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는 정의라고 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사람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다. 권력을 어떻게 제한해야 하는지는 18세기에 정치철학자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The Spirit of the Laws)에서 견제와 균형의 개념을 성문화 함으로써, 나중에 매디슨에 의해 수정되었지만, 법치주의 토대를 만들었다.
‘제한된 정부’ (limited government)는 간단히 말해 권력 분산·공권력 남용을 제한한 시스템이다. 그 뿌리는 고대 히브리인들과 그리스 철학자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출애굽기의 ‘금송아지 이야기’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연구’는 모두 매우 다른 방식으로 법의 원리를 말하고 있다. 제한된 정부를 보여주는 최초의 문서는 마그나 카르타이다.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최초의 문서이다.
법은 단순히 의지나 힘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자연법 원칙’에 기초한다. 오늘날에 와서 거대하고 강력한 행정부에 대한 감독은 의회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이다.
미국 헌법 시스템의 구조는 ‘견제와 균형’을 통해 의회가 대통령의 행정권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평등은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추구했다. 그리고 법에서 그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매디슨은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 타락한 부분이 있지만, 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선택한 리더의 자질을 신뢰하며 미국의 공화정 정부를 출발시켰다. 매디슨 모델의 핵심은 ‘야망’(ambition)으로 정의 된다. 매디슨은 제퍼슨처럼 자유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자유를 보호하는 방법에 대한 실용적인 통찰력을 제시했다. “권력·영향력·권위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본성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야망은 동시에 탐욕·부패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매디슨은 야망이 올바른 판단에 의해 적절히 활용되고 입헌 공화주의의 이점인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작동되면 이 야망은 공익을 증진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메디슨 자신이 일부 우려했던 것처럼 나중에 중대한 결함이 생겼다. 그것은 정당 정치에 대한 당파성 때문이다. 과반수를 획득한 정당이 대통령까지 배출하여 대통령에게 충성도를 보인다면 견제 기능이 무력화될 수 밖에 없다. 당파가 극도로 심화된 의회는 대통령에 대한 견제 권한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주권자에 대한 명백한 위협으로 나타난다.
한국은 권력 감시와 통제 장치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사람만 바꾼다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지는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법 앞에 평등한 정의가 있다는 개념을 조롱했다. 형사사법제도의 왜곡은 그가 검찰총장으로 있을 때 부터 시작되 었다. 집권 여당 국민의힘당은 대통령에 대한 복종과 굴종을 선택했다. 그로 인해 견제와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 다. 냉철한 현실은 우리가 권력자를 절대 신뢰해서는 안되며 정부 권력에 대한 제도적 통제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는 한 통제는 불가능하다. 더불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법 (Natural Law)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매디슨의 시스템에 들어 가서 정치를 하면 안된다.
한국 사회는 자유의 가치를 놓고 보수와 진보가 격렬한 투쟁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고전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가 서로 충돌하고 있다.
고전적 자유는 국왕과 귀족들이 특권과 특혜를 독점하면서 재판 없이 시민의 목숨을 빼앗고 재산을 강탈하는 수탈체제를 뒤엎은 피의 대가로 쟁취한 자유다. 보수 가치의 원형이다.
사회적 자유는 자본가가 노동자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것을 제거함으로써 확보됐다. 입에 풀칠도 못 하는데 지켜야 할 생명과 재산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비판의식은 분배 정의를 부르짖는 사회적 약자들의 투쟁에서 비롯됐다. 진보가치의 뿌리다. 두 자유는 모두 저항의 의지를 공유한다.
시장이 효율적으로 기능하고 이해관계자들이 응분의 몫을 가져갈 수 있게 하기위해서 보수와 진보는 소통하고 협치 해야 한다. 자유와 시장경제가 보수의 전유물도 아니고, 평등과 사회경제가 진보의 전매 특허 또한 아니다.
양 진영의 주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투쟁보다 이성에 입각한 토론과 논쟁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공동체 사회는 합리주의에 근거해야 유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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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 정치 철학자,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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