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9만달러 내놓기·쪼개 팔기·따로 팔기’ 교묘한 전략, 세금 시행 전 서둘러 팔고 시행 후에는 판매 ‘올 스톱’
▶ 기대와 달리 ‘맨션세·양도세’ 둘 다 제대로 안 걷혀…‘부유층 vs 빈곤층 갈등’ 격화 우려·소송과 투표에 관심
LA시가 4월 1일부터 500만달러 이상 부동산 매매에 별도의 세금인‘맨션세’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저택 소유주들은 각종 편법을 이용해 세금을 피하고 있어 당초 목표와 달리 세금이 잘 걷히지 않고 있다. [로이터]
‘맨션세’(Mansion Tax)는 LA 지역 노숙자 문제 해결에 필요한 거액의 예산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다. 그런데 맨션세 시행이 원래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4월 1일 맨션세 부과가 시행된 이후 LA 부유층은 맨션세 부과 대상인 500만달러 이상 주택 판매를 중단했고 이로 인해 현재 예상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세금이 걷히고 있는 것이다. 맨션세 부과로 걷히는 예산은 퇴거 방지, 세입자 지원, 저소득층 주택 구입 등의 목적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맨션세는 지난해 선거 때 유권자 찬성 58%를 얻어 통과됐다. 맨션세 지지자들은 주택 시장이 조정기를 거치면 주택 거래가 늘어나 세금 유입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납세자 권리 단체와 건물주 단체 등은 맨션세 시행을 중단하기 위한 소송을 진행했고 고가 부동산 소유주들은 소송 진행 상황을 살피며 부동산 처분을 미루고 있다. 시 정부 역시 소송 결과에 따라 이미 걷힌 세금을 다시 반환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맨션세 부과로 걷힌 예산 사용에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맨션세는 LA 양극화 결과물
이번 맨션세 도입 과정에서 LA 지역 부유층과 빈곤층 삶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여실히 드러났다. 4만 명이 넘는 노숙자가 길거리 생활을 할 정도로 LA 노숙자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저소득층 주택이 턱없이 부족한 LA에서는 직업이 있어도 주택 임대 비용 감당이 힘들 정도다. 이 같은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맨션세가 전격 도입됐다.
맨션세 반대자들은 2,000만달러가 넘는 호화 주택에 거주하는 ‘수퍼 리치’가 즐비한 LA에서 500만달러짜리 주택은 ‘맨션’(저택)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컴패스 부동산의 대니얼 레벌린스 에이전트는 “(맨션세는)말도 안 되는 세금이다”라며 “LA에서 500만달러 규모의 주택은 맨션에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맨션세는 500~1,000만달러가 넘는 주택을 팔 때 4%의 세금을 부과하고 거래가가 1,000만달러를 넘으면 세율은 5.5%로 높아진다. 레벌린스 에이전트는 시 정부와 주 정부가 거액의 납세자 세금을 노숙자 문제 해결에 사용하면서도 진전이 없는 것을 볼 때마다 절망감을 느낀다”라며 “현재 정부의 예산 낭비는 ‘미친 짓’과 다름없다”라고 강하게 불평했다.
■세금 안 내려고 시행 전 서둘러 처분
하지만 맨션세 지지자들은 정반대의 입장이다. 옥시덴탈 대학 도시환경정책학과 피터 드라이어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21년~2022년 회계연도에 LA에서 거래된 단독 주택 중 500만달러가 넘는 주택은 3% 미만이다.
드라이어 교수는 “98%에 해당하는 LA 주택 소유주는 맨션세 부과 대상이 아니며 맨션세 부과 대상인 주택 소유주는 세금을 감당할 능력이 있다”라며 “유명 영화배우를 포함한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을 대상으로 시위하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비난했다.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등 일부 도시도 고가 주택 거래에 세금을 부과하기 위한 특별 세법을 통과시킨 도시지만 LA는 고가 주택 거래세를 주택난 부족에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한 최초의 도시다.
■449만달러, 쪼개 팔기, 따로 팔기
레벌린 에이전트는 현재 LA 인근 베니스 비치시의 한 주택의 판매 대행을 담당하고 있다. 이 매물의 가격은 499만달러로 맨션세 부과를 피하기 위한 목적이 다분함을 보여주고 있다. 건평은 약 3,961평방피트, 3층짜리인 이 매물은 움직이는 계단과 목재 마룻바닥 시설을 갖춘 ‘파티용’ 주택으로 홍보되고 있다.
