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미국에서 출간된 ‘어린이들에게 종교가 필요한가? (Do Children Need Religion?)’라는 책이 있다. 가톨릭 신자였던 저자 마타 페이(Martha Fay)는 이 책에서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신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그리고 흰 색인지 검은 색인지, 죽음과 천국은 무엇이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등에 대해 묻는 (그 당시) 열 살짜리 딸 안나(Anna)에게 자신이 엄마로서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다루고 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독단적인 독선과 위선을 싫어하여,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더라도 결코 동심을 잃지 않겠노라고 굳게 다짐했다. 아빠가 되고 나서는 세 딸들 이름에 다 어린애 ‘아(兒)’자를 넣어 해아(海兒), 수아(秀兒), 성아(星兒)라 이름지었다.
하늘에 하늘님이 계시고 땅속에 땅님이 계신다면, 하늘에서 내려오신 하늘님과 땅속에서 솟아오르신 땅님이 바로 어린 아이들이 아닐까. 어린이들이 사는 곳이 바로 천국인데, 공중에 무슨 천국이 있으며 지하에 무슨 지옥이 있겠는가.
어른이 어린애처럼 되려면 필요한 것이 종교다. 그래서 어린이는 종교의 교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누가 누구에게 전도를 하고 설교를 한다는 것인가?
나는 어린이가 곧 ‘하나님’이라고 믿는다. 예수도 우리가 어린 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어린이에게는 참도 거짓도, 선도 악도,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옳고 그른 것도, 남자도 여자도, 너와 나도 따로 없다. 동물, 식물, 광물도 어린아이와 같은 하나가 아닌가. 하나님이 ‘하나’님이라면, 작다는 뜻의 ‘아리’를 붙여 ‘하나아리님’도 곧 어린 코스미안이라 해야 하리라.
가정의 달, 아니 5월 5일 어린이날이 있는 5월에 동심(童心)을 동경(憧憬)한다. 라틴어로 ‘Finis Origine Pendet’란 말이 있다. 영어로는 ‘The beginning foretells the end.’ 우리말로는 ‘시작이 끝을 말해 준다’로 ‘시작이 반이 아니라 전부다’란 뜻이 되리라.
2021년 5월 30일자 뉴욕타임스 일요판 오피니언 섹션에 기고한 글 ‘우리가 애독하는 이야기들이 우리를 만든다. (The Stories We Love Make Us Who We Are)’란 제목의 글에서 필자인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Salman Rushdie)는 이렇게 글을 맺는다.
“이 많은 모험담/탐험담에서 영웅이 되는 건 어린아이들이다. 흔히 어른들을 위험에서 구조/구출/구제해 구하는 건 아이들이다. 우리 모두 어렸을 때의 우리 자신들, 어른이 된 지금도 우리 안에 있는 어린이들, 경이로운 세계를 이해하고 이 이야기들 스토리의 진실을 아는 아이들이 이 진실들을 잊어버린 어른들을 구원하는 아이들 말이다. ”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해마다 바뀌고 여러 정책이 늘 제시되지만 정작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다. 우리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진정으로 건강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들이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동서양의 고전을 통해 지식을 살찌우고 지혜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며 건강한 가치관을 정립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올재’를 설립했다.”
‘올재’의 홍정욱 대표의 말처럼 이 출판사는 저작권 문제가 없는 동양과 서양의 고전을 최대한 읽기 쉬운 한글 번역본과 누구나 갖고 싶은 멋스러운 디자인으로 출판한다. 대기업에서 후원을 받아 한 권당 2,000원에서 3,000원 대의 가격으로 대중에게 판매하고, 전체 발간 도서의 20%를 저소득층과 사회 소수계층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는 일종의 소셜 비즈니스 회사라고 한다.
일찍이 중국 명나라 때 진보적 사상가였던 이탁오(李卓吾), 영어로는 Li Zhi (1527-1602)는 그의 대표적 저술로 시와 산문 등을 모아 놓은 문집 ‘분서(焚書)’에서 말한다.
“어린아이는 사람의 근본이며 동심은 마음의 근본이다. 동심은 순수한 진실이며 최초의 한 가지 본심이다. 만약 동심을 잃는다면 진심을 잃게 되며, 진심을 잃으면 참된 사람이 되는 것을 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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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상/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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