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영화가 되살아났다. 칸 영화제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의 소감이다. 지난달 영화제 개최 직전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올해 영화제는 팬데믹을 딛고 2020년 이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자신했다. 영화제 출품작들 중 1,000명에게 탈락통보를 보내야 했다는 그는 영화의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극장 영화들이 되돌아왔다고 역설했다. 이에 더해 2020년과 2021년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이 극장을 외면하고 스트리밍 서비스가 인기를 누리면서 극장 영화의 미래에 대한 암울한 예측과 달리 시네마의 부흥을 목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무적인 현상으로 할리웃 스튜디오와 스트리밍 업체의 협업에 주목했다. 애플이 파라마운트와 공동 제작하고 마틴 스코세이지가 감독한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을 칸 영화제에서 선보이게 되어 자랑스럽다고도 했다. 올해 영화제에는 젊은 감독과 노장들의 작품들이 골고루 초청되었다며 과거 아닌 미래를 향한 감독들의 패기를 칭송했다. 프로그램을 보니 노장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81), 마르코 벨로치오(84)를 위시해 기타노 다케시(76) 감독의 귀환이 반갑고 핀란드 영화의 대부 아키 카우리스마키(영화 ‘폴른 리브스’로 심사위원상 수상) 감독, 그리고 난니 모레티, 켄 로치, 빔 벤더스 감독은 역대 최다 영화제 진출 기록을 세웠다. 김창훈 감독의 첫 장편 영화 ‘화란’이 공식 초청받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은 본래의 유전자(DNA)를 되찾는데 주력했다는 언급도 있었다. 경쟁 부문에 들지 못한 영화들로 채워지는 세컨 리그가 아니라 재능있는 젊은이의 예술 형식이자 급진적인 새로운 형태의 영화를 발굴하는 역할을 강조했다. 올해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수상작은 1993년생 몰리 매닝 워커 감독의 ‘하우 투 해브 섹스’가 차지했다.
실제로 영화제 기간 프랑스의 휴양도시 칸은 밀려든 인파로 ‘압사’가 우려될 만큼 영화제의 위용을 과시했다. 지난해 재보수 공사를 거친 칼튼 칸 호텔은 1박 1,900달러라는 엄청난 숙박료에도 칸 영화제를 찾은 감독과 배우, 유명 인사들이 넘쳐났다. 500달러 정도 싼 가격의 바로 옆에 위치한 JW 메리엇 호텔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영화제 후반부는 한국 스타들이 열기를 고조시켰다.
‘화란’(Hopeless)으로 처음 칸 영화제를 찾은 한류스타 송중기와 가수 비비(김형서)가 불러일으킨 한국 영화의 열기는 호화캐스팅을 자랑한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Cobweb) 월드 프리미어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기열 감독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의 한바탕 소동을 그린 영화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송강호가 김기열 감독으로 출연하고 영화 속 흑백영화 ‘거미집’의 주연으로 임수정, 오정세, 정수정이 등장한다. 걸그룹 ‘에프엑스’ 멤버 크리스탈(정수정)은 기자 회견이 끝나고도 셀피를 찍으려는 외신 기자들로 인해 한참 후에야 일행을 따라가려고 총총거리는 크리스탈의 모습이 보였을 정도다.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HBO시리즈 ‘더 아이돌’은 혹평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어 티켓을 구하려는 젊은이들로 북적거렸다. 개막작에 출연한 배우 조니 뎁의 딸 릴리-로즈 뎁 주연의 드라마로 ‘블랙핑크’ 제니가 출연해 대중의 관심이 높았다. 샤넬 드레스를 입은 인형 같은 제니를 보려는 K팝 팬들의 함성이 칸의 밤하늘을 수놓았다면 믿을 수 있을까. 명품 브랜드가 주최한 파티들 역시 K팝 스타와 한류 스타 모시기에 혈안이었다. 물론 티켓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지라 참석하지 못하고 사진으로 감상했지만 에디 슬리먼이 주최한 셀린느 디너 파티에는 BTS 멤버 ‘뷔’와 블랙핑크 리사, 배우 박보검이 초청되었고 명품 주얼리 브랜드 ‘쇼파드’ 브런치 파티에는 글로벌 앰버서더인 에스파(카리나, 윈터, 닝닝, 지젤)가 행사를 빛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단편 영화 ‘스트레인지 웨이 오브 라이프’ 공식 상영회를 참석하고 나오면서 블랙핑크의 로제와 마주친 적도 있다. ‘생로랑’의 앰버서더인 로제는 칸 영화제 시나리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몬스터’ 레드카펫 행사에 등장해 현장을 가득 메운 취재진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영화는 역시 극장에서 함께 봐야하는 매체이다. 지난해에는 칸 영화제에 참석하고 돌아오면서 코로나19 음성 확인서를 첨부해야 미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지만 이제 엔데믹 시대가 열렸다. 밀폐된 실내공간인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고 바이러스 감염에 지나치게 민감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물론 더 힘든 현실에 봉착해있다. 3년 여만에 코로나 종식 선언과 더불어 뉴 노멀로 돌아왔지만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다는 게 예전 같지 않다. 그래도 상영관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극장용 영화를 만들겠다는 영화인들의 신작들에서는 “제발 극장에서 봐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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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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