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관 한국수입협회장
▶ 다양한 국가서 농산물 들여오면 ‘식탁 물가’도 낮출 수 있어…한 세계9위 수입국…수입협 법정단체 승격, 국가 전략 짜야
올 50여개국 대사 만나 공급망 논의… 한 시장 매력 높아질것
“자원이나 소재에 대한 수입 요구가 많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해외에서 한국에 농산물 수입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농산물 소비량도 많은 만큼 검역을 강화하고 수입선을 다변화한다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내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식탁 물가 상승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김병관 한국수입협회장은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다양한 국가에서 좋은 농수산물을 저렴하게 수입한다면 치솟는 물가를 안정시켜 국민 편익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한 국가에 농산물 수입을 전적으로 의존하면 식량 안보 차원에서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면서“품목별로 수입선을 다변화해 위험을 분산하고 적극적으로 문을 열어 물가 안정을 꾀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최근 여름철 식품 물가 안정을 위해 농산물에 적용되는 관세 감면을 확대하거나 수입량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달 20일 발표한‘농식품 물가 관리 방안’에 따르면 하반기 공급 부족이 우려되는 양파 수입을 검토하고 설탕, 과자용 감자 등 주요 식품 원재료 36개 품목은 할당 관세를 적용할 계획이다. 식탁 물가 조절을 위해 정부가 일부 농산물 수입 확대에 나선 것처럼 김 회장은 코로나19 이후 치솟은 물가 안정을 위해 수입 농산물의 종류와 공급망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수입을 늘리자는 것이 자국 농업을 포기하자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라며 “농산물 자급자족이 가능한 나라가 있는 것처럼 부족해서 수입하는 나라도 있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에서 생산량이 남는 것은 쌀뿐이고 밀·옥수수·콩은 수입하고 있다”며 “과거 바나나가 매우 귀하고 비쌌지만 지금은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한 국가에서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들여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미중 패권 경쟁으로 각 국가들의 자원 민족주의가 심화하면서 공급망이 재조정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중국에서 수입한 원재료를 가공한 뒤 다시 중국으로 수출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았다. 하지만 최근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불편해지면서 대중 무역 규모가 급감하는 등 큰 변화의 시점에 놓여 있다. 김 회장은 “과거 일본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았지만 지금은 낮아진 것처럼 중국이 아닌 다양한 국가들과의 무역을 늘려가야 한다”며 “특히 수입의 경우 특정 국가에 의존도가 집중되는 것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원재료뿐만 아니라 농산물 등으로 수입 품목을 다각화하고 이를 사올 수 있는 국가도 다변화하는 게 국가 경제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아울러 국가적인 수입 전략 구축을 위해 협회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협회를 법정 단체로 승격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 그는 “현재 한국으로 수출을 하고 싶어 하는 외국 기업들은 한국수입협회를 시장 진입 창구로 여기고 있다”며 “법정 단체가 되면 수입에 대한 전체적인 부분을 파악해 전략을 세우고 공격적으로 투자해 공급망을 확대하는 등 국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협회는 8500여 개의 회원사와 함께 글로벌 공급망 확대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김 회장이 직접 사절단을 꾸려 해외에 수입 사절단을 적극적으로 파견하고 중소 수입 기업을 위해 소재·부품·장비·식음료 등 총 8개의 부문별 분과 위원회와 국가별 위원회를 설치해 적극 지원하고 있다. 특히 올 들어서는 50여 개국의 주한 외국 대사와 만나 대(對)한국 수출 확대를 위한 개선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일부 국가 대사들은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협회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해외를 방문하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부터 장·차관, 수출진흥청장까지 현지 수출 관계자들이 나서 큰 관심을 보인다”며 “특히 협회가 우리나라의 수입을 대표하는 기관이다 보니 한국 시장 진출을 희망하는 국가들의 미팅 요청도 쇄도한다”고 전했다.
한국이 이렇게 주목받는 것은 우리나라가 세계 9위 수준의 ‘바잉파워’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이러한 사실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점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은 굉장히 크고 매력적인 시장”이라며 “우리나라가 7000억 달러라는 구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수입협회장이 현지를 방문했을 때 고위 관계자들이 나오는 것 자체가 한국 시장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라며 수출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엄청난 구매력을 가진 국가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상대국에도 좋지 않겠나”라고 조언했다.
김 회장은 지난해 3월 회원사들의 투표를 통해 22대 수입협회장에 선출돼 1년 4개월째 협회를 이끌고 있다. 의류 사업가로 20년 이상 활동해 온 그는 한국수입협회장을 맡은 후 수출 지향적인 우리나라 경제 구조에서 수입이 얼마나 중요한지 오히려 더 절감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무역 규모는 1조 4000억 달러로 세계 6위 수준으로 전체 무역 중 수입이 차지하는 규모는 절반인 7000억 달러”라면서 “하지만 워낙 ‘수출=애국’이 강조되다 보니 수입은 상대적으로 덜 조명받아 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수입의 88%는 원자재,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등으로 우리 산업의 발전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라며 “일반 사람들이 수입은 명품 같은 사치품이나 소비재 비중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과 현실은 크게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를 들어 최근 수출 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철강·가죽·비닐 등 다양한 소재의 원재료를 해외에서 수입해서 가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수출과 수입은 반대 개념이 아닌 서로 보완관계라는 게 김 회장의 지론이다. 수출이 수입에 도움이 되고 수입이 수출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김 회장이 들려준 일화다. 콤팩트 레이더를 수입해 헬스케어 장비를 만드는 한 회원사가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기업으로부터 독점 공급 요청을 받았다. 사우디 업체는 계약 체결에 앞서 회원사에 대사관 검증을 받을 것을 요구했지만 공식적인 확인 절차가 없어 계약이 결렬될 위기에 처했다. 이런 사정을 들은 김 회장은 주한사우디 대사와 회원사를 협회로 초청해 사정을 설명했다. 주한사우디 대사는 이를 듣고 이틀 만에 문제를 해결했고 회원사는 무사히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김 회장은 “수출과 수입은 여러 면에서 동전의 양면 같다”며 “수출하다가 수입을 할 수도 있고 수입하다가 수출을 할 수도 있는 만큼 수출과 수입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해외에서 선박을 수주했던 일화처럼 해외 비즈니스와 관련해 맨주먹으로 해외 수출을 일궈낸 사례들은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수입과 관련해서는 좀처럼 그런 ‘신화’를 찾기 힘들다. 수입업의 매력은 뭘까. 김 회장은 “경쟁력 있는 해외 제품을 발굴하고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게 수입의 매력”이라고 했다. 그는 “좋은 소재를 수입해 국내 제조 업체에 납품하는 것만으로도 평생의 비즈니스가 된다”며 “그러다가 제조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직접 제품을 만들거나 자체 브랜드를 론칭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He is…△1962년 익산 망성 △강경상고 △서울디지털대 영어학과 △서울대 AFB 수료 △1993년 헤리티지캐시미어코리아 대표 △2002년 브론떼훼밀리 대표 △2018년 한국강소기업협회 부회장 △2018년 서울대 AFB 총교우회 회장 △2019년 한국패션산업협회 부회장 △2022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2022년 3월~ 한국수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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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박정현 기자 사진=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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