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콕 찍은 글로벌 빅테크 자국 플랫폼 성공 사례 사실상 유일
초거대 AI 생태계의 주도권 뺏기면 국민 정보 유출·활용도 떨어질 우려
▶ 문화·가치관 특화 전략으로 막아야…국내 맞춤 서비스 가능·보안성 강점,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경쟁은 부담
기업들, 반도체 업체와 제휴해 활로 “초거대 AI, 전기·철도 같은 기반 산업… 정부가 생태계 구축 투자·지원해야”
“초거대 인공지능(AI)은 전기, 철도, 인터넷 같은 인프라 기술입니다. 국가의 기술 패권과 직결되기 때문에 자국 내 생태계가 필요합니다.” (백운혁 카카오브레인 리서치 총괄 디렉터)
지난해 말 출시한 챗GPT를 시작으로 구글의 바드 등 글로벌 공룡 기업들의 초거대 AI 플랫폼 경쟁의 열기가 뜨겁다. 지난달 구글의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는 바드를 공개하며 “한국어는 기존 언어와 다르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영어를 뺀 첫 번째 서비스 대상 외국어로 한국어를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챗GPT를 개발한 오픈AI도 최근 한국을 애플 iOS용 챗GPT 앱 1차 출시국에 포함했다. 빅테크 기업들이 시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한국 시장을 콕 찍어 공략하는 배경을 두고 국내 AI 업계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네이버, 카카오 등 자국 플랫폼이 살아남은 국가가 한국을 빼고는 찾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하반기 초거대 AI와 이를 활용한 생성 AI 서비스를 내놓을 예정인 네이버, 카카오, KT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들과 정면 대결을 해야 할 상황이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굳이 서비스의 국적을 따져가며 사용할 필요가 있나’라고 되물을 수 있지만 이들은 “해외 기업에 국내 초거대 AI 생태계의 주도권을 내주면 국가 경제뿐 아니라 이용자에게도 피해가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가 지난달 11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 구글 클라우드 사옥에서 열린 글로벌 기자간담회에서 AI 챗봇 바드의 한국어 지원 이유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 이노베이션 센터장은 9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초거대 AI가 누구나 쓸 수 있는 기술이라고 하지만 특정 언어 중심이라는 점을 잘 봐야 한다”며 “결국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비즈니스 생산성 향상 효과는 모든 국가에 똑같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영어 중심의 데이터를 활용하다 보면 비영어권 국가에서는 상대적으로 성능이 떨어진 AI를 더 비싸게 써야 한다”며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광고성 정보 등을 지나치게 많이 보여줘도 막을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데이터가 해외로 흘러나가는 문제도 걱정거리다. 장두성 KT 융합기술원 상무는 “모바일에서 사용되는 모든 서비스 데이터들이 구글이나 오픈AI의 최대 주주인 마이크로소프트(MS)로 가서 쌓이는 것”이라며 “빅데이터가 해외 기업에 종속되면 우리 기업들은 빅테크 국가의 기술에 기생하는 모델에만 의존해야 하는 만큼 국가적으로도 큰 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기업들이 세계적 빅테크 기업과 맞서기 위해서는 한국 이용자·기업을 위한 맞춤형 전략을 꼼꼼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운혁 카카오브레인 리서치 총괄 디렉터는 “그 나라 말을 할 수 있는 것과 그 나라의 문화와 사회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며 “챗GPT나 바드처럼 한국어를 잘하는 것을 넘어 한국의 문화나 가치관 등을 잘 반영한 지역 특화 모델을 갖춰 더 큰 가치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장 상무도 “기업 내부의 정보를 공부해 특정 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기능을 제공하는 AI를 구축할 예정”이라며 “글로벌 기업들은 이 같은 맞춤형 서비스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부 정보가 밖으로 흘러나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사내에서 챗GPT 사용을 금지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보안성 역시 국내 기업들이 강점으로 내세운다. 하 센터장은 “네이버 클라우드 플랫폼은 안전하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안 기술을 갖췄다”며 “필요하다면 데이터를 각 기업 서버에 따로 저장하면서 초거대 AI 모델을 활용하는 솔루션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빅테크 기업과 경쟁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우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IDC), AI 반도체 등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초기 인프라 투자 경쟁부터 버거워하고 있다. 