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 신흥국과 협약 속속 체결
▶ 중동·남미 등 위안화로 무역 거래, 원유 등 상품시장서도 결제 늘려…습, 달러 대항 ‘페트로위안’ 띄우기
미 만성 적자에 은행위기까지 겹쳐…신흥국도 지나친 달러패권 경계감, 유럽 CEPR “다극통화체계 올 것”
미국의 ‘달러 패권’에 대한 각국의 볼멘소리가 커지고 실리콘벨리은행(SVB) 파산으로 금융 불안까지 더해지자 중국이 그 빈틈을 파고들고 있다. 중동·아프리카·남미 등을 대상으로 위안화 사용을 권유하며 달러 패권에 전방위적 도전장을 내밀고 나섰다.
2일(현지 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중국은 신흥국을 중심으로 위안화 사용을 늘리는 협약을 속속 체결하고 있다. 최근 브라질과 양국 간 무역 거래에서 달러가 아닌 서로의 통화를 쓰기로 합의하고 SWIFT 대신 CIPS를 이용하기로 했다.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는 중국 정유 회사 룽성석유화학의 지분 10%를 위안화로 매수하기로 했다. 중국은 세계 각국에 대한 구제금융을 늘리고 있는데 2021년 기준 긴급 대출의 90%를 위안화로 내줬다. 아울러 2021년부터 아프리카에 대외 위안화 센터를 세워 현지 금융기관에 100억 달러 규모의 신용 한도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은 원유 등 상품 시장에서도 위안화 결제를 늘리며 ‘페트로 달러’에 대항하고 있다. 미국은 1974년 사우디아라비아에 군사 지원 등 안전을 보장하는 대가로 원유를 달러화로만 거래하자고 제안했다. 세계 각국이 석유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달러를 비축해야 하는 ‘페트로 달러’ 시대의 개막이었다. 하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2월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중국·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에서 “원유와 천연가스의 위안화 결제를 추진해야 한다”며 ‘페트로 위안’ 띄우기에 나섰다. 현재 전 세계 유전의 40%를 차지하는 러시아·이란·베네수엘라는 이미 원유를 위안화로 거래하고 있다.
이에 전 세계 무역·금융 결제 시장에서 위안화 사용도 빠르게 늘고 있다. 중국이 달러 중심의 전 세계 무역 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대항해 만든 ‘국경 간 위안화 지급 시스템(CIPS)’의 이용 금액은 지난해 96조 7000억 위안(약 14조 1000억 달러)으로 전년보다 21.48% 급증했다. 세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중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4분기 60.8%에서 지난해 4분기 58.4%로 감소했지만 위안화 비중은 같은 기간 1.9%에서 2.7%로 상승했다. 세계 외환 상품 시장 결제통화 비중에서도 지난해 4월 현재 달러화가 88.5%로 독보적 1위를 차지했지만 위안화도 7.0%로 호주 달러를 제치고 5위로 올라섰다.
중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일단 신흥국의 수요가 높아진 결과다. 지나친 달러 패권에 신흥국에서도 달러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전 세계 원자재가 대부분 미국 달러화로 결제되다 보니 달러의 가치 변동에 따라 신흥국 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가령 원자재 가격에 변동이 없더라도 달러 강세로 신흥국 통화 가치가 하락하면 그만큼 수입 비용은 늘어나 무역적자와 국내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아울러 미국은 이번에 러시아를 제재할 때 러시아 은행을 달러 결제망인 SWIFT에서 배제하는 방식을 택했다. SWIFT가 정치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목도한 신흥국은 과도한 달러 의존도가 결국 자국 운신의 폭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대체재로서 위안화 사용을 늘리고 있다. 브릭스(BRICS)라는 용어를 창시한 짐 오닐 전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달러가 세계 금융에서 너무 지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신흥국에 그들의 달러 의존 리스크를 줄이라고 조언했다.
미국의 위상이 이전만 못한 틈을 중국이 파고들고 있기도 하다. 미국의 무역수지는 블룸버그에서 비교 가능한 1992년 이후 지난해까지 30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계속되는 재정적자로 연방정부 부채 한도를 주기적으로 상향하지 않으면 정부가 쓸 예산이 없어 문을 닫아야 하는 ‘디폴트’ 리스크도 되풀이되고 있다. 만성적인 ‘쌍둥이(무역·재정) 적자’다. 여기에 최근에는 은행발(發) 금융 불안도 가세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같은 현상이 달러 자산을 덜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물론 미국 달러의 위상이 워낙 공고해 단기간에 중국 위안화가 미국 달러만큼 성장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중국 금융시장은 여전히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당국이 매일 정하는 고시환율이라는 것 등 위안화가 갖고 있는 약점도 만만치 않다. 다만 유럽의 경제정책연구센터(CEPR)는 “중국의 낮은 수준의 자본 개방도에서 역외 위안화 시장은 2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며 “향후 몇 년 안에 다극 통화 체계가 나타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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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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