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개월 걸려 장장 9,500마일 요트 하나로 항해 쾌거, 이민 출발지 인천에 재외동포청 출범 축하 의미도
본보 후원 이민 120주년 태평양 횡단 경과와 의의120년 전 102명의 한인 선조들로 첫 발을 내디딘 미주 한인 이민사는 별빛조차 없는 막막한 어둠 속에도 뚜벅뚜벅 전진해 오늘의 눈부신 한인사회로 이어졌다. 올해 뜻깊은 한인 이민 120주년을 맞아 이민선 갤릭호의 길을 거슬러 항해에 나선 담대한 도전은 마침내 성공을 이뤘다. 남진우 대장이 이끄는 이민 120주년 기념 태평양 요트 횡단 원정대는 한국시간 6월4일 최종 목적지인 인천에 무사히 도착했다. 지난 3월4일 LA 인근 마리나 델레이를 출발, 이민 선조들이 첫발을 내디었던 하와이와 일제강점기 징용 피해자들의 한인 서린 사이판을 거쳐 이민사의 출발지였던 인천까지 이르는 담대한 도전을 무사히 마친 것이다. 미주 한국일보가 단독 미디어 스폰서로 함께한 이 항해는 총 항해거리 9,500여 마일에 93일 소요된 대장정이었다. 미주 한인 이민 120주년과 재외동포청 공식 출범을 축하하기 위해 선조들의 발자취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연어의 귀환’이 어떤 과정을 거쳐 준비됐고, 어떻게 항해가 이뤄졌는지 종합했다.
장장 9,500여 마일, 93일간의 태평양 횡단 대장정을 무사히 마치고 한국시간 6월4일 인천에 입항한 원정대가 태극기와 한국일보 사기를 펼쳐들고 항해 성공을 알리고 있다. 왼쪽부터 유도열, 박상희 대원, 남진우 대장, 조셉 장 대원.
■ ‘이그나텔라호’ 스토리
원정대를 싣고 태평양 횡단에 성공한 요트는 1988년도에 제작된 ‘이그나텔라’호다. 남진우 대장에겐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다. 요트 제작업체 타야냐에서 만든 이그나텔라는 길이 37피트, 중량 3만2,000파운드 대양 항해용(blue water) 선박이다. 요트 사이즈는 중간급이지만 중량이 무겁고 안전성이 높아 대양 횡단에 자주 사용된다.
항해를 앞두고 남 대장은 5만 달러의 사비를 들여 돛(sail)과 디젤 엔진, 배 밑바닥 등을 교체했다. 풍력 발전기와 솔라 발전기, 항해 도중 바닷물을 정수해 식수와 샤워물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워터메이커를 새로 달았다. ‘이그나텔라’(Ignatella)라는 선박명은 남 대장의 가톨릭 세례명인 이냐시오(Ignacio)와 부인 스텔라(Stella) 김씨의 이름을 합쳐 지었다.
■안전항해 준비에 최선
지난 10년간 남진우 대장은 태평양을 요트로 횡단하려는 계획을 차근차근 준비해 왔다. 횡단 과정에서 성공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원정대의 안전 항해였다.
항해 중 외부와 수시로 교신해야 하기 때문에 원정대는 성능이 우수한 통신장비를 추가 구입했다. 요트에 이미 켄우드 무전 시스템이 장착돼 있지만 선박과 선박, 선박과 육상간 자동 송수신 장치인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을 새로 설치했다. 외부와의 원할한 교신을 위해 위성전화를 기증받았다.
태평양 횡단 항로 중에서 제일 어려운 구간은 일본 오키나와 해협을 통과하는 구간일 것으로 예상했다. 오키나와 해협 인근은 화물선과 어선 등 수많은 선박들이 오고가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에 대비해 4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하와이까지 항해 내내 2명씩 조를 이뤄 운항했다. 한국에서 온 박상희 대원은 비자문제로, LA에 거주하는 조셉 장 대원은 직장복귀 문제로 하와이에서 하선했기 때문에 하와이부터 통영까지는 남진우 대장이 낮에, 유도열 대원은 밤에 키를 잡았다.
마틴 곽 후원회장과 인천시 요트협회 관계자 등 지상 요원들은 수시로 원정대 위치와 기상상황을 파악해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다.
