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5일 재선에 도전하겠다고 공식선언했다. 이로써 2024 대선은 바이든 현직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직 대통령 사이의 재대결로 펼쳐질 모양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선거판에서 내년 11월은 아득하게 먼 미래이기는 하다. 그렇기는 해도 일단 바이든은 선거에서 싸울 상대로 트럼프를 분명하게 지목했다. 트럼프 골수 지지층인 MAGA(미국을 위대하게) 극단주의자들이 미국의 근본적 가치인 자유와 민주주의를 심대하게 위협하고 있다며 미국의 영혼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했다.
4월 25일은 바이든에게 특별한 날이다. 2020 대선을 목표로 4년 전 민주당 후보지명전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던 날이다. 그 결과 평생의 숙원이었던 백악관에 입성했으니 그에게는 행운의 날인 셈이다. 바이든은 그날에 맞춰 재선 도전을 선언했다. 문제는 국민들의 반응이다.
바이든이 국민들을 열광시키는 정치인은 아니다. 탁월한 카리스마나 유창한 언변 혹은 대담한 정책들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타성은 그에게 없다. 대신 오랜 정치경력이 주는 안정감, 강자나 가진 자들보다 약자나 못 가진 자들에 우선하려는 정책기조, 트럼프와 달리 상식과 원칙에 준한 가치관, 인자한 동네 할아버지 같은 편안함 등이 그의 강점이다.
원활한 백신공급과 재정지원으로 국민들이 팬데믹이라는 긴 수렁을 무사히 빠져나오게 이끌고, 일자리 창출에 힘썼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 자유민주주의 수호국가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한 점 등이 정치적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42% 수준. 경제전망이 밝지 않으니 지지율이 바닥을 맴돈다.
그런 점을 감안해도 바이든 재선도전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지나치게 부정적이다. 최근 NBC 뉴스 여론조사를 보면 바이든이 재선에 나가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이 70%에 달한다. 민주당 유권자들만 놓고 보아도 과반수(51%)가 그의 출마를 반대한다.
반대 이유는 간단하다. 대통령 하기에는 너무 늙었다는 것이다. 바이든의 나이는 80세. 이미 미국 최고령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재선에 성공할 경우 2025년 1월 취임식 때면 82세가 된다. 청사진 챙겨들고 출정준비 완료한 바이든에게 나이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나이의 덫이다.
나이는 몇 가지 특성을 갖는다. 우선 개인차가 대단히 크다. 같은 80살이라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수퍼 노인들이 있는가 하면, 2층에도 못 올라가는 노인들이 있다. 일본인 등반가 미우라 유이치로는 2013년 80세에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에 성공했다. 한국의 김형석 교수는 102세인 지금도 강연을 하고 글을 쓴다. 말레이시아의 국부로 불리며 22년간 총리로 집권했던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93세였던 2018년 총리 직을 다시 맡고는 2년 후 퇴임했다.
노년이 되면 연대기적 나이보다 생물학적 나이가 훨씬 중요하다고 노인학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니 노인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일률적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것이다.
나이의 또 다른 특성은 양날의 칼이라는 점이다. 나이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있고, 나이로 인해 잃어버리는 것이 있다. 전자는 경험을 통해 얻는 통찰력, 혜안, 지혜 등. 나이의 훈장이다. 후자는 어쩔 수 없이 쇠퇴해가는 심신의 기능들.
바이든의 정치경력은 반세기에 달한다. 서른 살 채 못 되는 나이에 정계에 입문해 상원의원, 부통령, 대통령을 거치며 얻은 경륜이 있다. 국내외 인사들과 수십 년 다져온 폭넓은 인맥, 워싱턴에서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구분하는 본능적 감각, 정책을 훤히 꿰뚫어보는 눈 등 한마디로 나이와 경험이 주는 지혜들이다.
예를 들어 1조2,000억 달러 규모의 거대한 인프라 개선 법안은 바이든이 아니었다면 제정이 어려웠을 것이다. 민주 공화 양당이 얼굴도 마주하지 않을 정도로 극도로 분열된 정치상황에서 바이든은 공화당을 설득하고, 민주당 진보진영을 달래며 법안통과를 성사시켰다.
국민 대다수가 그의 재선 도전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민주당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나서는 후보가 없는 것도 그의 정치력과 무관하지 않다. 2020 대선 당시 경쟁자들을 그는 자기편으로 끌어 안았다. 피트 부티지지를 교통부장관에 영입했고, 좌파 거장인 버니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들의 공약들을 정책에 반영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등 예비 대권 후보들에 대해서는 해당 주를 자주 방문하며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것은 노화현상. 2020 대선 캠페인 때만 해도 종종 걸음이던 바이든은 곧잘 걸음걸이가 비척거린다. 이 말 하려는 데 저 말이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아서 그가 대중 앞에서 말을 할 때면 측근들은 가슴을 졸인다. 얼마 전 해외순방 때는 캄보디아 방문 이야기를 하면서 두 번이나 콜롬비아라고 잘못 말했다.
2024 대선은 이변이 없는 한 노인들의 대결이 될 것이다. 바이든 보다 4살 젊은 트럼프도 노인이기는 마찬가지다. 다이앤 파인스타인(89) 상원의원을 비롯, 연방의원들의 고령화도 심각하다. 미국이 노인통치 국가가 되고 있다는 불만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길어진 기대수명이 몰고 오는 현상들이다. 노년이 길어지면서 개인이나 사회나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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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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