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고진은 벨라루스행…푸틴은 내부동요 차단 및 숙청작업 착수
푸틴 “협박, 실패할 운명이었다” 강조했지만 권위에 치명상
▶ 단기적 추가 급변 가능성 낮지만 장기적 체제 위기는 불가피
러, 우크라 장기전 전략에 차질…프리고진 행보에 주변국 ‘긴장’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군 사령부 인근 거리에 바그너 그룹 용병들이 배치된 모습. 2023.06.24.[로이터=사진제공]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반기를 든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반란이 30일(현지시간)로 발생 1주일째를 맞아 수습 국면에 들어섰으나 여진도 계속되고 있다.
하루 만에 반란을 멈춘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이웃 벨라루스로 망명하고 푸틴 대통령이 국민의 단결을 강조하며 사태 진화를 서두르는 등 표면적으로 러시아는 이전의 모습을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권위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으면서 이번 반란이 '종말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 안팎에선 이번 사태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칠 영향, 프리고진의 미래와 향후 행보를 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모스크바 턱밑 200㎞에서 철군…일일천하로 끝난 무장반란
지난 23일 밤 프리고진은 러시아 국방부가 바그너 그룹의 후방 캠프를 미사일로 공격해 자신의 병사들이 사상했다면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에 대한 응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후 우크라이나를 벗어난 바그너 그룹은 24일 오전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주의 군 시설을 접수한 데 이어 몇 시간 뒤 500㎞ 북쪽의 보로네시주까지 진입했다.
이 과정에 정규군이 소극적이고 뒤늦게 대응하면서 바그너 그룹은 하루도 안 돼 800㎞가 넘는 거리를 주파하며 모스크바를 위협했다.
그러나 바그너 그룹이 모스크바에서 200㎞ 내까지 접근해 수도 함락의 위기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회담한 프리고진은 "유혈사태를 피해야 한다"며 철수를 결정했다.
러시아는 반란 중단 조건으로 프리고진에 대한 처벌 취소와 그의 벨라루스행을 약속하는 등 양측은 협상을 통해 극적으로 무력 충돌을 모면했다.
프리고진은 반란 중단 사흘 후인 지난 27일 벨라루스에 도착한 사실이 확인됐다.
푸틴 대통령은 사태 이틀 후인 지난 26일 밤 대국민 연설에 나서 전 국민의 단결을 강조한 것을 시작으로 내부 동요 차단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주요 국방안보 기관장 회의를 소집하고 대책을 논의하면서 쇼이구 장관 등 군 수뇌부에 대한 신임을 재확인했다.
한편으로 프리고진에 지급한 자금의 용처와 관련한 조사에 착수하는 등 이번 사태와 관련한 숙청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현지 매체에서는 세르게이 수로비킨 우크라이나전 부사령관이 프리고진의 반란을 도운 혐의로 체포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 믿었던 '충견'의 배신…푸틴, 등에 칼 꽂혀 치명상
푸틴 대통령이 사태 후 "협박은 실패할 운명이었다"면서 사태 대처에 있어 유혈사태 방지가 초점이었다고 했지만 그가 입은 치명상은 감출 수 없어 보인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푸틴 대통령이 최근 행보를 통해 자신의 힘을 재확인하려고 하고 있으나, 그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이 "등에 칼이 꽂혔다"고 표현할 정도로 자신이 직접 '충견'으로 키워온 프리고진에 의해 배신당한 점은 뼈아픈 상처다.
사태 전 프리고진이 국방부와 공개적으로 알력을 빚을 당시 이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했고, 그가 행동에 나설 때까지도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화근의 빌미를 만든 것도, 불씨를 키운 것도 푸틴 자신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또한 사태가 벌어지자 '가혹한 대응'을 천명했으나 하루도 지나지 않아 프리고진과 타협하고 그의 처벌을 포기하면서 굴욕을 당했다.
사태 해결조차 자신이 부하처럼 여기던 루카셴코 대통령이 맡는 등 사태의 전 과정에서 푸틴 대통령은 무력함을 그대로 노출했다.
시민들이 벨라루스로 떠나는 프리고진에 환호한 모습은 이번 사태가 반역이라는 푸틴 대통령의 발언을 무색하게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세계는 러시아의 보스가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목격했다. 완전한 혼돈이었고 예측 가능성의 완전한 부재였다"고 말했다.
미 CNN 방송은 "푸틴이 유지해 온 독재 체제의 궁극적 장점인 완전한 통제력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다.
◇ 내부 통제 '고삐'에도…"푸틴 종말의 시작"
이에 따라 이미 시작된 숙청 작업을 더욱 강력한 내부 통제의 동력으로 삼아 푸틴이 구겨진 체면을 회복하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선임 연구원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는 WP에 "그간 푸틴의 내부 적에 대한 의심과 반대파에 대한 탄압이 이유 없이 거세졌는데, 앞으로도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설령 내부 불만과 갈등이 있더라도 당장 내전이나 쿠데타 등 추가 급변 사태로 번지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의 소식통은 WP에 "내전은 항상 사회 내 다른 부문 간 갈등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번 사태는 보스 대 보스의 싸움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현체제 하에서 내부 갈등이 여론의 지지나 정치적 지원을 받기는 힘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거시적 관점에서 푸틴 체제의 균열이자, 푸틴 몰락의 서막이 될 것이라는 평가에 힘이 실린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푸틴 대통령이 앞으로도 많은 도전을 막아낼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라면서 "역사가 그의 몰락을 기록할 때 최후의 게임이 이번 일에서 시작했다고 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반란을 주도한 세력이 용병 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내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여전하다.
러시아 독립신문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의 편집자 콘스탄틴 렘추코프는 잘 무장된 러시아 내 여러 파벌이 권력 투쟁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날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러시아 내부 불안정 탓에 러시아를 위험으로 봐야 한다"며 "약해진 푸틴은 더 큰 위험"이라고 말했다.
◇ "서방보다 러가 먼저 전쟁 포기할 것"…프리고진 행보는 '안갯속'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영향을 두고는 사태가 하루 만에 끝난 만큼 큰 영향은 없다는 분석이 많지만, 러시아에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러시아군 사기는 더 저하될 것이고, 굴욕을 당한 러시아 장군들은 푸틴의 리더십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푸틴 대통령의 취약성이 노출된 만큼 다른 불만 세력의 등장을 우려한 러시아가 장기전 전략을 고수하기 힘들어졌다는 관측이 많다.
프랑스 싱크탱크 전략연구재단의 프랑수아 에이스부르 고문은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이제는 러시아가 서방보다 먼저 전쟁을 접을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도 "푸틴은 이제 전장뿐 아니라 러시아 내부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면서 "우크라이나가 활용할 새로운 이점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러시아를 등진 프리고진과 관련해선 푸틴의 보복 가능성에 따른 신변 위협과, 프리고진이 주변국에 야기할 안보 위협이 동시에 거론된다.
우선은 푸틴 대통령에 반기를 든 프리고진이 보복을 피하기 위해 결국은 바그너 그룹이 활동 중인 아프리카로 가서 잠적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한편으론 스스로를 애국자라고 주장하는 그가 벨라루스에서 세력을 재규합한 뒤 명예 회복을 꾀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로이터는 유럽우주국(ESA) 위성 사진을 근거로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 주변에 바그너 그룹의 새 거점이 마련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이 바그너 그룹의 위협 가능성을 경고하는 등 인접국의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벨라루스는 국경에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까지 거리가 90㎞에 불과하고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과도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어 바그너 그룹의 새 근거지가 된다면 이들 주변국은 심각한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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