시행 되어 오던 졸업생 자녀와 학교 지원 기부자 자녀의 입학(legacy admission) 문제도 교육부 민권국 관심사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학교입학 문제뿐만 아니라 그동안 시행되어 오던 모든 연방 정부의 청부업자나 재정적 지원을 받는 모든 직장이나 기관에서 인종다양화를 위한 긍정적 대처 정책도 폐지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서 AAP 정책의 역사적 배경과 올바른 이해는 우리 생활에 중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AAP 정책은 1961년 3월 6일 존 에프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 재임시 행정명령(Executive Order 10925)을 통과, 실행하게 되었다. 이 행정령의 골자는 연방정부 청부업자들은 그 직원들의 대우 및 직원채용에 있어 인종, 색깔 또는 국적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령이었다.
이 법이 왜 생겼을까. 그것은 비록 링컨 대통령이 1863년 남북전쟁 당시 노예해방을 선포했지만 흑인 노예들은 전쟁 후에도 여전히 노예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과거 흑인 노예들에 대한 남부 노예주들의 인종차별 인식에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예해방은 되었지만 흑인들은 백인들과 같은 평등과 기회는 꿈에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남부의 노예제도는 철폐되고 1865년 유니온 군의 주도로 남부에 흑백 공화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여태까지 백인들의 노예로 살던 사람들이 무슨 능력으로 정부를 이끌어나갈 수 있었겠는가. 남부전쟁의 남군 노예주나 장교출신들이 다시 요직에 당선되어 권력을 잡게 되었던 것이다.
인종차별 소송 건으로 1892년 루이지애나 주에서 흑인이 기차로 여행 중 백인 전용 칸에 승차했다고 체포되었고 호머 프레시(Homer Plessy)는 이것을 고소했고 이 소송은 미 대법원 판결에서 프래시 대 펄구선 (Plessy v. Ferguson 1896) 흑백은 평등해야 하지만 분리되어야 한다(equal but separate)고 판결했다. 이 판결의 근간은 1868년 7월 9일 통과 비준된 헌법개정법 14조로 과거신분이 노예였든 아니든 미국에서 출생한 사람이나 귀화한 사람들은 모두 미국 시민으로서 똑 같은 보호를 받는 것이다.
1954년 학교 흑백분리는 브라운 대 교육청(Brown v. Board of Education) 제소로 대법원 판결에서 평등과 분리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미 대법원의 이 역사적 판결로 흑인들도 처음으로 백인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이다. 루이지애나의 평등과 분리의 대법원판결이 있은 지 85년이 지나서다.
7년이 지난 1961년 AAP 법의 실시는 미 연방정부와 거래를 하는 모든 분야의 업체들 그리고 재정적 지원을 받는 모든 교육 기관이다. 당연히 그중에서도 예민한 분야의 하나가 대학 입학전형 과정이다. AAP 정책 이전에 흑인이 명문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과거에 대학 입학전형 과정에 연방정부가 개입해 제재할 수 있는 법적권한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1964년 존슨(Lyndon B. Johnson) 대통령 재임 시 포괄적인 민권법이 통과되어 인종, 색깔, 국적, 종교 또는 연령으로 차별할 수 없도록 했다.
이 법은 더 나아가 장애자(Section 504) 그리고 성별(Title IX)의 차별도 포함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모든 분야에 민권법이 시행되었다. 흑인 최초 대법관을 지낸 덜굿 마샬(Thurgood Marshall)도 메릴랜드 법대에서 받아주지 않아 디시의 흑인대학 하워드 법대를 나왔다. 대법원 판사 클라렌스 토머스(Clarence Thomas) 법관도 AAP 정책을 제한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는 매사추세츠에 있는 홀리크로스 대학을 나오고 1974년 예일 법대를 나왔다.
이제 이 법이 실시된 후 반세기가 흘렀다. 그동안 많은 소수민족들이 긍정적 대처 정책으로 명문대학을 나와 미 주류사회에 진출했다. 소수민족 학생들이 명문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은 입학전형 과정에서 소수민족들을 우대해서 입학했다고 하기 보다는 법령에 의에 평등한 기회를 적용한 타당한 결과라고 봐야 한다. AAP 정책으로 인해 소수민족을 고용하지 않던 곳이 소수민족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미 연방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지금까지 백인들만이 누려왔던 전통을 붕괴 켰다. 백인들은 역차별이라고 불만을 토로하기에 이르렀다. 한 백인 의대 지원 생은 역차별을 들어 소송해, 미 대법원 판결(Regents of University of California v. Bakke 1978)을 이끌어 냈다. 미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대학이 인종의 쿼타를 사용하는 것은 위헌이지만 대학 입학전형에서 소수민족을 더 받아들이기 위해 긍정적 대처 정책을 사용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 남부 재건시기부터 미 대법원의 1869년 흑백 평등 분리 판결, 1954년 학교 흑백 분리 폐지 판결, 1961년 긍정적 대처정책, 1964년 민권법이 통과되고 긍정적 대처정책이 시행되기까지는 미 대법원의 일련의 역사적 판결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미 대법원의 판결이 내년 대학입시 전형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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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춘 북버지니아 종합학교 초대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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