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을 1년 반가량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손절(損切)이 이어지고 있다. 9일 사설을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미국에서 가장 나쁜 인간’으로 지목한 뉴욕포스트가 그중 하나다. 보수 성향으로 한때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매체로 꼽혔던 뉴욕포스트는 사설에서 “자신에게는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믿는 데 익숙하다”고 트럼프를 비난하며 대통령 부적격자로 판정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대표적인 후원자였던 사모펀드 블랙스톤 창업자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이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올해 3월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성관계를 폭로하지 말라며 입막음 돈을 회삿돈으로 주고 장부를 조작한 혐의로 뉴욕주 검찰에 기소됐다. 이달 9일에는 국방 관련 기밀 정보를 의도적으로 보유한 혐의 등 모두 37건의 법 위반 혐의로 미국 연방검찰에 기소됐다. 2020년 대선 때는 패배를 불복하며 대선 결과를 인증하는 상하원 합동회의에 자신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쳐들어가 난동을 부리도록 한 혐의로 탄핵 심판대에 올랐었다.
총선을 10개월 앞둔 한국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손절당할 이유가 쌓이고 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8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로 찾아가 만난 일이다. 이 대표는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싱 대사의 협박에 어떤 반박도 하지 않았다. 이날의 굴욕은 이 대표에게 두고두고 흑역사로 남게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 대표는 ‘천안함 자폭’ 발언을 한 이래경 씨를 민주당 혁신위원장에 앉혔다가 9시간 만에 낙마시키는 미숙함을 드러냈다. 김남국 의원의 ‘코인 스캔들’도 시간만 질질 끌다가 ‘조국 사태’ 못지않은 ‘남국 사태’로 문제를 키웠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 의혹에 연루된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것도 이 대표와 무관하지 않다. 2월 대장동 및 위례 신도시 개발 사업 특혜 의혹과 성남FC 후원금 의혹에 연루된 이 대표 체포동의안의 부결도 민주당의 ‘방탄’에 힘입은 것이었다.
한미 양국의 야당 유력 정치인 사법 리스크 동조화는 기이할 정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소에 대해 공화당 지지자 대부분(79%)이 ‘정치 수사’라는 입장을 밝혔다는 미국 ABC방송 등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기소 과정에서 봤던 기시감마저 느껴진다. 심지어 당내의 ‘사퇴 요구’까지 둘의 동조화가 나타나고 있다. 설훈 민주당 의원은 12일 이 대표 면전에서 “정치를 오래 하려면 지금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공화당의 대선 주자인 에이사 허친슨 전 아칸소 주지사는 10일 “공화당은 트럼프를 옹호하면서 영혼을 잃어서는 안 된다”며 트럼프의 대선 레이스 포기를 주장했다.
그래도 두 당사자는 꿋꿋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진행한 유세에서 “(검찰의 기소 이후) 여론조사는 급등했다”면서 차기 대선 승리를 장담했다. 미국 CBS방송이 11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 중 61%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대선 후보로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표는 12일 의원총회에서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있도록 잘하겠다”면서 사퇴론에 선을 그었다. 이 대표 역시 여러 가지 사법 리스크와 정치적 실책에도 불구하고 여야 통틀어 큰 격차로 차기 대권 주자 1위를 달리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내년 한국 총선과 미국 대선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선거 결과에 따라 정치 분열이 심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치 양극화의 결과는 한미가 판이할 것이다. 미국은 정치가 분열돼도 계속 세계 최강국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한국은 뭉치지 않으면 생존조차 쉽지 않다. 정치 양극화는 이미 나라를 망치기 시작했다. 극단적 여야 대결 탓에 북한의 도발, 중국의 행패, 일본의 오염수 방류 등에 속수무책이고 경제는 나락에 빠졌다. 나라를 더 망치지 않으려면 여야가 ‘공멸의 베팅’을 즉각 멈춰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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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진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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