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발언으로 외교적 논란을 빚은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를 초치해 강력히 항의했다.

외교부는 싱 대사의 이번 발언이 '도발적인 언행'이라고 규정하고 "내정간섭에 해당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강도 높게 대응했다.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9일(이하 한국시간) 오전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싱 대사를 불러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비상식적이고 도발적인 언행에 대해 엄중 경고하고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장 차관은 싱 대사가 다수의 언론 매체 앞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과 묵과할 수 없는 표현으로 우리 정책을 비판한 것은 외교사절의 우호 관계 증진 임무를 규정한 '비엔나 협약'과 외교 관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우리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내정간섭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장 차관은 특히 이번 발언은 상호 존중에 입각해 한중관계를 중시하고 발전시켜 나가려는 양국 정부와 국민의 바람에 심각하게 배치된다며 한중 우호의 정신에 역행하고 양국 간 오해와 불신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싱 대사가 외교사절의 본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처신해야 할 것이며, 모든 결과는 본인의 책임이 될 것임을 분명히 경고했다.

싱 대사는 전날 성북구 중국대사 관저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만찬 회동을 하면서 한국 정부의 대미 밀착 기조를 겨냥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 일각에선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을 하고 있다"며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자 역사의 흐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발언 현장은 취재진에 공개되고 유튜브로도 생중계됐다. 외교사절이 주재국 정부의 대외정책에 노골적으로 날을 세우는 발언을, 그것도 주재국 야당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싱 대사는 과거에도 한중관계에 대해 다소 격한 발언을 쏟아내며 몇 차례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한중관계가 큰 고비를 맞았다며 "가장 큰 외부요인은 미국이며 내부요인은 민심"이라고 지적했으며 지난달에는 MBC 라디오에 출연해 "한중 관계가 더 나빠질 위험도 있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돌출 발언이 처음이 아님에도 외교부가 싱 대사의 언행에 강하게 제동을 건 것은 주재국과 본국의 이견을 최대한 줄이고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대사의 본분을 지나치게 망각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양국 정상이 이미 '관계 관리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음에도 한중 외교 최전선에 있는 싱 대사가 이를 흠집내는 발언을 일삼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나 양국 간 긴밀한 소통 등에 합의했으며, 양국은 고위급 소통을 추진 중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외교부 경제안보외교센터 개소 1주년 기념 포럼에 참석한 뒤, 싱 대사 발언에 대한 평가를 요구하는 기자들에게 "대사의 역할은 우호를 증진하는 것이지 오해를 확산하면 안 된다"며 "도를 넘었다"고 비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