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채에 대한 채무불이행(디폴트)은 국가 경제에 지대한 해를 끼친다.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도 날벼락을 맞게 된다. 미국의 장기적인 금융건전성 역시 망가진다. 그게 무슨 대수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채무 불이행 위협이 결과적으로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최근 들어 미국의 디폴트 가능성에 겁을 집어 먹은 채권자들이 우방국들을 결속시키는 미국의 능력을 훼손하고 국가안보에도 심각한 타격을 가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열린 G7 회의에서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디폴트가 “미국의 글로벌 경제 지도력을 약화시키고 국가 안보 수호능력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주일 전, 에이브릴 헤인즈 국가정보국장도 예상되는 금융혼란 이외에 러시아와 중국이 디폴트 위기에 따른 “국내의 혼란”을 “미국이 민주국가의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증거로 활용할 것이 확실시된다고 밝혔다.
공정하게 말해 국가안보 위협은 몇 년 뒤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일이다. 솔직히 국가안보 위험에 대한 경고는 어딘지 추상적인 얘기처럼 들린다. 따라서 필자는 미국의 제재정책을 예로 삼아 디폴트가 장기적인 국가 안보이익을 어떻게 해치는지 그 과정을 짚어보고자 한다.
미국의 연방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는 안전자산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수요가 많다. 국채는 다른 거래를 위한 든든한 담보이자, 국채 이외의 투자가 지니는 상대적 위험성을 가늠하는 유용한 기준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달러화 역시 글로벌 기축통화라는 특별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이유는 자명하다. 세계가 미국 경제의 핵심인 금융기관을 신뢰하고, 법치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신념과 굳건한 채무상환 의지를 믿기 때문이다.
이제 제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자.
워싱턴이 부가하는 제재가 힘을 쓰는 주된 이유는 사람들이 미국과 달러화 혹은 달러화 표기자산을 거래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달러화와 달러화 표기 자산에 대한 접근차단 위협은 다른 국가와 기업들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어리석은 정치적 이유로 미국의 채무이행 여부가 불투명해진다고 상상해보라. 당연히 미국 국채, 혹은 달러를 구매하거나 달러화로 거래를 하려는 욕구가 떨어질 것이다. 만약 타국이나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달러 의존도, 혹은 미국 경제에 대한 노출을 축소한다면 설령 우리가 제재를 통해 그들의 접근을 차단한다 해도 큰 타격을 주지 못한다.
금융제재 전문가인 시라쿠세 대학의 정치학자 대이널 맥도웰은 “미 국채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적대국가의 중앙은행은 제재의 좋은 표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 적대국이 미 국채 대신 미국 외부의 다른 자산으로 투자를 다변화했다면 그들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해봤자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없다.”
다른 문제도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채무불이행으로 스스로를 신용 불량국으로 만들 경우 채권자들이 더 높은 대출 금리를 요구할 수 있고, 결국 미국의 차입경비가 치솟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부지출 중에서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군을 지원하기가 힘들어진다.
이렇듯 엄청난 디폴트 관련 후유증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조 바이든 대통령은 공화당이 원하는 것을 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행정부의 자체 전망도 하원 공화당이 요구하는 지출한도를 채택하는 것보다 디폴트에 따른 손실이 더 크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문제가 있다. 인질 석방을 위해 몸값을 지불한다면 볼모 잡기를 부추기게 된다. 바이든은 2011년, 이미 뼈저린 경험을 한 바 있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은 부채한도 상향에 필요한 표를 얻기 위해 지출삭감을 요구하는 공화당과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공화당은 부채한도를 다시 볼모를 다시 잡은 뒤 몸값을 요구했다.
이번 경우 바이든은 “부채한도 협상은 없다”는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행정부는 해마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피하려 노력중이다. (설사 바이든이 국가부도사태를 막기 위해 공화당의 요구에 응한다 해도 내년에도 미국의 정부 부채는 또다시 한계치에 도달하게 된다.) 공화당은 인위적인 위기의 고리를 끊으려 하지 않는다. 백악관이 민주당의 수중에 들어가기만 하면 공화당은 부채한도를 물고 늘어지며 바깥세상을 향해 미국이 신뢰할만한 경제적, 혹은 지정학적 파트너가 아니라고 끊임없이 외친다.
지금 우리 모두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적절한 출구전략이다. 공화당은 체면을 세우고, 바이든은 미국의 신용과 신념이 정쟁의 볼모로 이용되어선 안 된다는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 합의가 도출되어야 한다. 그 같은 해법이 어떤 형태를 취할지 혹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앞으로의 논의에 달려있다.
캐서린 램펠은 주로 공공정책, 이민과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다. 자료에 기반한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램펠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바 있다.
<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