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4일은 요한 웨슬레(John Wesley 1703-1791) 회심 285주년 기념일이다. 영국의 종교개혁자요,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의 회심을 기념하며 우리 자신들과 교회의 영성을 되돌아보며 교회의 일치와 연대를 다짐하는 날로 지킨다.
인류 역사를 변화시킨 시대마다 중요한 회심의 사건이 있었다. 사도바울, 어거스틴, 마틴 루터, 요한 웨슬레의 회심사건이다. 특별히 요한 웨슬레의 회심은 18세기 산업혁명이 끼친 사회혼란으로 불안속에 있었던 영국사회를 영적 대각성운동과 사회참여운동으로 이끈 시대의 등불이 되었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던 해인 2017년 4월 미주 크리스천 위클리 주관으로 동북부 한인 연합감리교 목회자 33명을 인솔해서 존 웨슬리의 발자취를 따라 영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웨슬리가 회심한 장소인 런던의 올더스케잇 거리(Aldersgate street),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가 묻힌 번힐필드(Bunhil Fields), 감리교 모교회인 웨슬리 채플, 영국 감리교본부, 웨스터민스트사원, 옥스퍼드대학, 웨슬리의 생가인 앱웟의 올드 랙토리(Old Rectory, Epworth)을거쳐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웨슬리가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한 최초의 감리교 건물인 뉴룸 채플(New Room Chapel)이 있는 항구도시 브리스톨(Bristol)이었다. 뉴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감리교 예배당으로 1739년에 지어졌고 1748년에 보수되었다. 일반적으로 뉴룸으로 알려져있으나 브리스톨에서는 존 웨슬리의 채플로 불려진다. 이곳은 존 웨슬리 사역의 중심 역할을 하였고 18번의 감리교 연회가 개최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애즈베리를 포함한 설교가들의 유품을 보관한 방도 있고 몇분 정도를 걸어가면 웨슬리의 동생 챨스 웨슬리의 집이 옛날 모습을 그대로 보전한 채 있었다. 챨스 웨슬리는 존 웨슬리보다 1738년 5월 21일 3일 먼저 회심을 경험하고 일생 동안 7천곡 이상의 찬송시를 작사한 찬송가 시인이기도 하다.
웨슬리는 브리스톨 인근 필(Pill)항구에서 미국 감리교 태동을 위해 1771년 애즈베리(Francis Asbury)와 1784년 토마스콕(Thomas Coke)을 배에 태워 당시 신대륙인 미국으로 보냈다. 1771년 미국으로 가는 배에서 애즈베리는 그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나는 신대륙으로 간다. 명예를 얻기위함도 돈을벌려고 함도 아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필라델피아에 도착하여 미국의 최초의 감리교회인 St. Georges Methodist Church 설립하게 되었다. 그후에 1784년 볼티모어 있는 Lovely Lane Methodist Church에서 미국 최초 크리스마스 연회(Christmas Conference)가 열려 정식 미국 감리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되돌아보면 세계교회 역사상 웨슬리만큼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람들 속으로 깊이 파고든 전도자도 없었다. 그가 말을 타고 복음을 전한 거리는 1년에 평균 5천마일, 40년 간 52만㎞로 지구를 13회이상 순회하며 그 틈에 4백여편의 저술활동을 하며 책을 펴냈으며 50세가 넘은 나이에도 하루 평균 32km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그의 목회 66년동안 한번도 걸러본 적이 없이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기도하고 설교하였고 동생과 만든 수많은 찬송가중에 1778년에는 선곡하여 525곡의 커다란 찬송가를 만들기도 하였다. 철저히 칭의와 성화에 바탕을 둔 웨슬리의 설교는 당시 타락한 영국 사회의 도덕과 경제, 윤리를 변화시킨 토대가 되었다.
1738년 5월 24일 런던 올더스케잇 회심이후 웨슬리는 반백이 넘도록 말을 타고 다니며 45,000번의 설교를 했다. 매일 평균 2차례씩 설교를 한 것이다. 그 결과 웨슬리의 생애를 통해 135,000명을 전도하여 결신시키는 열매를 얻게된 것이다. 그의 외모는 왜소했지만 그의 작은 몸 안에 세계를 흔드는 힘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영적 거인이었다.
영국 브리스톨 뉴룸채플과 같이 뉴저지주 메디슨에 위치한 감리교 소속 드류대학교 정문에 말을 탄 동상이 있다. 바로 웨슬리가 브리스톨 필 항구에서 미국 감리교태동을 위해 1771년 파송한 프란시스 애즈베리(Francis Asbury, 1745 -1816)이다. 말은 달리고 달리다 지쳐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말을 타고 있는 애즈베리는 한손에 성경을 들고 눈에는 총기가 살아있는 복음전도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영국 브리스톨에서 웨슬리가 타고 출발한 말은 콘웰, 글로스터,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등 지구의 반바퀴를 돌아 미 동부 뉴저지에 아즈베리를 태우고 멈춰섰고 그곳에서 아펜젤러 선교사를 배출하고 감리교 첫 선교사로 선교의 불모지였던 한국으로 아펜젤러를 파송을 한 것이다.
1887년 아펜젤러 선교사에 의해 배재학당에서 시작된 한국 최초의 대학인 서울 감리교 신학대학의 배지가 바로 성경을 손에 쥐고 말을 타고 달리는 웨슬리이다. 결국 아펜젤러를 태운 말은 원산에서 미 남감리회출신 로버트 하디(Robert A. Hardi, 1865-1949) 선교사의 가슴에 불을 붙이고 한국 기독교 부흥의 불씨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제2, 3의 웨슬리, 애즈베리의 후예들을 태우고 하나님의 꿈인 잃어버린 영혼구원을 위해 비전의 편자(말 馬 신발)를 신고 광야의 예언자가 되어 전세계 곳곳에서 쉼없이 달리고 있음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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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웅 / 워싱턴 하늘비전교회 목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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