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Z세대 샴페인에 퐁당 빠지다
▶ 시장 저변 넓어지며 3만원대 저가 샴페인도…취 않고 가볍게 즐기는 MZ세대 마음에 쏙, ‘샴페인바’ 생겨나고 ‘샴페인 수업’ 찾아 열공
스파클링 와인 수입 10년 사이 3배 이상 껑충
“샴페인이요? 비싸긴 하죠. 하지만 술을 잘 못 마시는 친구도 함께 즐길 수 있고, 여럿이 나눠 내면 그렇게 부담스럽진 않아요.” 대학생 윤소원(24)씨는 최근 들어 친구들과 모임을 가질 때 샴페인을 즐긴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학생에겐 다소 부담스러운 선택지가 아닐까? 윤씨는 고개를 내저었다. “요즘은 편의점에서도 샴페인을 파는 세상인 걸요! 소주나 맥주에 비해 양이 적고 비싸지만 친구들과 가볍게 즐기기엔 딱이죠.”
코르크 마개를 열 때의 ‘펑’ 하는 경쾌한 소리, 보글보글 탄산 기포가 만들어낸 거품 때문일까. 프랑스의 ‘샴페인(Champagne)’은 다소 사치스러운 이미지를 자아낸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유례없는 경제 호황을 맞은 미국의 시대상을 담아낸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의 파티에 빠지지 않았던 술이 샴페인이었던 건 이상하지 않다.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개츠비의 푸른 정원에서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속삭임을 주고받으며 샴페인을 사이에 두고 별빛 아래서 부나비처럼 오갔다.”
‘개츠비의 술’ 샴페인은 2023년 한국에서 대중화의 흐름에 올라탔다. 번화가 곳곳에 샴페인을 주력으로 하는 샴페인바가 생겨났고, 샴페인을 배우는 수업이 열리며, 잘 알려지지 않았던 프랑스 샴페인 생산자도 한국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유명 삼페인이 고가에 팔려 나갔지만 지난 10여 년간 대형 유통 체인이 저가 샴페인을 수입하기 시작하면서 3만 원대에도 샴페인을 즐길 수 있게 됐다. 한 잔을 마시더라도 의미와 분위기를 중요시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신의 또렷한 취향을 드러내는 것을 즐기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가 주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한국 샴페인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회식 때 처음 샴페인을 접했을 때 정말 맛있어서 이후에도 즐겨 마셔요. 소주랑 맥주를 들이붓는 회식은 옛날 말이죠.”
지난 10일, 직장인 박예진(31)씨는 친구와의 생일을 맞아 서울 강남구에 있는 샴페인 전문 주점 ‘금토일샴페인빠’를 찾아 이같이 말했다. 점원의 추천을 받아 주문한 샴페인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최근 물가 상승으로 인해 몇몇 식당에선 소주도 8,000원에 파는 형국에, 분위기 좋고 맛도 있는 샴페인을 마시는 게 더 낫다는 게 박씨의 생각. “매일 샴페인을 마시는 것도 아니니 ‘열심히 일해서 샴페인 한 병 더 마셔야지’라 생각하는 편이에요.”
