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오징어가 뿔 달린 고래 모양의 잠수함을 추격한다. 수면으로 떠오른 철골 잠수함이 오징어 발에 휘감겨 옴짝 못하자 선장이 선체표면에 전류를 방전한다. 화가 난 오징어는 선장을 거대한 다리로 휘감아 낚아챈다. 용감한 젊은 선원이 칼을 휘둘러 오징어 다리를 절단하고 절체절명의 선장을 구출한다. 고교생 시절에 손에 땀을 쥐고 본 디즈니영화 ‘해저 2만리’(1956)의 명장면이다.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동명 공상과학소설을 리처드 플라이셔 감독이 할리웃의 첫 시네마스코프 영화로 만들어 홈런을 날렸다. 영화보다 80여년 전에 나온 베른의 원작에는 공룡오징어가 한 마리가 아니라 떼로 공격하고 선장이 아닌 선원 한명이 오징어에 잡아먹힌다. 영화는 주인공 니모 선장(제임스 메이슨)보다 선원 역의 커크 더글러스에 초점을 맞췄다. 당시 떠오르는 청춘스타였다.
해저 2만리를 누비는 잠수함 이름은 앵무조개를 뜻하는 ‘노틸러스’이다(미국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도 같은 이름이다). 노틸러스는 베른이 생존했던 19세기 당시로서는 공상으로만 가능했던 첨단기술의 산물이다. “정체불명의 바다괴물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는 소문에 따라 합동조사를 벌인 프랑스·영국·미국·독일·스페인 등의 전문가들도 이 괴물이 결코 잠수함일 리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괴물토벌에 나선 미 해군함정을 뿔로 들이받아 물리친 노틸러스는 함정에서 떨어진 해양학자와 그의 조수 및 포경선 작살잡이 출신 선원(더글러스)을 포로로 잡고 5대양 해저를 누비며 모험을 펼친다. 니모 선장은 그의 아지트 섬이 외부 군대에 점거되자 이를 원격장치로 폭파하고 자신도 총격당해 죽는다. 포로 3명은 침몰하는 노틸러스에서 극적으로 탈출한다. 이 역시 소설과 많이 다르다.
지난주 노틸러스의 비극을 떠올리게 하는 충격적인 사고가 터졌다. 111년전 북대서양에서 빙산을 들이받고 침몰한 초대형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잔해를 구경하려고 1만3,000피트 해저로 내려간 잠수정 ‘타이탄’호가 폭발을 일으켜 탑승자 5명이 모두 사망했다. 절대로 침몰하지 않는다며 경고를 무시하고 구명보트를 대충 챙겼다가 승객 1,500여명을 수장시킨 타이타닉의 저주가 붙은 모양이다.
타이탄호는 이름(거인)과 달리 22피트짜리 꼬마다. 수압을 줄이려고 몸통도 줄였다. 티타늄과 탄소섬유 합성소재로 선체를 두텁게(5인치) 감쌌다. 하지만 잠수정은 1만여피트 해저의 엄청난 수압에 찌그러져 내부폭발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타이탄호 관광업체인 시애틀의 오션게이트는 보잉과 NASA와 워싱턴대학(UW)이 타이탄 제작에 참여했다고 광고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사고에서 오션게이트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스탁턴 러시도 타이탄과 운명을 함께 했다. 그는 타이탄의 안전성을 자신한다고 누차 장담했다. 하지만 타이타닉 잔해를 33차례나 탐사한 영화 타이타닉(1997)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을 비롯한 해저탐사 전문가들은 정부당국의 안전성 승인을 받지 않은 티타늄-탄소섬유를 러시가 잠수정의 동체 소재로 사용한 것은 잘못이라고 경고했다.
‘아바타’ 시리즈와 ‘심연(Abyss)’도 감독한 카메론은 2012년 지구 최저지점인 마리아나 트렌치에 자신이 고안한 24피트 잠수정을 타고 내려간 사계의 권위자다. 카메론의 경고에 대해 오션게이트 측은 기술혁신을 정부규제가 따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타이탄의 위험성과 그 대처방안은 기술혁신을 이룬 자신들이 가장 잘 안다고 맞선다. 타이탄의 안전성이 공인기관의 감정을 받지 못한 것은 그 기술혁신이 기존 업계의 패러다임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라며 이미 46명이 2021~2022년 두 해에 걸쳐 타이타닉 탐사여행을 성공적으로 다녀왔다고 주장했다.
타이탄호 사고로 횡사한 갑부 파키스탄 부자(父子)와 영국인 사업가는 탑승료로 각각 25만달러를 냈다. 2021년 러시아의 소유즈 우주선에 탑승한 일본 의류판매업 재벌은 자신과 전담사진사 자리 값으로 물경 7,000만달러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억만장자들의 극한모험 여행이 모국방문이나 유럽여행도 버거운 우리네와 너무나 동 떨어진다. 서민들이 타이탄호 사고에서 느끼는 또 다른 비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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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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