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과 시진핑이 마주앉은 3일간의 정상회담에서 나온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지 못했다. 회담의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푸틴은 “러시아와 아시아, 아프리카 및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 사이의 결제 수단으로 중국의 위안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과 세계 최대 에너지수출국이 국제금융시스템의 핵심 축에 해당하는 달러화의 지배력에 적극적인 흠집 내기를 시도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들의 시도는 성공할까?
달러화는 미국이 보유한 ‘초강력 파워’다. 워싱턴의 독보적인 경제력과 정치력은 달러에서 나온다. 미국의 일방적인 제재를 받은 국가들은 세계의 경제시스템에서 밀려나 꽁꽁 얼어붙고 만다. 워싱턴이 마음 놓고 방만한 지출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예산조달을 위해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이 다투어 매입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에 가해진 경제 제재와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베이징과 워싱턴 사이의 대립은 이들 두 국가로 하여금 달러화를 대체할 결제수단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러시아와 중국의 중앙은행은 달러화 보유고를 계속 줄이고 있고, 두 나라 사이의 교역 역시 대부분 위안화로 결제된다. 또한 푸틴이 지적했듯 다른 국가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바이든은 세계의 거의 모든 선진국을 포함하는 연합세력을 구축해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서면서 러시아를 상대로 효과적인 경제전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달러화를 피해 유로나 파운드 혹은 캐나다 달러 등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안정된 통화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 주요 통화국 모두가 바이든이 구축한 연합세력의 일원으로 러시아에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화의 역할에 대한 견해는 2018년 도널드 트럼프가 이란과의 핵합의를 파기하고 일방적인 제재를 선언하면서 일대 전환점을 맞았다. 트럼프의 결정에 줄기차게 반대 목소리를 냈던 유럽연합(EU)은 이란이 삽시간에 세계경제 시스템에서 축출되는 광경을 지켜보며 달러화의 막강한 지배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당시 유럽연합집행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장 클로드 융커는 유럽대륙을 ‘이기적인 일방주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유로의 역할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 같은 목표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로드맵의 윤곽을 제시했다.
하지만 융커의 목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로화의 미래에 관한 근본적인 회의가 상당부분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달러화는 여러 가지 이유로 굳건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화시대의 경제는 사용이 쉽고 효율성이 높은 단일 통화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달러화는 대단히 안정적이다. 언제 어디서건 매매가 가능할 뿐 아니라 변덕스런 정부가 아닌 시장에 의해 다스려진다.
국제적으로 위안화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노력이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에 최대치의 고통을 가하기 원한다면 시진핑은 중국의 금융 부분부터 자유화해야 한다. 이 경우 위안화는 달러화의 진정한 경쟁상대가 될 수 있지만 그가 원하는 국내 정책 목표와는 정반대 방향인 시장개방으로 이어지게 된다.
과거 수십 년에 걸쳐 워싱턴이 시행한 ‘달러의 무기화’는 주요국들로 하여금 제 2의 러시아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서게 만들었다. 그 결과 지구촌 중앙은행의 외화보유고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년 전의 70%에서 60%로 축소됐다. 유럽 국가들과 중국은 달러화가 장악한 SWIFT 시스템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제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의 오일 가격을 위안화로 표기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인도는 러시아에서 사들인 오일을 대부분 비달러 통화로 결제한다. 대다수 국가들이 탐구중인 전자화폐 역시 또 다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중국 중앙은행은 이미 전자화폐를 만들어냈다. 이런 모든 대안들은 추가 경비를 필요로 하지만 과거 수년간의 경험은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는 국가가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달러를 대체할 단일 통화를 찾는 노력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현실적인 대안은 없다. 그러나 숱한 난도질로 달러화가 약화된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이건 실현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작가이자 투자가인 루처 샤르마에 따르면 지금 우리는 달러화가 계속 힘을 잃어가는 국제적인 금융위기에 처해있다. 그는 이것을 미래의 상황을 보여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만약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걱정을 해야 마땅하다. 필자는 지난번 칼럼에서 미국이 지닌 독보적 지위로 인해 워싱턴이 대단히 불량한 지정학적 버릇을 갖게 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경제적인 태도는 더욱 가관이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적자에 신경을 쓰지 않고 지출을 하는데 익숙해진 듯 보인다. 이런 태도 탓에 공공적자는 20년 전의6조5,000억 달러에서 현재 31조5,000억 달러로 거의 다섯 배가 늘어났다. 연준은 대차대조표를 20년전의 7,300억 달러에서 현재의 8조 7,000억 달러로 무려 열두 배나 늘리면서 수차례의 재정위기를 넘겼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달러화가 지니는 독보적인 지위 때문이었다. 만약 달러의 힘이 약해진다면 미국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 외교 전문가로 워싱턴 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 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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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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