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네 갈래 장수가 거론된다. 용장(勇將)·지장(智將)·덕장(德將) 그리고 복장(福將)이다. ‘용감한 장수는 지혜로운 장수만 못 하고, 지혜로운 장수는 인격을 갖춘 장수만 못 한다’는 말이 있다. 이런 덕장도 복을 받고 운이 따르는 복장을 이길 수 없다고 한다. 진보·좌파 정권들은 보수 세력의 실책으로 집권하고 ‘야당 복(福)’으로 정권을 유지했다. 문재인 정권이 온갖 실정에도 2020년 총선에서 최대 압승을 거둔 것은 ‘야당 복’ 덕분이었다. 이제는 국민의힘이 ‘야당 복’을 만났다. 더불어민주당에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전당대회 돈 봉투, 김남국 의원의 코인 게이트 등 악재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데도 집권당은 ‘최악의 방탄 정당’으로 불리는 야당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26~27일 전국 유권자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에서 국민의힘은 38%, 민주당은 32.8%였다. 그러나 내년 4월 총선 관련 조사에서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답변이 51.3%로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40.5%)’보다 더 많았다. 여야 모두 신뢰를 받지 못하다보니 현역 의원에 대한 지지는 28.6%에 그쳤다.
거대 야당 불신의 이유로는 ‘내로남불’과 비리, 입법 폭주, 포퓰리즘 등이 지적됐다. 여권 지지율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은 정부와 여당 역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탓이다. 윤석열 정부는 공정과 상식 복원을 내세웠으나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웰빙 정당’의 안일한 행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늪에서 빠져나가려면 주역에 나오는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궁하면 변하라, 변하면 통하리라, 통하면 영원하리라’는 뜻이다. 제4차 산업혁명 주창자인 클라우스 슈바프도 ‘위대한 리셋(Great Reset)’을 외치며 혁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부터 환골탈태해야 힘 있게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 윤석열 정권은 문재인 정권이 밀어붙여온 포퓰리즘 또는 좌파 정책을 저지하고 파괴하는 데 주력해왔다. 문재인 정부의 독주 정치, 소득 주도 성장, 친노조 정책, 탈원전, 북한·중국 눈치 보기 등이 모두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창조와 리빌딩(rebuilding)으로 전진하지는 못했다. 혁명보다 더 어렵다는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불굴의 의지로 국민을 설득하면서 원칙에 따라 정교하게 구조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그런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의회 권력을 장악한 민주당은 영리하게도 그 틈을 파고들고 있다.
나라 정상화를 위해 파괴를 넘어 재건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먼저 국가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위선 좌파’ ‘포퓰리스트’와는 선을 그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주의를 세 기둥으로 삼는 헌법 가치다. 이를 토대로 국정 운영 성과를 보여주면서 지지층의 외연을 확장해가야 한다.
내년 총선은 나라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갈림길이다. 집권 세력이 우위를 점하려면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첫째, 경제 분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 특히 현재까지 ‘결과’보다는 앞으로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더 중요하다. 정치경제학자인 앤서니 다운스는 ‘경제 이론으로 본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유권자는 선거 이후 즉 가까운 미래에 더 많은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는 정당과 후보를 선호한다고 결론 내렸다. 정치 분야에서는 상식과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3월 전당대회처럼 ‘윤심(尹心)’을 내세워 특정인을 배제하는 풍경을 재연하면 민심을 되돌리기 어렵다.
또 최상의 후보들을 공천하고 헌법 가치 수호에 뜻을 같이하는 모든 세력을 총동원하는 스크럼 전략을 짜야 한다. 선거에서는 구도와 바람도 중요하지만 구체적 인물에 따라 10~20석 규모의 의석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이에 따라 제1·2당이 뒤바뀔 수도 있다. 더 바르게, 더 빠르게 변화하는 당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리빌딩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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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덕 서울경제 논설실장·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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