심지어 오픈AI도 챗GPT의 운영 비용 때문에 지난해 5억4,000만 달러(약 7,050억 원)의 손실을 봤고 1,000억 달러(약 130조 원)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하 센터장은 “정부에서도 초거대 AI를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기초 기술로 여기고 이에 맞는 투자와 지원 전략을 짜야 한다”며 “큰 자금이 필요한 만큼 정부가 초거대 AI기술의 공공 분야 활용을 전제로 기업과 공동 투자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내 스타트업들이 개발 중인 AI 반도체를 초거대 AI 개발 기업의 데이터센터에 적용하고 클라우드 기반의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실증 사업을 돕고 있다. 기업들도 자체적으로 AI 반도체 기업들과 제휴를 확대 중이다. ①KT는 지난해 AI 반도체 기업 리벨리온에 300억 원을 투자했고 ②SKT는 자체적으로 AI 반도체 스타트업 사피온을 세웠다. ③네이버는 삼성전자와 AI 반도체 개발 협력을 발표했고 ④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퓨리오사AI로부터 AI 반도체를 공급받고 있다. ⑤LG AI연구원도 퓨리오사AI와 차세대 AI 반도체, 생성형 AI 관련 공동 연구 및 사업화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좋은 품질의 한국어 빅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 상무는 “미국에선 AI가 공부할 때 필요한 기사, 소설, 문학 작품 등이 많이 공개됐지만 우리는 거의 없다”며 “정부가 대신 구매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주거나 업체들끼리 공동으로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한국을 방문한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MS, 구글 등 주요 기업 경영진은 AI를 핵전쟁 등에 빗대면서 관련 규제가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AI가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발전하면서 가짜뉴스 확산, 일자리 대체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미 시장을 선점한 기업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란 지적도 나온다.
하 센터장은 “AI의 위험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이미 보유한 기업, 국가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로 보일 수 있다”며 “안전한 AI를 위한 국제연대에는 동참하되 자체적으로 AI역량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처음부터 글로벌 무대서 경쟁해야 생존”전문가들 글로벌 시장 공략 강조
챗GPT를 기점으로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인 공 지능(AI) 플랫폼 선점에 뛰어든 상 황에서 국내 전문가들은 우리 기업들도 국내가 아닌 해외 시장을 겨냥 해 이들과 경쟁을 벌여야 한 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I는 더 많은 학습 데이터를 가질수록 성능이 좋아지기 때문에 한국어 데이터만으로는 글로벌 플랫폼과의 성능 대결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또 글로벌 공룡들과 우리 플랫폼 기업이 제대로 싸우기 위해선 정부가 반드시 지원해야 한다 는 지적이다.
김진우 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교수는 9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AI의 확산 속도가 예전 구글,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때보다 빠르다”며 “국내를 먼저 점유하고 밖으로 나가면 늦으니까 처음부터 눈을 밖으로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미국 빅테크 인터넷 서비스에 시장 을 뺏기지 않은 국가는 중국과 러시아 등 특수한 시장을 빼고 한국이 유일하다. 검색(네이버), 메신저(카카오톡)는 이미 우리 기업이 시장을 장악한 이후 해외 서비스가 들어와서 시장을 지킬 수 있었다.
반면 AI 플랫폼은 챗GPT가 먼저 경쟁의 불을 댕겼 으며 우리 기업들이 후발주자다. 특히 지난해말 공개한 GPT3.5 기반 챗GPT 대비 GPT4 버전의 챗GPT는 체감 가능할 정도로 한국어 구현 수준이 좋아졌다. 이에 국내 서비스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한국이라는 시장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AI 플랫폼이 단순히 정보통신(IT) 분야가 아닌 사회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칠 핵심 인프라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해외 플랫폼에 종속될 경우 부작용이 상당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독립적으로 AI 생태계를 키우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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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늘·송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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