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회·상의 등 대표단체들 LA 한인축제도 50주년 맞아
▶ 한인사회와 동고동락… 성장 발전의 주역
1969년 창간 한국일보 필두, 기업·타운업체·종교기관 등
미주 한인 최대, 최고의 언론으로 창간 54주년을 맞은 미주 한국일보 윌셔 사옥.
LA 한인회의 기금 행사인 헤리티지 나잇 갈라가 지난 2021년 12월 열리고 있는 모습.
한미보험은 51년 역사를 자랑한다. 한문식 대표의 모친 한용숙씨의 지난 2017년 100세 생신 행사 모습.
금강안경은 올해로 창립 51년이 됐다. 지난 2015년 임직원들이 모인 모습.
50년 이상 이어온 단체와 기관, 장수기업들올해로 120주년을 맞은 미주 한인 이민사 속에 LA를 중심으로 남가주 한인 이민사회가 본격적으로 형성돼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65년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개정 이민법에 서명하면서 부터다. 1968년부터 시행된 개정 이민법으로 미국으로의 한인 이민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됐다. 개정된 이민법에 의해 유학생과 간호사, 의사의 신분으로 미국에 건너 온 한인들이 영주권을 취득하게 됐고, 이들은 국제결혼으로 도미한 한인 여성들과 함께 1970년대 한인 이민을 주도했다. 지난 1969년 LA에서 창간한 미주 한국일보는 1970년대 들어 급성장한 남가주 한인사회와 함께 했다. 60년대 말과 70년대 초에 시작돼 지금까지 반세기를 이어오고 있는 한인 단체와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로 LA 한인사회 대표 대형교회인 나성영락교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았고, 또 해외 한인사회 최대 축제인 LA 한인축제도 어느덧 50회째다. 남가주에서 50년이 넘는 세월을 한인사회와 동고동락하며 ‘반세기의 금자탑’을 쌓아온 한인 커뮤니티 단체와 기업, 종교기관들을 조명해본다.
■한인 단체들
일제 강점기 시절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돼 LA로 터전을 옮긴 대한인국민회(1909년)와 흥사단(1913년)을 제외하고 현존하는 남가주 단체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은 놀랍게도 남가주 한인미술가협회의 전신 나성 미술가협회다. 59년 전인 1964년 위상학(회장)씨, 김봉태(부회장)씨가 주축이 돼 만들어졌으며 120년 미주 한인 이민사의 절반 가까이를 동행했다.
남가주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단체인 LA 한인회와 LA 한인상공회의소(한인상의)는 올해로 각각 창립 55주년과 52주년을 맞았다. LA 한인 이민사회의 연륜에 걸맞게 반세기의 역사를 훌쩍 넘겼다.
LA 한인회의 전신은 지난 1968년 설립된 재미 한인거류민회다. 조영삼씨가 회장, 이경동씨와 김중정씨가 부회장으로 취임했는데 조영삼씨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이경동씨가 회장직을 승계했다. 1973년 거류민회가 캘리포니아 주정부로부터 비영리단체 인가를 받으면서 남가주 한인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1978년 한국정부 지원금으로 웨스턴가의 현 한인회관 건물을 구입했다. 1982년 LA 한인회로 다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LA 한인상의는 한인 상공인들의 권익 옹호와 이익 창출을 위해 1971년 창립된 남가주 한인상의의 후신이다. 조지 최, 김종식, 남궁봉, 이용, 이교숙씨 등 5인이 준비위원을 맡았다. 1987년 LA 한인상의로 개칭됐다.
1973년에 세워진 샌디에고 한인회는 올해가 창립 50주년이다. 초대 회장은 송두영씨였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반 미국 내 의료인력의 부족으로 미 정부가 외국 의사, 간호사, 약사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면서 한국에서도 우수한 의료인들이 몰려 들었다. 남가주 한인간호사협회는 이민 정착에 필요한 정보를 나눌 목적으로 1969년 황선희씨 등 한인 간호사 40여명에 의해 창설됐다.
재미 한인치과협회는 1970년 설립돼 서울대 치대 교수 출신인 고 오재인 박사가 초대 회장을 맡았다. 가주 한인약사회는 1972년에 설립됐다.
1973년 미국 의사협회는 당시 재미 한인의사를 1,309명으로 집계했다. 이 중에서 남가주에 자리잡은 한인 의사들이 한인의사협회를 이듬해인 1974년 세웠다.
1972년 대한체육회는 재미대한체육회를 재미 지부로 인준했다. 같은 해 10월 재미 한인선수단 26명이 최초로 한국에서 열린 전국체전에 출전했다.