■LA-하와이-사이판-인천 대장정 항로
지난 3월4일 마리나 델 레이를 떠난 이그나텔라호는 거친 파도와 세찬 바람, 무풍지대 등 여러 난관을 뚫고 시속 5노트(5.75마일), 하루 130~140마일의 속도로 하와이와 사이판을 거쳐 인천까지 항해했다. <항로 그래픽 참조>
1차 기항지이자 한인 이민사가 시작됐던 호놀룰루까지의 여정은 실로 험난했다. 마리나 델 레이를 출발하자 마자 요트 경험이 부족한 대원들이 컨디션 난조를 보였고, 미처 손보지 못한 배의 여러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서둘러 샌디에고에 내려 배를 손보느라 아까운 4일을 허비했다. 본격적인 항해가 시작되자 처음에는 맞바람이 이들의 항해를 방해했다.
이어 광범위하게 형성된 무풍지대 탓에 이그나텔라의 전진은 더디기만 했다. 무풍지대를 간신히 통과하자 이번엔 폭풍 수준의 세찬 바람과 거센 파도가 원정대의 안전 항해를 위협했다.
출항 31일만인 4월3일 호놀룰루에 무사히 도착한 대원들은 하와이 한인회(회장 서대영) 관계자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한인 이민자들의 땀과 눈물이 배여있는 사탕수수 농장을 방문하고, 선조들이 잠들어 있는 묘지를 찾아 1차 항해 결과를 보고했다.
정비와 휴식을 마친 남진우 대장과 유도열 대원은 4월10일 하와이를 떠나 3,700마일 거리에 있는 2차 기항지 북마리아나 제도 사이판으로 향했다. 사이판은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징용으로 끌려 와 고된 노동에 시달렸던 한국인들의 한이 서린 곳이다.
기상상태는 양호했다. 하지만 2차 항해 구간에는 또 다른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다. 외부와의 유일한 교신 수단인 위성전화를 연결하는 인공위성 시스템이 고장난 것이다. 1주일 이상 위성전화가 연결이 되지 않아 소식을 기다리던 가족과 지인들 속이 타들어 갔다.
다행히 10일만에 위성전화가 연결됐고, 5월7일 2차 기항지인 사이판에 입항했다. 사이판 한인회(회장 유지광)의 환영을 받고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 원정대는 11일 마지막 목적지인 인천을 항해 출발했다.
여기서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인천까지 항해에 동행하기 위해 한국에서 온 예비역 해군 대령 출신의 이승석 대원이 비자 문제로 승선하지 못한 것이다.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필리핀 인근 공해상을 항해 중이던 원정대에게 5월20일부터 수퍼 태풍이 불어 온다는 불길한 소식이 전해졌다.
괌 인근에서 형성된 마와르 태풍은 최대 지속 풍속이 시속 88마일인 4등급 수퍼태풍으로 발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할 정도였다. 원정대는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북상했다. 태풍의 진원지와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강풍이 몰아 닥쳤다. 오키나와 해협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이틀간을 강풍에 맞서 사투를 벌이던 중 일본 본토에 접근하자 사납게 출렁이던 바다가 기적처럼 잠잠해졌다.
5월28일 원정대를 태운 이그나텔라가 통영 금호 마리나에 안착했다. 입국심사를 마무리하는 동안 하와이에서 하선했던 박상희 대원과 조셉 장 대원과 반갑게 해후했다.
다시 뭉친 원정대는 남해안 다도해를 둘러보며 서해안을 따라 서서히 북상,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왕산 마리나에 지난 4일 무사기항했다. 총 93일이 걸린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항해 도중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인천시 요트협회 관계자들과 가족, 지인들이 선착장에 마중 나와 원정대의 귀환을 열렬히 축하했다. 재외동포청이 공식 출범한 6월5일 송도국제도시 센트럴파크에서 인천광역시(유정복 시장) 주최로 열린 기념행사의 하일라이트는 원정대를 위한 환영 순서가 장식했다.
이날 환영행사에서 남진우 대장은 “120년 전 이민의 첫 발을 내디뎠던 이민 선조들의 뜻을 기리고 인천의 재외동포청 유치를 축하하기 위해 망망대해 태평양을 돛 하나에 의지해 요트로 건너는 도전은 때로는 파도와 때론 고독과 싸운 생명을 건 사투였다”고 항해과정을 보고했다.
그는 또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이민 120년 동안 축적된 한인사회의 눈부신 발전상을 조국에 널리 알리고 돌아오겠다는 원정대의 꿈이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됐다”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이역만리에서 늘 조국을 그리워했던 이민 선조들의 눈물이자, 전세계 180개국에 흩어져 사는 750만 재외동포들의 감격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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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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