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든 “서방과 관련없는 문제”…EU 외교수장 “상황 예측 못해”
▶ 우크라전 비난은 지속…푸틴 물러나도 또다른 독재자 등장 위험 “서방, 반란 당시 우크라에 ‘러 본토 공격 안돼’ 주의 줘”
조 바이든 대통령[로이터=사진제공]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반란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통치력에 커다란 흠집이 났다는 관전평이 나오지만 미국 등 서방 정부는 '신중 모드'를 이어가고 있다.
반란이 하루 만에 멈춘 뒤에도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은 데다, 핵 보유국인 러시아의 정치 불안이 국제 정세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가늠하기 어려운 만큼 일단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일단 미국은 이번 사태를 러시아 내부 문제로 규정하며 거리를 두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6일 "푸틴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비난하는 등 이번 사태를 서방 탓으로 돌릴만한 핑계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데 유럽 정상들과 동의했다"며 "우린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것은 러시아 체재 내에서 일어난 분쟁의 일부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 내 반란 사태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으로, 러시아 정보기관이 '서방이 반란에 연루됐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한 공식 반응이기도 하다.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은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혀 러시아 내 권력 구도가 급변하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영국도 러시아 상황을 주시하면서 자국민의 긴급 대피 등을 포함해 여러 시나리오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임스 클리버리 영국 외무장관은 이날 의회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상시 항공기를 동원해 러시아 내 영국인들을 대규모로 이송하는 문제도 거론됐으나 그는 "그런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러시아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두고 대체로 "불확실하다"는 목소리를 내면서 조심스러운 태도다.
EU 외교장관들은 이날 룩셈부르크에 모여 바그너그룹의 반란과 관련한 정보를 공유했다고 AP·dpa 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푸틴 대통령에 대해 "바그너그룹으로 괴물을 만들었고, 그 괴물이 지금 그를 물고 있다"고 쏘아붙이고는 "러시아의 정치체계가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고 군부 권력에 금이 가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요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와 같은 핵보유국이 정치적 불안정성에 접어드는 것은 좋지 않다"며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보렐 대표는 회의가 끝난 뒤에는 "(러시아) 상황이 여전히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나레나 배어복 독일 외무부 장관도 러시아 내 권력 투쟁이 끝나지 않았다며 "러시아 내 다양한 행위자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언급했다.
다만 그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잔인한 전쟁을 벌이면서 러시아도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 아셀보른 룩셈부르크 외무장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가진 국가가 무너진다면 유럽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러시아 내 권력 투쟁이 아프리카 국가들에 배치된 바그너그룹 병력의 불확실성을 가져오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훨씬 잔인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화상 연결을 통해 "EU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러시아를 물리치는 데 속도를 내달라"고 호소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푸틴 정권을 비난하는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핵전쟁 가능성 등을 고려해 최근 러시아 사태에 대한 반응을 자제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바그너그룹의 반란 사태가 터진 뒤 미국 등 서방은 푸틴 정권을 너무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미국 CNN은 우크라이나 관리들이 동맹국들로부터 '프리고진의 용병 철수 전까지 러시아 본토에 대한 타격을 참아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프리고진을 돕고 러시아의 주권을 위협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에 대해 한 미국 관리는 "배를 흔들지 말라는 메시지였다"고 CNN에 말했다.
또 미국 관리들은 개인적으로 러시아 정부에 미국이 바그너그룹 사태와 무관하고, 러시아 핵무기에 대한 안전과 보안을 유지할 것을 촉구했다고 CNN은 전했다.
서방 언론에서는 푸틴 정권의 붕괴가 국제사회에 도움이 될지 물음표를 던지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물러난다고 해도 그의 뒤를 이어 권력을 잡는 인물이 서방에 우호적일 것으로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CNN은 '서방은 지금 러시아의 정치적 붕괴 가능성을 숙고해야 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러시아의 불안정과 내분이 전 세계에 지정학적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CNN 인터뷰에서 "이것이 푸틴 종말의 시작인가? 우리는 모른다"며 푸틴 대통령 다음에 등장하는 통치자가 더 독재를 밀어붙일 위험성을 언급했다.
아울러 CNN은 반란으로 곤경에 빠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더욱 공세를 높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기에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 사태에 신중한 것은 푸틴 대통령뿐 아니라 바그너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에 대해서도 그의 손을 들어주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프리고진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측 선봉에 섰던 서방의 적인 데다, 바그너그룹은 세계 곳곳에서 내전에 개입해 고문과 학살 등을 일삼아 악명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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