1972년 무궁화학원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남가주 한국학원은 올해로 개교 51주년을 맞았다. 한인 2세들에게 한글과 문화, 역사를 가르치는 뿌리교육의 전당으로 자리 잡았다. 한 때 멜로즈 중학교와 윌셔 초등학교 등 정규 사립학교 과정을 운영했으나 지금은 문을 닫았다.
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문회들도 적지 않다. 경기고와 서울고, 경복고, 용산고, 휘문고 등 고교 동문회와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한국외대 등 대학 동문회, UCLA와 USC 등 미국 대학 한인동문회 등이 대표적이다.
LA 한인축제는 해외에서 열리는 한인 행사 중 가장 큰 규모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뜻깊은 행사다. 코리아타운 번영회가 1974년 제 1회 한인축제를 개최한 것이 한인축제의 효시가 됐다.
올림픽가를 따라 진행된 첫번째 코리안 퍼레이드에는 2,000여명이 행진했으며, 3만여명이 관람하는 대성황을 이뤘다. 한인축제의 규모와 참여가 확대됨에 따라 1999년부터 비영단체인 LA 한인축제재단이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오는 10월 12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제 50회 LA한인축제의 주제는 ‘새로운 50년을 향한 위대한 도전’이다.
■한인 기업들
남가주 한인사회의 질적·양적 성장의 원동력은 한인 경제력이 밑바탕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견인차 역할을 1969년 6월 미주 최초의 한국어 일간지로 창간한 미주 한국일보와 1972년 LA 노선에 첫 취항한 대한항공이 담당했다.
이후 미주 한국일보는 샌프란시스코(1970), 하와이와 시애틀(1972), 워싱턴DC(1974) 등지에 속속 지사를 개설하며 미국 9곳과 캐나다 1곳, 남미 2곳에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1972년 4월 태극마크가 선명한 대한항공 보잉 707 제트기가 도쿄, 호놀룰루를 거쳐 LA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17시간이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국적기의 LA 취항이라는 한인 이민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가 쓰여졌다.
해외교류가 극히 드물던 그 시절, 대한항공은 이역만리 떨어진 LA 한인들에게 고국의 소식을 전해주는 전령사였다. 대한항공의 미주 취항 도시는 당시 LA, 하와이 두 곳 뿐이었으나 현재는 13개 도시로 확대됐다.
본보가 1972년 1월1일자 신년특집 부록으로 발행한 첫 번째 업소록에서 한인 업소는 18개 업종, 69개였다. 이중 30여개가 LA 한인타운을 상징하는 올림픽가에 위치했다. 당시 업소록에 수록된 한인 업소 중 고 임윤영씨가 1968년 LA한인타운에 문을 연 하이소사이어티 양복점은 주류사회의 영화배우나 운동선수 등 유명인사들을 위한 고급 맞춤 양복점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1972년 11월 남가주 한인회가 발행하고 키스 프린팅이 인쇄를 맡은 한인록에는 무역회사(77개), 요식업(24개), 식료품점 및 마켓(20개), 리커스토어(11개), 태권도장(12개), 기계 수리 업소(11개), 회계사 사무실(11개), 여행사(10개), 보험사(9개), 전자제품 출장수리 업체(9개), 미용실·봉제업체·병원(각각 7개), 트로피 제작·양복점·부동산·인쇄소(각각 6개), 차량 정비소·사진관·자동차 딜러·한의원·꽃집(각각 5개), 건축 업체·옷가게(각각 4개), 치과·술집·트럭킹 회사(각각 3개) 등의 한인 사업체들이 수록됐다.
아쉽게도 당시 한인록에 수록됐된 업소 가운데 지금까지 문을 열고 있는 한인 기업들은 몇개 되지 않는다. 2023년 기준으로 창업 50년이 넘는 대표적인 장수기업은 한미보험과 김&리 회계법인이다.
고 한대식씨가 창업한 한미보험은 1972년 문을 열고 51년 동안 한인들의 든든한 바람막이 역할을 해 왔다. 1980년 합류한 동생 한문식 대표는 형 한대식씨를 대신해 한미보험을 한인사회 대표 종합보험 에이전시로 키워낸 보험 업계의 산증인이다. 한문식 대표의 막내 아들 앤드류 한씨가 미국 시장, 한 대표의 동생 한형식씨는 오렌지카운티 지사를 맡아 운영 중이다.
김&리 회계법인도 같은 해 설립됐다. 고 김성철 CPA가 미국인 제이 데이비스와 파트너로 시작했으며 1974년 이수정 CPA가 새 파트너로 합류한 후 김&리로 공식 출발했다. LA 비즈니스저널이 선정한 LA카운티 탑 100 회계법인 순위에서 공동 61위에 오를 정도로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회계법인으로 성장했다.