직장인들이 마음 놓고 술을 마시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평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주점은 실내와 야외 할 것 없이 손님으로 꽉 차 있었다. 대부분 20·30대의 젊은 손님들. 사회생활 10주년 기념으로 친구들과 축하 모임을 가진 박혜인(32)씨는 “예전엔 샴페인이라 하면 셀럽(유명인사)들이 파티에서나 마실 것 같은 허세 주종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많이 대중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탄산이 있는 와인을 통칭하는 ‘스파클링 와인’. 그중에서도 샴페인은 프랑스의 샹파뉴 지방에서 엄격한 전통 방식으로 만든 것에만 그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같은 프랑스에서 만들어졌어도 샹파뉴 이외의 지방에서 만들어진 것은 ‘크레망’이라고 불린다. 이처럼 샴페인은 한정적으로 생산되는데 전 세계 수요는 늘다 보니 장기적으로는 샴페인 가격이 끝없이 올라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한충희 금토일샴페인빠 대표는 “샴페인을 처음 접한다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모엣샹동을 기준으로 삼아 자신의 취향을 알아가 보는 것도 재미”라면서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고 싶지만 샴페인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스페인의 스파클링 와인인 까바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모임 공간에서는 ‘샴페인클럽’의 수업이 한창이었다. 10명의 수강생이 자신 앞에 놓인 4개의 잔에 담긴 샴페인을 입에 머금고 예민하게 맛을 음미하고 있다. 전면 스크린에는 프랑스 지역의 포도밭 분포 같은 전문적인 정보가 띄워져 있다. 소믈리에 준비라도 하는 걸까. 아니다. 오로지 샴페인을 잘 알고 마시기 위해 취미로 수업을 수강하는 샴페인 애호가들이다.
샴페인 소비의 저변이 넓어지면서 ‘제대로 알고 마시자’는 애호가의 층도 두꺼워지고 있다. 2017년부터 소규모 샴페인 수업을 열고 있는 ‘샴페인클럽’은 샴페인에 푹 빠진 이들이 한번쯤은 거쳐가는 곳이다. 샴페인의 역사나 유래, 테루아(와인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지형적 특징), 품종 등 샴페인 지식을 전수할 뿐만 아니라, 총 12종류의 샴페인 테이스팅 수업도 진행한다. 6년 가까이 약 700명의 수강생을 배출했다.
수업을 이끄는 조수민 샴페인클럽 이사는 “처음 수업을 열었을 땐 수강생 분포가 30대 후반에서 50대였는데 요즘은 좀 더 어린 연령대의 수강생이 많아진 경향”이라며 “대학생들도 수업을 들으러 온다”고 했다. 특히 MZ세대의 샴페인 소비는 시장 지형까지 다채롭게 바꾸고 있다는 게 조 이사의 분석이다.
“MZ세대는 일반적이고 흔한 취향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SNS에 사진을 올릴 때에도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요. 남들이 흔히 마시는 샴페인보다 새롭고 재밌는 것을 찾다보니 와인 수입사들도 그 요구에 맞춰 작은 와인 생산자의 제품을 수입하기 시작했죠.”
이날 수업 현장에서도 30대 수강생의 분포가 도드라졌다. 초급 과정에 이어 중급 과정을 수강하는 장현진(34)씨는 “샴페인이 결코 싸지 않은데 아무것도 모른 채 마시는 것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며 “식사 자리에서 샴페인을 주제로 대화의 물꼬를 트기도 좋고 음식과 곁들여 가볍게 즐길 수 있다보니 주변에서도 샴페인을 찾는 빈도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샴페인 열풍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프랑스 샴페인 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샴페인 수입량은 235만 병에 달했다. 세계 13위 수준으로, 2020년 113명으로 17위였는데 2년 동안 4단계를 뛰었다. 샴페인을 포함한 스파클링 와인으로 범위를 넓히면 성장세는 더욱 선명하다. 한국주류수입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2리터 이하 스파클링 와인’의 경우 2012년 수입량은 총 255만 리터였는데 지난해에는 845만 리터로 10년 사이 3배 이상 늘었다.
이에 프랑스의 작은 생산자도 발 빠르게 한국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 샹파뉴 마르데이 마을의 와인 생산자들에 의해 1955년 설립된 ‘샴페인 보몽’은 지난해 한국 시장에 처음 발을 내디뎠다. 한국의 와인, 특히 샴페인 시장이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달 서울을 찾은 현지 업체 관계자는 ‘MZ세대’라는 단어를 콕 집어 언급하며 “한국 소비자들은 와인과 샴페인에 대한 지식수준이 매우 높고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열심인데,
이 같은 경향은 특히 MZ세대에서 도드라진다”며 “끊임없는 소통과 브랜드 인지도 향상을 위해 한국에서 열리는 행사에 꾸준히 참석할 정도로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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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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