레벌린스 에이전트는 “(사실) 이 매물의 가치는 리스팅 가격보다 높다”라며 “520만달러에 내놓을 경우 시 정부에 맨션세로 약 20만달러를 고스란히 바쳐야 한다”라고 귀띔했다.
현재 LA 지역에 리스팅 가격이 500만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매물이 많은데 ‘ULA’(United to House L.A.)로 불리던 맨션세를 피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다. 다른 회피 수법으로는 부동산을 여러 토지로 나누는 이른바 ‘쪼개 팔기’와 부부 소유의 부동산을 ‘공동 거주자’(tenants in common) 소유로 변경해 각자의 지분을 낮은 가격에 따로 파는 ‘따로 팔기’ 등이 사용되고 있다.
이들 수법은 법률 회사 어빈 코헨 엔 제스업이 지난 4월 블로그에 ‘맨션세 회피를 위한 9가지 요령’이란 제목으로 올린 글에 포함되어 있다.
타이틀 보험 업체 시카고 타이틀의 네이선 스타크 고객 관리 부서 대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LA에서 500만달러가 넘는 상업용 및 주거용 부동산 거래는 모두 238건이었다. 그런데 맨션세가 시행된 4월 1일부터 6월 중순까지 500만달러가 넘는 부동산 거래는 고작 34건으로 급감했다. 스타크 대표 등 일부 부동산 관계자들은 맨션세가 목적과 달리 역효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가 주택 거래가 줄어 시 정부가 거둘 수 있는 양도세 수입이 감소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소송·투표’ 결과에 따라 시행 중단될 수도
현재 진행 중인 소송과는 별도로, 가주 유권자들은 2024년 유권자에게 세금 인상 정책에 더 큰 발언권을 부여하고 2022년 1월로 소급 적용되는 지자체 세금 인상에 3분의 2의 찬성을 요구하는 발의안에 투표할 예정이다. 이 발의안 투표 결과에 따라 맨션세 시행이 중단될 수도 있다.
LA시 관계자들은 2024년 선거 전 LA 주민들이 맨션세 시행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고 지지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하고 있다.
맨센세 지지자들은 당초 과거 주택 거래를 기반으로 올해 약 9억달러의 맨션세가 걷힐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모기지 이자율 상승에 따른 주택 시장 둔화로 올해 세수는 약 6억7,000만달러에 그칠 것으로 시정부는 예측하고 있다. 4월 이뤄진 거래 4건과 5월 있었던 24건을 통해 5월까지 약 1,550만달러의 맨션세가 걷혔다.
시 정부 측은 부동산 업계와 저택 소유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500만달러 이상 주택 거래가 늘어나는 현상으로 보고 있다. 시 정부는 맨션세 반대 그룹이 승소해 보상금을 지급해야 할 때를 대비해 징수가 완료된 세금만 지출에 사용할 계획이라 밝혔다.
■‘노숙자·저소득 세입자’ 주거 해결 유일 수단
이 같은 계획이 공개된 뒤 최근 LA 도시 위원회 청문회에서 자금 담당 관리와 몇몇 시민 활동 단체 관계자 간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민 활동 단체 관계자는 배스 시장이 맨션세에서 예산에 할당된 1억5,000만달러를 징수 이전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탄원했다. 이들은 노숙자와 퇴거 위기에 처한 세입자들이 매일 겪는 의식주 문제는 고가 주택 매매를 중개하는 에이전트가 하는 불평과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날 청문회에서 고령의 세입자 리사 스피어맨은 벽에 곰팡이가 덮여 있는 그녀의 열악한 아파트 상태와 그녀의 불평을 무시하는 건물주에 대해 언급했다. 그녀와 비슷한 처지에 있거나 주거지가 없는 사람들은 맨션세가 그들이 건물주의 횡포에 맞서 싸우고 안전한 주거지를 확보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수단이 될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다. 스피어맨은 “곰팡이와 함께 살아왔다. 집에 오면 곰팡이 냄새가 나고 목이 메 기침을 한다”라며 “집에 가는 것이 두렵고 인생이 위협받고 있다”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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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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