금강안경 검안과는 지난 1972년 창업해 50년 넘게 남가주 한인들에게 밝은 세상을 선사해 왔다. 1973년 개원한 정준 태권도 무술원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1974년 설립돼 한인타운 보석의 명가로 자리잡은 젬택과, 한인타운 형성기에 영주권과 결혼 수속 등을 전담했던 가주한미공사는 내년에 50주년이 된다.
안타깝게도 반세기 역사를 채우지 못하고 폐업한 업소도 있다. 지난 1973년 올림픽가에 오픈해 LA 한인사회와 애환을 함께 했던 김방앗간은 45년만인 2018년 문을 닫았다. 김방앗간이 위치한 건물의 소유주였던 고 김명한씨의 가족이 건물을 매각했기 때문이다.
■한인 종교기관
미주 한인이민사와 궤적을 같이했던 한인 교회사 덕분에 남가주에는 50년 이상된 교회들이 여럿 있다. LA국제공항 근처에 자리한 LA한인연합감리교회는 지난 1904년 미국 본토에 세워진 첫 번째 한인교회인 나성한인감리교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USC 인근에서 유학생들과 하와이에서 건너 온 한인들이 한국어로 예배를 드렸다.
1906년에는 미국 본토에 세워진 세번째 한인 교회이며 최초의 한인 장로교회인 제퍼슨장로교회가 LA에 세워졌다. 이 교회가 지금의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다.
동양선교교회는 1970년 초대 목사인 임동선 목사 자택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1970년대 중반 현재 웨스턴 길로 이전한 이후 대표적인 한인교회로 자리잡았다.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나성영락교회와 LA동부장로교회도 LA 한인 교계를 대표하는 디아스포라 교회다. 1973년 3월 오관정 집사 자택에서 39명의 교우가 예배를 드린 것이 나성영락교회의 첫 시작이었다. 고 김계용 목사와 고 박희민 목사, 림형천 목사 등 존경받는 목회자들이 차례차례 담임을 맡았다.
동부장로교회는 서울에서 명륜교회를 시무하다 1973년 미국에 온 이용규 목사가 같은 해 9월 1베드룸 아파트 거실에서 첫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첫 걸음을 내딛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글렌데일교회도 지난 50년 동안 안식교인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한인 가톨릭 공동체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은 LA 한인타운에 있는 성아그네스 성당이다. 1968년 8월 60여 명의 한인 신자들이 참여해 미국에서는 최초로 한국어 미사를 집전했다.
1972년 숭산 대종사가 설립한 LA 달마사는 미주 최초의 한국불교 사찰이다. 달마사는 또 한국 불교 세계화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 반세기, 50년의 의미
반세기는 1세기의 절반, 곧 50년을 의미한다. 50년은 개인은 물론 단체나 기업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나이 50세를 한자말로 바꾸면 ‘지천명(知天命)’이라 한다. 공자가 50세에 이르러 하늘의 뜻을 알게 되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100세 장수 시대에 50세는 인생 후반전이 시작되는 해이기도 하다. 금혼식은 결혼 50주년이 되는 기념일을 말한다.
성경에서 50년은 빚이 탕감되고, 팔렸던 자신의 땅과 집과 몸을 회복하게 되는 해를 의미한다. ‘희년’ 혹은 ‘대안식년’이라고도 부른다. 안식년(7년)이 7번 행해지고 난 다음 50년마다 돌아오는 해방의 해 희년은 쉽게 말해 ‘리셋(reset)‘, 출발점, 원초로의 회귀, 재출발 등을 상징한다.
리처드 포스터 예일대 경영학과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S&P500지수에 속한 미국 대기업 평균 수명은 고작 15년에 불과했다. 기업을 생명체에 비유하는 경영학자들은 창업한지 50년이 넘는 기업을 ’장수기업‘이라 칭한다.
한국에서도 창업 50주년을 넘은 장수기업은 2018년 기준으로 1,700곳 미만이다. 장수기업의 평균 업력은 56.9년. 중소기업 중에서 50년을 넘은 기업은 0.2%가 채 안된다.
LA 한인상공회의소의 제46회 상공인의 밤 행사가 지난 4월 열렸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나성영락교회 신도들이 50주년 기념주일에 교회 앞에 모인 모습.
설립된지 55년이 된 LA 한인타운 인근 성아그네스 성당.
지난해 10월 LA 달마사의 창건 50주년 기념 법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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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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