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울타리에 갇히면 안돼”…패러다임 전환 해법 될까
대한상의 제주포럼 ‘경영 토크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14일(한국시간) 제주 해비치호텔&리조트에서 열린 대한상의 주최 제주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15일(이하 한국시간) 막을 내린 경제계 최대 규모의 하계 포럼인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제시한 '제4의 경제 블록'이 화두가 됐다.
그동안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전도사'로 불리며 '넷제로'(탄소 순배출량 0)와 같은 화두를 선제적으로 제시해 온 최 회장은 이번에는 지정학적 위기를 타개할 해법으로 일본과의 경제 블록 조성을 제안했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제주포럼 3일째인 지난 14일 열린 '경영 토크쇼'에 패널로 참여, "미래 세대까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속한 시장을 다른 시장과 합쳐서 경제 블록을 크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이라는 거대 시장이 글로벌 경제와 산업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가운데 이대로 계속 가면 생존이 어렵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제안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한국 수출의 주력인 반도체 산업은 글로벌 경기 침체로 금융위기 수준의 부진을 겪고 있는 와중에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에 끼여 양측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애매한 상황이다.
최 회장은 "나는 저 밑에서 지고 시작한다. 왜 내가 불리한 곳에서 싸워야 하냐"며 "나를 유리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코노미(경제) 블록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사를 잘하려면 국가는 무시해야 한다"며 "내 고객이 이익되는 걸 해야 내가 펼쳐나가는 얘기가 되고 내가 성장하고 시장을 많이 만들 수 있고 국가도 좋아지는 것이지, 국가를 먼저 이익되게 하면 울타리 안에 갇힌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글로벌 시장이 쪼개지고 있다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역설해 온 최 회장이 한발 나아가 기존의 개별 국가 단위를 벗어난 경제 공동체를 통해 생존 전략을 모색할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미중 등 다른 거대 시장에 방어할 수 있는 힘을 키우자는 취지다.
아직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2조달러에 못 미치지만, 최 회장의 말대로 5조달러 수준인 일본과 경제 블록을 형성하면 사실상 7조달러의 시장을 확보하는 셈이다.
비록 일본과 과거사 문제 등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힌 유럽 국가들이 한데 모인 EU의 사례를 봤을 때 일본과의 경제 블록 조성도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 최 회장의 설명이다.
최 회장은 "우리도 EU의 형태로 가야 한다"며 일본과의 화폐 통합 가능성도 언급했다.
현재 다양한 지역 통합 모델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단일화폐를 사용하는 것은 EU가 유일하다. 법정통화로 유로를 사용하는 나라(유로존)는 EU 27개 회원국 중 총 20개국으로, 이들은 유럽중앙은행(ECB)을 통해 공동의 통화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 북한과의 교통망 연결이다.
최 회장은 "북한과 경제 통일은 부담"이라며 기존과 다른 틀에서의 해법으로 '트랜스 패싱'의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말 그대로 단순히 북한의 영토를 가로질러 통과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북한을 통과해 대륙과의 연결성을 높이며 일종의 영토 확장 효과를 얻고, 북한은 통행료를 받듯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식이다.
북한의 체제를 건드리지 않고 자금 유입 효과를 낼 수 있는 만큼 북핵 문제 등의 해법이 될 수도 있다고 본 셈이다.
최 회장은 "솔직히 로지스틱스(물류)만 하더라도 성장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본다"며 "중국과 접하는 육상으로 철도를 움직이고 유럽까지 간다면 우리 땅값도 오르고 북한도 땅값이 오르고 발전하고 새로운 경제 성장 동력이 생기게 된다"고 예측했다.
이렇게 되면 일본과 구성한 경제 블록은 더 큰 힘을 얻고 대만이나 베트남 등 다른 주변 국가로부터 경제 블록 참여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특히 경제 블록의 중심에 우리나라가 자리하는 것 자체가 국가 전략이자 솔루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이 같은 구상이 실현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당장 사회 전반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최근 한일 양국이 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다고는 하지만, 일본과의 경제 블록 구성이나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단일 화폐 사용은 양국의 과거사 문제 이상의 복잡한 방정식이 될 수 있다. 나아가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최 회장은 "단기간에 이뤄낼 수는 없지만 국가 전략의 목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라며 "제4의 경제 블록을 만든다는 것은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정도가 아니라 솔루션을 한꺼번에 만드는 문제가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이전부터 생각해 오던 문제를 '제4의 경제 블록' 개념으로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 당장 실현 가능한 해법이라기보다는 앞으로 미래 세대에서 고민하고 풀어야 할 일종의 숙제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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